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바다의 지문(강화군 길상면 신두리) |
<답사지 배경 설명>
<1> 백중 나들이와 여름 설거지
여름을 전송 보내어 가을을 맞이하려 할 적마다 사람들은 <환절기의 노래>를 되뇌곤 한다. 가령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편.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릴케의 시는 <해시계>의 변화를 주목해보고 있다. 오곡백과를 열도록 해준 여름(열음)의 태양은 충분히 위대하였으니 이제부터는 가을걷이를 위해 들녘 바람을 풀어놓으라 한다. 이와는 달리 밤하늘의 별들을 통해 가을맞이를 해보려고 하는 시편이 있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그러하였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이어서 별을 하나씩 부르면서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을 붙여놓고 있다. 국토의 서정시인에게 태양은 무더운 여름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지만 더위가 걷힌 밤하늘의 맑은 별이야말로 내 마음 속의 아름다운 꿈을 아로새기는 가을의 표상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우리의 세시풍속은 전통적으로 해, 별보다는 '달'을 통해서 가을맞이를 한껏 누려보려고 했다. 곧 음력 7월 15일의 보름달을 '중원(中元)'이라 칭했다. 이 절기를 백중(百中), 백종(百種)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중앙이 되는 계절의 풍요를 표현하는 어휘들이었다. 정월대보름은 '상원'이고 10월 상달 보름은 '하원'이라 하는 데 대하여 추석 한가위(음 8월15일)를 한 달 앞둔 음 7월15일을 '중원'으로 추켜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금목수화토의 5행 순행은 춘하추동의 4계절 순환과 합치되어야 한다. 곧 금(가을/서)-목(봄/동)-수(겨울/북)-화(여름/남)라고 연역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앙에 해당되는 토(土)는 4계절의 어느 절기에도 소속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동양의 천-지-인 합일 철학은 '제5계절'을 암묵적으로 예비한다. 칠월칠석의 칠석맞이에서 칠월중원의 백중맞이로 이어지는 늦여름 오곡백과 결실기가 곧 '중앙-토(土)의 계절'로서 특별 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여름농사의 끝머리가 되지만 가을걷이는 아직 이른 때인지라 이로부터 농한기가 마련되어 상것들과 학동들은 '호미씻이' '책씻이'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누리고 백중놀이의 나들이를 즐겼다. 시인 백석의 <7월 백중>이라는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표준어 표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에 자주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 나게 상나들이 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래를 서너 켤레씩 들여서
시뻘건 꼬들채 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배기 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한 여름 더위도 고비를 넘겼을 뿐 아니라 한 해 농사의 풍작을 코 앞에 두게 되었으니 여인네들이 맨드리와 매무새를 한껏 모양 나게 갖추어 거든한 행보로 나들이 행락에 나서는 정경이 참으로 신명으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미쁜 미풍양속이 도대체 어찌하여 시문학 속에서만 남아 있게 된 것일까.
올해의 백중날은 양력으로는 8월 24일이다. 이러한 절기를 맞이하여 <국토학교>는 나름대로 호미씻이, 책씻이, 백중 나들이의 민속을 아로새겨 보고자 한다. 언제부터 우리의 여름세시풍속을 <바캉스>가 장악하고 젊음과 사랑이 넘친다 하는 <해변으로 가요> 유행가에 맡겨놓았는지 반문하면서 <황해 바다 서머플레이스 탐방>을 기획한다. 여름방학 철을 설거지하여 마무리하고 가을시즌을 매단단 잡도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강화만-경기만 일대의 생태환경은 너무 어지럽게 훼손되어 계절마저도 잊어버린 정황이지만 그럴수록 릴케와 윤동주와 백석의 시심(詩心)을 '인천짠물'의 서머플레이스 풍광 속에서 새삼 아로새겨 보고 싶다.
물론 강화도와 인천 월미도라든가 연안부두 또는 시화방조제와 제부도 등지는 누구나 상투적으로 다녀보곤 하였던 터라 익숙한 관광지라 여기겠지만, '상투성'과 '관광성'을 배제하여 강화만-경기만 일대를 '낯설어하기 탐방'의 눈금으로 새롭게 추적해보고자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이련만, 우리는 이 바다의 '해양성문화'를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지 못해 왔던 것이 아니던가.
<2> '인천짠물', 무엇 때문인가
어찌하여 인천 사람들을 가리켜 '인천짠물'이라 하는 것일까. 싱거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 되물어 봄직하다.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로 인천만 일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항장이 되면서 중국 노동자와 일본 상인의 대거 진출로 삶의 조건이 까다로워졌으니 토박이들이 영악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노릇이었다.
둘째로 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갯벌의 뻘밭이 워낙 넓은 지형적 특성은 근대염전을 경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이루어 주안염전(1907)을 비롯하여 군자염전(1920년대초), 소래염전(1930년대) 등이 연이어 조성되었다. 따라서 다른 곳의 바다보다 짜디짤 수밖에 없었을 터.
그리고 셋째로 인천 일대는 근대화과정의 영광보다는 시련을 더 겪어 왔다. 내륙 쪽의 서울로부터 받는 압박과 함께 외해 쪽에는 두 번에 걸친 양요와 청일전쟁-노일전쟁-태평양전쟁, 그리고 6.25전쟁과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격변들을 거듭 겪으면서 피난민 도시-부랑민 도시를 이루어 '짠돌이'의 세상을 펼쳐놓았던 바 있기도 하였다.
인천시는 1981년 7월 1일 '인천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기도로부터 분리 독립되었다. 1995년 1월에는 '광역시'로 개칭되면서 강화군 전역을 포함시키고 아울러 김포시 검단면, 안산시 대부면에 속하게 된 지역을 제외한 옛 옹진군 전역이 포함되었다. 강화만-경기만 일대가 인천광역시의 관할 영역이 되었는데 해안선의 출입이 복잡하고 연안에는 강화도, 영종도-영흥도와 덕적군도 및 수많은 섬들이 산재하여 '황해의 다도해'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된다.
인천광역시의 자랑대로 하자면 하늘길(인천공항), 바닷길(인천부두 및 송도 신도시), 땅길(제2경인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이의 혜택도 받지만 너무 무거운 짐을 얹어놓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2009년 현재로 2백70만명 인구를 건사하는 이 광역시가 과연 경기도권역만 아니라 서울권역에서도 분리 독립되어 지방정부의 자치 능력과 자율 문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겠는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인천지방정부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아시아 허브'니, '아시아태평시대 전진기지'니 하는 브랜드를 요란하게 내세우고 있다. '2014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로 활력이 넘쳐나는데다가 송도-청라-영종 일대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지정'의 1단계 사업이 끝나고 2단계로 접어들었다 한다.
유비쿼터스의 신도시 건설은 물론이려니와 콤팩트 시티, 스마트 시티, MICE 산업시티로 변모될 것이라 하는데 도대체 이러한 각종 시티의 개념들이 어찌 되는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인천시민을 주인으로 삼는 '블루 오션'이라 하기보다는 서울특별시(1천20만 인구)와 경기도(1천1백30만)의 포위망 속에서 인천 행정체제 자체의 몸 부풀리기를 위한 전시행정의 로드맵이 아닌지 우려될 지경이기도 하였다.
'인천짠물 토박이들'의 역할이 인천 발전 설계와는 일단 무관하고 다만 그 뒷바라지와 덤터기의 대상으로 더욱 전락되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 쪽으로부터 제기돼오기도 한다. 더구나 강화만-경기만의 바다는 서울을 비롯한 내륙지대에서 밀려오는 온갖 개발의 팽창 압력으로 육지의 또 다른 육지(매립지)로 해안선 자체를 상실 당하고 있기도 하다. 강화도-영종도의 육속화에 이어 오이도-대부도의 육지화, 시화방조제-화옹방조제의 간척 매립은 외래자본의 유입과 수도권 지역의 어반(urban) 베드타운 조성을 위한 것일지언정 현지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국토개조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천에는 바다가 없다"라는 시적 담론을 인천 터줏대감 김영승 시인은 펼쳐놓기도 한다. 여기에 '분단의 지정학'과 '냉전의 구조주의'가 이 해안지대에 겹쳐 쌓여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관련 당국의 전문분야 과제로 제출되기만 한다.
국토학교는 강화만-경기만 일대의 복잡다기한 난제들을 직시하면서 편견 없이 '인천짠물'의 바다, 어민들의 바다, 부두 주민들의 바다를 살펴보려고 한다. 지난 16강의 <신택리지-안성 탐구>를 통하여 경기도의 '기전(畿甸)'에 속하는 고을들이 어찌하여 경아리(서울내기) 못지않게 '깍쟁이'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지 짚어보았는데, 이번의 강화만-경기만 신택리지 탐구는 이에 연속되는 기획이기도 하다.
<답사 일정>
8월 28일 (토)
07:30 서울에서 출발 (서울의 북녘 지역은 남녘보다 덜 붐비므로 평소보다 30분 늦게 출발합니다.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호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강화도 역사사건/인물 관련 검색어>
신미양요, 병인양요, 강화도조약, 강화학파, 강화의병, 양헌수(병인양요 프랑스 함대 격파)
, 이동휘(독립운동가), 연기우(의병장), 이건창(양명학자), 강화도간척사(최영준 지음 <국토와 민족생활사> 참조), 철종, 병자호란, 연산군, 삼별초, <삼도부>(三都賦, 개경과 서경과 강화도의 3도를 비교한 고려 문신 최자의 저서), 고려도경, 삼국사기 지리지, 강화 고인돌, 마니산 참성대
09:00-10:00 : 북장대 터-고려궁지-성공회성당-용흥궁 탐방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강화만의 여러 언덕에 오르면 보인다. 한탄강-임진강, 북한강-남한강, 북녘의 예성강, 그리고 강화해협임에도 '소금 하천'이라 부르는 염하(鹽河)의 여러 강물들이 한 곬으로 몰려들고 있음을 조망한다. 문자 그대로 강(江)의 화(華)를 이루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강의 화려 아니라 폐쇄의 회로, 잡답의 미로 지대임을 거듭 확인해보게 된다. 강화도의 '화려강산'을 그 역사와 문화와 삶 자리의 본디 모습을 통해 찾고 그리하여 계속 탐문 수색하고 싶다.
강화군은 '심도(沁都:강화도의 별칭)문화역사길' '호국돈대길' '갯벌길' 등의 탐방로를 조성해 놓고 있는데 대표적인 구역을 답사한다. 심도문화역사길의 용흥궁은 강화 도령(철종)의 사저(私邸)를 당대에 개축한 것이었는데 한옥 원림문화의 운치는 서울의 궁궐에 못지아니하다.
강화 성공회성당은 1900년 11월 15일에 건립되었는데 당대의 대목수(도편수)가 한껏 기량을 발휘한 전통건축의 화미(華美)를 보여준다. 지금도 성당의 전면에는 현판과 주련을 붙여놓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강도(江都)라 하였는데 이 섬 지역이 39년 동안이나 왕도로서 군림해온 체통과 위풍의 당당함을 '고려궁지'가 보여준다. 강도의 왕성은 개경의 4대문 축성을 그대로 본뜬 것이라 하였는데 북문의 북장대 터에 오르면 세계국가 몽골에 맞섰던 고려인들의 '해양왕국' 지킴이의 위용을 두루 살피게 되는 바, 오늘의 '분단 반도문화'를 반성하게 된다.
10:20-11:00 : 광성보 문루-돈대 (강화군 불은면)
강화해협이라 하고 또는 염하, 손돌목이라고도 한다. 김포시의 육지와 일의대수로 지척지간이지만 아시아 대륙성문화와 해양성문화의 최첨단 프론티어 지역을 이루어왔다. '호국돈대길'에는 5진 7보 54돈대가 있었는데 광성보 문루와 돈대는 가장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 군사기지와 관련되는 역사스토리도 다양하게 저장되어 있는데 19세기 한말시대의 '전통과 근대'의 문화접변 (文化接變, acculturation) 양상과 상황에 관한 현장학습이 필요하다.
▲김억 화백의 목판화 <염하(鹽河)> 중 광성보 부분. |
11:20-12:00 : 황산도 갯벌 답사 및 점심 식사 (다도해식당에서 바지락칼국수)
북쪽으로는 새롭게 개통된 초지대교가 놓이고 남쪽에는 영종도의 인천공항이 바짝 다가 보이기 때문에 황산도 일대의 '장소성'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강화갯벌의 전망대 역할은 충실한 편이다. 지리학자 최영준은 강화도의 문화역사코드는 무엇보다도 '갯벌 간척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의 강화도 본섬은 세 개 이상의 섬을 간척사업으로 통합한 것이라 했다. 전등사 일대는 별도의 섬이었다는데 황산도 안쪽의 갯벌이 '벽해상전'을 일으켰음을 고찰해볼 필요도 있겠다.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세계 4대 간석지의 하나로 꼽히는데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되었다. 그 크기가 여의도의 52.7배에 달한다고도 한다. 그러함에도 천연기념의 습지가 동검도의 육로화와 순환도로 등의 훼손으로 뭇 생명체의 터전이 쓸모없는 황무지로 황폐해지고 있다. 순천만 생태환경 조성 같은 방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고 주민들은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8월 28일 황산도 물때표 (음력 7:19/ 10물/ 백중사리)
간조시간(썰물) 00:50/ 13:04 // 만조시간(밀물) 06:46/ 19:04
<알아봅시다 : 강화도 시인 함민복>
강화도 남쪽 마을 화도면 동막동의 갯벌 환경 속에서 사는 함민복 시인은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낸 바 있는데, 바로 갯벌에 관한 깊은 문학통찰이었다.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눈물은 왜 짠가>를 비롯하여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을 모은 수필집 <길들은 모두 일가친척이다>, 그런가하면 <바닷물, 에고 짜다>라는 제목의 동시집도 최근에 펴냈는데 그는 동심의 순수한 마음으로 갯벌 마을 사람들의 거칠고 억센 삶의 율동을 살핀다. 강화도를 노래하고 수도권 변두리의 풍정과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읊는다.
13:00-14:30 : 인천 중구 문화역사지구 탐방 (인천역-차이나타운-자유공원)
도시건축학자들은 현재의 산업도시 단계에서 탈피하여 '탈산업도시(Post Industrial City)'로 진입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인천시일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인천시 중구는 흔히 '구시가지'라 하는데 비록 국토의 공간층은 비좁고 어지러울지라도 그 시간층은 두텁고 깊숙하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내장하고 있다.
인천시는 '중구 문화역사지구' 진흥사업에 나서고 있는데 특히 오늘의 한국-중국 관계도 고려하여 '차이나타운' 조성의 도시디자인 설계를 세련되게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인천이 수려한 국제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가령 백범 김구가 노역에 나서기도 했던 원래의 인천부두 복원 사업이라든가 지저분한 상업주의에 함몰되어버린 '월미도 문화의 거리'의 품위를 높이려는 노력이 모노레일 건설과 함께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15:30-17:00 : 탄도항-누에섬-전곡항 산책
'바다의 교향악'에 굶주린 이들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에 대하여 오늘의 경기만 바다는 도무지 제대로 감당해낼 방도가 없는 듯 보인다. 온갖 항만사업, 공단사업, 유비쿼터스 시티 건설 사업들이 중첩되어 있는데다가 넘쳐나는 물동량으로 이만저만 분주한 워터프론트가 아니게 되어 있음을 목도한다.
원래는 섬이었던 시흥시의 오이도와 안산시의 대부도는 더 이상 섬마을이 아니게 되어 있는데다가 두 지역을 잇는 11.2km의 시화방조제 아스팔트 도로의 해변 풍경은 가령 부산 광안리의 광안대교가 품어 안는 풍광을 부럽게 여겨야 할 것처럼 보인다. 대부도-제부도 일대의 국토답사를 절약하여 탄도항-누에섬 일대의 해변과 '모세의 바다'를 찾으려고 하는 까닭이다.
탄도 물때표 (10물)
간조시간(썰물) : 00:56/ 13:09 만조시간(밀물) : 06:23/ 18:40
일몰시간 : 19:10 / 월출시간 : 20:25
17:10-18:30 : 선감도 일대에서 저녁 식사(자유식) 후 숙소(아침농장) 도착
19:00-20:00 : 저녁 대화모임 <화성 앞바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들이 등장하여 한바탕 판타지를 펼쳐 보이는 상상체험의 구성이었는데, 황해 바다의 꿈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아로새겨 왔는지 황해 역사스페셜 이야기꽃을 마련하고자 한다. 미래상상연구소 대표이며 인문학습원의 어린이창의력학교 교장인 홍사종 선생은 삼한시대-삼국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양만 일대의 문화역사를 집중 탐구하여 실제적으로 '해상세력'의 활발한 활동이 장구하게 지속되어 왔음을 밝혀냈다. '스토리가 있는 황해문화'가 얼마나 찬연한 것이었는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금은 화성시 서신면에 속해 있지만 남양군은 1914년의 행정개편 이전만 하더라도 황해 연안의 거대 군현이었고 남양 홍씨들의 세거지를 이루어오던 곳이었는데 이 지역의 진취적인 '항해의 시대사'가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 역사비밀코드 패널 디스커션을 갖는다.
<주변의 찾아볼만한 곳> : 책 읽는 집-옥란재(玉蘭齋) (화성시 서신면 용두리)
'정원(가든)'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조경문화인 것이고 한국전통의 원림(園林)은 호혜적(互惠的) 자연관의 바탕에서 모든 생명과 사물이 상통 상생하는 생명공간의 조영이었다. 옥란재는 이러한 원림문화의 원형을 오늘의 산업사회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겠는지 살필 수 있게 하는 참으로 희귀한 '녹색의 장원'을 갈무리해 놓고 있다.
구박 받는 풍경, 버림 받은 풍경, 상처 입은 풍경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이 있기에 옥란재의 원림 체험은 풍경다운 풍경이란 과연 어떠한 것을 가리키는지 그 자체로 국토학교의 특강이 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다른 약속의 일정이 잡혀 있어 탐방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능하다면 일요일 아침에라도 견학 견문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탐방하고자 하는 이는 사전 연락을 취하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둔다.)
옥란재의 강산주인인 홍사종 선생은 '오래된 미래'는 곧 '오래된 과거'의 올바른 생명력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면서 이러한 깨달음으로 '황해 문화역사 탐구'에 몰두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8월 29일 (일)
07:00-07:40 : 아침 식사 (아침농장)
08:00-08:30 : 화옹방조제 중간선착장 산책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우정읍 매향리 사이의 바다에 제방을 쌓아 9.8km의 4차선 도로를 2007년에 개통했는데 특이하게 자전거 도로와 인라인 도로를 양쪽에 설치했다. 하수 처리장 시설을 갖추고는 있으나 환경단체는 오염될 염려가 있는 인공담수호 계획은 철회하여 제2의 시화호 사태를 방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평리 기점 6.6km 지점에 중간선착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잠시 나의 마음을 아침바다에 맡겨놓기로 한다.
09:00-10:00 : 녹색체험마을 매향리 탐방 (화성시 우정읍)
'농촌과 어촌의 아름다운 조화'라는 로고가 매향리 홈페이지에 떠 있다. 지난 시절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 마을 주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해주는 표현이다. 미군 비행기의 폭격장 처지에서는 벗어났으나 숱하게 방치돼 왔던 포탄들은 아직껏 계속 수거중이다. 주민들은 더 이상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굳건히 일어서려는 이 마을을 '아름다운 여행'의 탐방지로 방문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추억 가득한 물과 땅 체험' 프로그램을 주민들은 계절별로 특색 있게 마련해놓고 있는데 겟벌생태체험 학습, 옛날식 장작구이 체험 학습 등과 같은 내용들이다. 국토학교는 주민들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매향리 마을 바로가기 http://maehyangri.invil.org/
10:40-12:00 : 수원 화성 순방
수원시의 도심 한복판을 우뚝하게 올려 세워놓고 있는 팔달산(143m)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130ha의 면적으로 화성의 여러 문루들과 성곽이 펼쳐져 있고 정조 임금의 행궁이라든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릉원의 융릉 등이 자리 잡고 있다. 1794년(정조 18)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이었는데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니 2백년이 조금 지나서야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수원 화성은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일깨우게 하는지 되묻고자 한다.
그 전에는 그냥 '수원성'이라고만 하였는데 '화성'이라는 본디 명칭을 되찾도록 하게 된 것은 화성축성 200주년이 되는 1996년부터 본격적인 복원공사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지난 시대의 무지몽매부터 반성하게 된다. 다음으로 경기도의 수부(首府)인 수원은 화성의 웅대한 도시경관을 되살리게 됨으로써 이미 도시인구 1백만 명을 돌파한 오늘의 이 도시가 지녀야 할 자부와 긍지 또한 되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반차도'의 그림과 능행길 행차의 재현 등으로 '수원 지역문화'를 높은 단계로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공동으로 정조 임금 반차 행로의 도보답사 축제를 연차적으로 진행하고 있거니와 이는 '그린 웨이'의 전통 녹색도로 복원 차원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하고 18세기의 신도시건설로서는 가장 세련되고 탁월한 축성과 설계였음을 시민사회가 모두 알게 되기까지 선구적인 역할과 각고의 노력을 펼친 숨은 문화인, 전문 연구자 여러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면서 경의를 드리고자 한다. '숨은 문화일꾼'은 노고만 겪게 되고 '드러난 영광'은 다른 이들이 차지해오곤 하였음을 얼마나 숱하게 목도해왔던 것인가.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바로가기 : http://hs.suwon.ne.kr/index.asp
수원시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바로가기 : http://museum.suwon.ne.kr/
수원화성문화제 바로가기 : http://shfes.suwon.ne.kr/
12:20-13:00 : 점심 식사(골목집 식당의 묵은지찜 요리)
13:30-14:30 : 시화호 갈대습지공원 (안산시 사동-본오동)
시흥, 화성, 안산시에 걸쳐 있는 시화호는 방조제를 쌓아 매립된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려는 담수호 목적의 인공호수로 건설되었으나 1994년의 완공 직후부터 심각한 수질 오염문제를 불러 일으켜 1997년에 이미 갑문을 설치하여 해수호로 변형시킨 바 있다.
2002년에 개장한 시화호 갈대습지공원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인공습지 생태공원이라 한다. 시화호로 유입되는 반월천, 동화천, 삼화천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하고 다시 갈대습지를 인공 조성하여 정화시키는 것인데 여기에 주변 환경을 공원화하여 안산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새로운 명소가 되게 하고 있다. 이 공원은 수질오염의 심각성에 관한 반면교사의 역할과 함께 생태환경의 중요성도 일깨우게 하는데 한국 토건건설문화의 양면성을 함께 살필 수 있게 한다.
시화호 갈대습지공원 바로가기 : http://sihwa.kwater.or.kr/
<주변의 찾아가 볼만한 곳> : 성호공원-성호기념관 (안산시 일동)
'경기실학'의 문화답사는 안산시의 성호 이익 유적, 광주시 천진암의 서학 강학소 유적, 용인시의 반계 유형원 묘소, 여주시 주어사의 권철신 강학소, 홍대용과 박지원의 스승이던 김원행의 남양주시 석실서원 유적,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순례하게 한다. 성호기념관은 2002년에 건립되어 성호공원을 조성하였는데 인근의 성호 묘소와 함께 경기실학의 원류 연구를 위해 답사해야 하는 곳이 되며, 과연 오늘에도 '경기실학'이 요청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여 실천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15:00-16:00 : 월곶 옛 염전과 소래포구
1995년 12월 31일에 폐쇄 철거되고 만 수인선 협궤열차의 흔적은 현재에 이르러 인천 동남구와 월곶 신도시 사이의 소래포구에 놓인 소래철교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이 다리는 보행도로 용도로 활용되다가 이마저 금지시키고 철거 논의마저 일고 있는 형편이어서 수인선의 추억마저 현지 확인할 방도가 없게 되어 있다. '비좁은 궤도(협궤)'인데다가 10량, 15량 아니라 2량, 3량의 열차만 매달고 다니는 모습만 이색적인 것이 아니었다. 인천짠물-수원깍쟁이의 고운 정 미운 정 모두 싣고 다니면서 바다-갯벌-농토의 풍경 변화를 즉각 즉석 계속 스케치해주고 있었다. <1982년 겨울 수인선 취재>의 기행을 다녀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글을 국토학교 카페에 곧 올려놓고자 하니 많이 방문해주기를….
국토학교 카페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dadsaschool
국토학교는 작년 4월부터 매월마다 국토답사에 나서기 시작하여 2년째에 접어들면서 더욱 알차게 계속되어 이 8월의 황해바다 찾기 국토학교는 이미 제17강의 답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카페는 참된 국토문화를 위한 아카이브(문서 보관소)이며 아스날(정보 창고)이 되고자 하니 참여와 활용의 기회를 누리기 바랍니다.
내륙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 잡았던 옛 염전과 넓디넓은 갯벌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도록 <시흥갯골생태공원>이 200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2012년까지 생태환경 보존사업이 계속될 것이라 한다. 7.5km 구간에 이르는 광대한 간석지 지역인데 특히 옛 염전 일부를 복원하여 천일염 생산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방문자에게는 무료로 천일염을 제공하기도 한다. 갯벌에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의 염생 식물이 자라고 붉은발농게, 방게 등이 꼼지락거리기도 한다.
소래포구와 그 아래쪽의 월곶포구는 워낙 인파가 몰려들어 혼잡스러운데 귀로의 마지막으로 소래대교에서 복잡다단 미묘하기 그지없는 인천만 월곶-소래 해안 일대를 조망한다. '월곶'이라는 지명은 바다 쪽을 향해 달의 형상으로 튀어나온 곶이라는 데에서 유래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수군 만호가 진을 치고 있었던 군사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오늘에도 실감해보고 싶다.
16:00 : 서울로 출발
국토학교 8월 답사 참가비는 16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와 뒤풀이, 입장료,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국토학교 제17강 답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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