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방향이 크게 잘못됐고, 사실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4년 간 일해 오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반대로 돌리면서 자기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참여정부의 경제교사'로 불리던 이정우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현 경북대 교수)이 출간을 앞둔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통권 136호)에서 한미 FTA 체결은 참여정부의 '자기 부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가 우파 일색인 역대 정부의 노선에서 크게 선회해 중도정부를 표방했으나 한미FTA 체결로 근본 철학 자체가 애매모호해졌다고 분석했다.
"4년간 지탱해 온 큰 철학이 있었는데 그 철학이 앞으로 한미 FTA라는 해일을 맞아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장만능주의로 갔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이제는 별로 할 말이 없겠구나 해서 참 걱정입니다."
이 교수는 한미 FTA는 관세철폐나 무역 차원에 국한되는 낮은 차원의 통합이 아닌 다른 제도나 정책, 법률까지 수정을 요구하는 높은 단계의 통합이라고 주장하며 한미 FTA로 한국 경제를 미국식으로 설정하게 된 것을 우려했다.
"미국경제가 바람직한 모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미국보다 좋은 모델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우리가 문제 많은 미국 모델에 동의하는가 하는 겁니다. 국가의 운명을 이렇게 다른 나라와의 조약을 통해서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회의가 듭니다."
이 교수는 한미FTA의 부작용으로 '위축효과'를 든다. 지금까지 자유롭게 토론해서 경제 정책과 제도를 만들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제도 하나 바꿀 때도 미국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미국식 모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무역구제,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미국의 비관세장벽에는 손도 대지 못한 것 역시 아픈 상처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은 말로는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보호무역의 온상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손을 못 댔고, 겨우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만든다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십, 수백 퍼센트의 관세를 때리는 상계관세, 반덤핑 같은 걸 어떻게 이겨내겠습니까?"
이 교수는 "미국은 캐나다와 체결한 위원회의 결정도 무시하는 오만한 국가"라며 "항상 시장을 이야기하지만 뒤로는 엉뚱한 짓을 하는 미국의 본질을 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북구 모델을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수출주도형 국가라는 점과 재벌중심형 경제라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20~30년 간 건실한 경제성적을 기록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스웨덴의 거대 재벌인 발렌베리 가의 검소한 생활 태도가 한국 국민의 반(反)악덕기업가 정서와 어긋나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좌파 국가인 북한과의 통일을 고려할 때 한국이 한 걸음씩 중간으로 갈 필요가 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이 교수도 미국식 경제로 치닫는 현실에서 북구형 경제 모델을 도입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겠죠.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수 십 년 걸리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현실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대안이 스웨덴식 사민주의이기 때문에 그런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바다를 항해할 때 별을 보고 가야 길을 잃지 않듯이 말이에요."
이 교수는 그러나 한미 FTA의 체결로 한국 경제는 이상적인 모델로 향하는 길에서 더 멀어졌다고 참여정부를 다시 한번 비판했다.
"한미 FTA는 그 길과 반대편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꿈은 사라지고…'지요. 진보의 꿈을 포기하고 아주 삭막한, 비인간적인 미국 모델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정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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