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이 닷새만인 19일 종료됐다.
무역구제와 자동차 및 의약품에 대한 수석대표급 대화에 이목에 집중됐던 이번 협상에서는 한미 양측이 이 분야들에서 서로 '얼마만큼을 줄 수 있는지'와 '얼마만큼을 받아야 하는지'를 놓고 서로 속내를 털어놨다.
또 우리 측은 미국 측 요구대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국책금융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한미 FTA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대신 취약산업 저리대출 등 이들 은행이 수행하는 정책금융 관련 제도는 협상 적용 예외목록인 유보안에 넣자고 제안하는 등 많은 쟁점들에서 '양보안'을 내놓았다.
반면 미국 측은 △기간통신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경쟁 분과 협정문에 '재벌' 관련 각주 삽입 △저작자의 사후 저작권 인정기간을 현행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 △정부조달 분과에서의 주(州)정부 적용 배제 등 기존의 요구들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미 FTA 협상장 밖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잇단 국내반입 좌절을 둘러싼 장외협상이 '원만히' 진행됐다. 웬디 커틀러 미국 측 대표는 '쇠고기 시장 개방 없는 한미 FTA는 없다'는 기존의 강경한 자세를 협상기간 내내 유지했고,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도 "뼛조각을 뼈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전향적'인 자세를 내비쳤다.
"커틀러 대표가 돌아가서 숙제 잘 할 것으로 기대돼"
상품무역, 기술표준(TBT), 경쟁, 정부조달, 노동 등 5개 분과의 협상을 끝으로 한미 FTA 6차 협상 일정을 공식으로 마무리한 우리 측 김종훈 수석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협상에 대한 총평으로 "이번 협상에서 무역구제, 자동차, 의약품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진전이 없었으나, 상품, 금융서비스 등 여타 분야에서는 상호 유연성을 발휘해 일부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무역구제, 자동차, 의약품에 관한) 논의사항이 어떻게 합의됐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면서도 "저와 커틀러 대표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거기에 대해 (커틀러 대표가 워싱턴에) 돌아가서 (고위급 이해관계자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숙제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무역구제와 관련해 6차 협상에서는 새로운 제안을 주고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날 브리핑에서 김 대표가 거론한 "커틀러 대표가 돌아가서 숙제를 잘 할 것"이라는 말이나 "'가정'을 전제로 이해를 타진해 보는 쪽으로 합의가 됐다"는 말은 결국 양측 대표가 무역구제와 자동차 및 의약품을 둘러싼 빅딜 시나리오들을 여럿 제시하며 서로 속내를 내보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커틀러 미국 측 대표도 이날 김 대표에 앞서 가진 브리핑에서 "(수석대표급 협상에서) 워싱턴에 돌아가서 다음 7차 협상이 열리기 전까지 우리 측 고위급과 검토하고 논의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이는 이번 주에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기간통신사업과 방통융합사업에 '가장 높은 관심'
이날 김종훈 대표의 브리핑에 따르면, 상품무역(공산품) 분과에서는 한미 양국이 민감품목 50%의 관세철폐 이행시기를 앞당기는 등 협상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측이 한국의 대미수출액 중 23%를 차지하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여전히 '기타(관세철폐 이행기간 10년 이상)' 단계에 분류해 놓고 있어 수입액 기준 한미 양국 간 불균형 상태는 79.2% 대 65.2%로 여전히 남아 있다.
농업 분과나 섬유 분과에서는 이렇다 할 협상 진전사항은 없었다. 농업 분과에서는 양측이 500여 개 품목을 놓고 각 품목에 대한 민감성과 관세철폐 이행기간을 어느 수준으로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식으로 협상이 진행됐다. 섬유 분과에서는 섬유에만 단독으로 적용되는 '특별 세이프가드'를 도입하지 않고 모든 상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반 세이프가드'를 섬유에도 적용하자는 쪽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투자 분과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ISD,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에서 '투자자가 속한 국가도 해당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로 추가됐고, 또 '간접수용(수용은 아니지만 사실상 수용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정부 정책)' 예외목록의 예시에 '부동산가격안정화 정책'과 '일반적인 조세정책'을 넣자'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 미국 측이 "검토할 의사는 있다"고 밝혔다.
서비스 분과에서는 양측이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을 위한 작업반 구성 및 운영 계획에 대한 문안에 합의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 분과에서는 미국 측이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완화'와 '방송·통신 융합서비스 시장의 개방'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융서비스 분과와 관련해서는 김 대표가 "한미 양측이 협정 적용 대상이 되는 국책금융기관을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 한정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한 추가 설명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는 정부 정책 기능과 상업적 기능이 동시에 있다"면서 "이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통신·전자상거래 분과, 경쟁 분과, 지적재산권 분과, 정부 조달 분과 등에서는 주목할 만한 진전사항이 없었다. 단, '미 민주당의 집권' 여파가 강해진 것으로 알려진 환경 분과와 노동 분과에서 한미 양측이 사실상 '가지치기'를 완료했다.
7차협상은 2월11일부터 워싱턴에서…"최종타결은 어려울 것"
다음 7차 협상은 2월 11일부터 나흘 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다. 7차 협상은 협상 직후 우리나라에서 설 연휴가 시작되는 것을 감안해 일요일(11일)에 시작하는 것으로 한미 양 측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한미 양국은 7차 협상 전에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여러 분과에서 실무급, 협상대표급, 고위급 등의 비공식 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김종훈 대표는 "7차 협상에서 (협정이) 타결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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