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학기술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정작 과학기술 연구에서 여성을 배려하는 접근은 미국, 유럽연합(EU)과 비교할 때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녀를 막론하고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관련 연구개발 사업에서 여성을 따로 배려한 사업은 전체의 6.1%에 불과했다.
여성을 위한 과학기술…사실상 '부재'
민주노동당은 동국대 교양교육원 박진희 교수(과학기술사)에게 의뢰해 복지부의 연구개발 사업에서 남성, 여성 등 성별 변수가 얼마나 고려됐는지를 분석해, 그 결과를 12일 공개했다. 이 연구를 위해서 박 교수는 이번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간 복지부의 연구개발 사업 수, 예산 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6년간 복지부의 연구개발 사업 5557건 중에서 남녀 성별 변수가 고려된 것은 불과 341건으로 6.1%에 불과했다. 복지부의 6년간 연구개발 사업 전체 예산 7522억 원 중에서 이 341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269.4억 원으로 3.6%였다. 연구개발 사업 건당 연구비도 약 7900만 원으로 건당 평균 연구비 약 1억3000만 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에서 남녀 간의 성별을 고려하는 접근을 취하고 있는 미국, EU와 크게 비교된다. 복지부의 연구개발 사업과 비슷한 EU의 사업을 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총 303건 중에서 남녀 성별 변수가 고려된 것은 83건으로 27.4%나 됐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이미 1990년에 질병 연구에서 남녀 간의 성별을 고려하는 접근을 취하기 시작했다. 질병 연구를 할 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중요한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 미국에서는 1993년부터 임상시험에 여성, 소수자를 포함하는 것을 법적 의무로 규정했다.
EU 27.4%의 4분의 1 수준…신약 개발은 단 3%
미국, EU와 크게 비교되는 이번 연구 결과는 2000년대 들어 여성 과학기술자의 숫자가 늘고 있지만, 정작 '여성을 위한 과학기술'은 부재한 현실을 보여준다. 박진희 박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여성 몸이 대상화돼, 난자 채취와 관련된 여성 건강의 문제에 관심이 소홀했던 것은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박진희 박사는 "2005년 한 해만 6조3681억 원이 투자된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이 남성과 여성의 요구와 이익에 동등하게 분배됐는지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연구,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한 도시 환경 개발 사업 등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복지부가 지원하는 신약 개발 사업에서 성별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복지부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지원한 신약 개발 사업 268건 중에서 고작 8건(3.0%)만이 성별을 고려한 접근을 취했다. 이것은 성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필요성이 높은 임상시험의 경우(총 148건 중 45건, 30.4%)와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수준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연구개발 사업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보고할 때 남녀 간의 성별을 고려한 접근을 했는지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연구개발 사업 기획 및 심사 때 여성의 참여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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