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발(發)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한미 FTA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어떻게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미 협상이 타결된 통상협정을 제멋대로 뒤집어엎으려는 미국의 태도는 괘씸하지만, 노동권과 환경권을 강화하자는 내용이 포함될 재협상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 오히려 이번 기회에 잘못된 협상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17일 민주노총 평생교육원에서 '미국의 신통상정책, 그리고 재협상 요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를 열어 이같은 시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점검했다.
미국의 '신통상정책'이란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통상협정 관련 요구사항들을 담은 패키지로 △국제노동기구(ILO)의 5대 협약 이행준수 △7개 다자 간 환경협약(MEAs)의 이행준수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한미 FTA도 일단은 이 정책의 적용대상이다.
미국의 신통상정책에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후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노동권과 환경권이 악화됐다는 미 민주당의 인식이 일부 반영돼 있다. 따라서 이런 내용의 신통상정책을 한미 FTA에 반영하기 위한 재협상은 한국 시민사회에도 좋지 않느냐는 일각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범국본은 한마디로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는 반응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철웅 민주노총 정책국장이 "'재협상에 응해야 하는가', '재협상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타결된 한미 FTA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협상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양국 정부와 의회가 진정으로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원한다면, 일단 국제기구인 ILO부터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또 "노동권과 환경권은 한미 FTA의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즉각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라고 지적했다.
강은주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미국이 신통상 정책에서 거론하는) 7개 다자 간 환경협약은 FTA와 별로 상관이 없고, 그냥 가입해서 잘 (준수)하면 된다"면서 "FTA는 본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원과 환경을 착취해서 돈을 벌 것인가에 관심이 있고, 온갖 좋은 말이 다 들어간 환경 분과의 협정문 내용은 면피용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범국본 정책연구단장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정부는 '조건부' 재협상론, 즉 개성공단 원산지 즉각 인정, 전문직 비자쿼터의 인정 등을 내걸고 '실익이 되는 재협상론'을 전파하려 할 것"이라면서 "범국본은 이미 '한미 FTA 재협상 반대'라는 원칙을 확인했으나, 이것은 결코 이미 타결된 한미 FTA의 협상을 잘 했다는 뜻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의 원천 무효'가 범국본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이다.
미국 측은 오는 18일(현지시간) 전에는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여부를 한국 측에 알려올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하원 세입세출위 무역소위원장인 샌더 래빈 의원(민주당, 미시건주) 등 미 의회의 영향력 있는 의원들이 노동과 환경 분야뿐 아니라 자동차, 제조업, 농업, 서비스 분야에서도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이보다 더 지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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