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섬유 분야의 협상에서 미국 측이 한국산 섬유제품에 대한 관세를 조기에 철폐해주는 대가로 우리나라 섬유업체들의 영업비밀을 통째로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원래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라지만 이는 도를 지나친 것이라는 평가다.
<한겨레>는 7일 익명의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미국이 (중국 등의 불법적인) 우회수출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의 섬유업체들이 각종 구매요청서, 선하증권, 통관서류, 상업송장, 생산기록, 재단기록 등 수십 가지 자료를 해마다 갱신해서 미국 세관 당국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요구 자료에는 우회수출을 파악하는 것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근로자 임금 및 숙련도, 근로시간, 종업원 수, 생산량, 생산기계 수와 종류, 미국 쪽 바이어 명단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한겨레>는 또 의류산업협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심지어 미국 세관이 미국으로 수출하지 않는 국내 업체에 대해서도 사전 통보 없이 현장조사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협정문에 담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같은 미국 측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국내 업체들의 영업비밀 누출 가능성 △중소업체에 대한 자료 제출 부담 가중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보호법' 위반 등과 같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가 얻게 될 것이라곤, 가장 좋은 협상 결과가 나와 봐야, 1598개 섬유품목 중 200개 품목에 대한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85개 품목에 대한 얀 포워드(Yarn Forward, 원사 직조부터 재단까지 모두 한국에서 이뤄져야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규정) 적용이 완화되는 정도다.
산자부는 이날 해명자료를 통해 "미국이 시장 개방의 보완 장치로서 우리나라에 우회수출방지 장치를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구매요청서, 산하증권, 통관서류, 상업송장 등을 매년 갱신해 미국 세관에 제출하라는 요구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우리 측 협상단이 국내에서 '협상 전리품'으로 선전하기 위한 '작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큰 것'이나 '본질적인 것'을 내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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