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제약업체의 피해를 국내 제약회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얻어낸 사실이 확인돼 망신살이 뻗쳤다. 유시민 장관은 이런 주먹구구식 피해 예측을 토대로 시민단체를 상대로 '공개 토론'을 하자고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복지부, 제약업체 설문 조사 근거해 피해액 산정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은 13일 "복지부가 지난 3일 발표한 한미 FTA에 따른 제약업체의 피해 예측 내용은 엉터리 추계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복지부는 "한미 FTA로 제약업체는 5년간 2877억~5007억 원의 피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전 의원의 지적을 보면 이런 복지부의 예측은 근거가 박약하다. 이 복지부의 국내 제약업체 피해 예측은 외국 사례 등을 조사해 얻은 결과가 아니라, 국내 제약업체 14곳의 특허 업무 담당자의 설문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단지 특허 업무 담당자의 '심증'을 기반으로 한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로 피해 예측을 한 게 놀랍다"고 지적했다.
설문 조사에 응한 14명의 특허 업무 담당자는 "의약품에 대한 특허-허가 연계로 소송 증가가 기존보다 30~3000% 정도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최소값과 최대값이 100배 이상이나 돼, 결과의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려운데도 복지부는 이중 가운데 값을 토대로 피해 예측을 했다.
한미 FTA에서 한국 측이 수용한 특허-허가 연계 제도로 국내 제약업체가 만들고 있는 약에 대해 미국의 제약업체가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약의 허가 절차가 자동으로 중단된다. 이렇게 되면 소송 기간(미국 : 약 25개월) 동안 미국의 제약업체는 계속 독점적으로 자신의 신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소송이 늘어날수록 국내 제약업체의 피해는 늘 수밖에 없다.
설문 조사도 반쪽짜리…소송 제기할 쪽은 고려 안 해
전재희 의원은 "설사 설문 조사 결과가 신뢰할 만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쪽이 미국의 제약업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설문 조사를 해야 할 대상은 미국의 제약업체 특허 업무 담당자"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조사는 소송을 제기하는 당사자가 빠진 반쪽만 조사한 셈이다.
전재희 의원은 "정부는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보건의료 분야 피해액 산정을 실증적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제약업체의 특허 업무 담당자의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신뢰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실시했다"며 "심지어 피해액 규모조차도 적게 나오도록 적당한 값을 끼워 맞춘 정황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재희 의원은 "특허-허가 연계에 따른 소송의 증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예를 외국에서 확인하고, 실제로 미국 제약업체의 특허 업무 담당자등을 상대로 소송 의사를 조사하는 등 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미 FTA로 인한 보건의료 분야의 피해액을 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한미 FTA 협상 결과 공개해야"
한편 유시민 장관으로부터 공개 토론 제안을 받았던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석균 정책실장은 "고작 설문 조사에 근거한 엉터리 피해액 추계를 가지고 큰 소리를 쳤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며 "복지부는 즉각 한미 FTA 보건의료 분야의 협상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 제대로 된 피해액 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복지부는 5년 동안 2877억~5007억 원으로 피해액을 추계한 반면, 보건의료단체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1년에 최소 1조 원 정도의 피해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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