2006년 한 포털 사이트에 연재할 때 하루 조회 수 200만 건이 넘는 큰 인기를 누렸던 만화가 강풀의 <26년>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전3권, 문학세계사 펴냄). <26년>은 '5·18' 때 희생된 시민군의 아들딸이 전 대통령 전두환 암살을 도모한다는 내용으로 연재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강풀은 1974년생이다. 스스로가 고백하듯이 "광주와 저만치 떨어진 세대"인 그가 광주를 만화로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3년이다. 전두환이 "수중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광주를, "그렇게 잊혀 가고 있는" 광주를 "재미있는 만화"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만화를 보게 하자. 민중은 어느새 잊혀 갔고 이제는 죽었지만, 대중의 볼거리로 살려서라도 다시 광주를 기억하게 하자. 광주를 만화로 다시 꺼내 이야기하면서 광주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픔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
강풀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광주의 시민군의 아들딸을 전면에 내세운다. 1980년 5월 21일 광주도청 앞에서 시민군으로 나선 남편을 찾다 계엄군의 무차별 발포로 어머니를 잃은 심미진(26). 미진은 그때 싸늘하게 식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평생 "저놈을 쏴 죽여야 혀"만 되뇌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대신해 미진은 복수를 다짐한다.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립다" 27년 동안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온 이들의 사연은 최근 5·18기념재단이 엮은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전2권, 한얼미디어 펴냄)에 잘 기록돼 있다. 이 책은 5·18 당시 상해를 입어 고통을 겪다 사망한 이들(44명)과 행방불명된 이들(56명)에 대한 유족들의 구술을 토대로 기억을 복원했다. 지난해 5·18 당시 살해 당한 이들의 사연을 묶은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전2권, 한얼미디어 펴냄)에 이은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사살당한 아버지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사는 곽진배(32). 사이렌 소리만 울리면 "계엄군이 몰려온다"며 공포에 질리는 실성한 어머니와 함께 26년을 살아간 진배. 비록 건달 신세로 전락했지만 결코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저버리지 않은 그에게 어느 날 복수의 기회가 온다.
역시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의해 사살당한 아버지를 기억하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이 된 권정혁(27). 그러나 꼬인 세상은 그의 이런 꿈을 무참히 배반하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배치된 그의 첫 임무는 아버지의 원수가 골프장을 갈 때 신호에 안 걸리도록 신호등을 조작하는 것.
강풀의 시선은 5·18의 또 다른 피해자 계엄군에게도 닿는다. "폭도를 진압하고 간첩을 때려 잡는다"는 지시를 받고 광주에 들어가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김갑세(49).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나를 그 시대로 몰아넣은 사람"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운 그는 죽기 전 모든 피해자를 대신해 '그'를 단죄하기로 마음먹는다.
각자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온 이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당장 광주 망월동 묘지에 가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사전 취재를 위해 망월동 묘지를 찾은 강풀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소개한다. "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속에는 언제나 아빠가 살아 계세요. 딸 소형."
섣부른 화해를 말하지 말라
<26년>은 초점은 현실에 맞춰 있다. 제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1980년 광주가 교과서에서 한두 줄로 요약되는 것으로 끝날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강풀이 여전히 광주의 기억 탓에 고통을 겪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들딸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26년>은 화해, 용서를 주문하는 어설픈 휴머니즘에 기대지도 않는다. 또 다른 피해자인 계엄군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진짜 가해자는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화해, 용서를 말한단 말인가? 지금 섣부른 화해, 용서를 말할 때인가? 강풀이 굳이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으로 <26년>을 구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를 이야기할 때, 이제는 화해하자, 이제는 용서하자, 고들 이야기한다. 용서와 화해란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는 시대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와 화해를 하였는가. 광주는 여전히 아프다."
<26년>의 결말과는 상관없이 5·18은 그렇게 잊혀가고 있다. 오는 11월 영화로도 만들어질 <26년>이 이런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수 있을까?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던 시민군은 "넌 부끄럽지 않은가," 이렇게 절규했다. 이제 광주 이후 27년을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다. 과연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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