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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이권'이 도시를 좌우하던 시대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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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이권'이 도시를 좌우하던 시대는 갔을까?

<서평> 손정목,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원로 도시계획가이자 우리나라 도시(계획)사 연구의 태두 손정목 선생이 해방 이후 현대까지 도시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서울 반 세기의 성장사를 증언한 '서울도시계획사'를 펴낸 뒤 두 해 만에 일궈낸 또 하나 땀의 결정이다.

'도시계획'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에 이 분야에 입문했던 손 교수는 급성장기 서울시의 기획관리관으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와 도시 전문지 <도시문제>의 '고정위원'으로 도시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봤고, 교수로 변신한 뒤로는 30년 넘어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의 도시사, 도시계획사를 외로이 천착해 왔다.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앞으로 '이야기')는 두 해 앞서 나온 '서울도시계획사' 다섯 권을 보충하는 책이다. 해방 이후 60년의 도시사를 통시적으로 서술하는 대신, 이 시공간 속에서 펼쳐진 대형 '드라마'들을 골라 '그 일이 어떻게 해서 이뤄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종결되었는가'를 그려낸다.

취급되는 드라마는 여러 편이다. 유곽의 폐지와 종로3가 사창가를 해체시킨 '나비 작전', 불도저 김현옥 시장의 등장과 퇴장, 강남개발의 착수, 지하철 건설의 배경,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계획의 전말, 우리나라 최초·최대의 도시철거민 민란으로 기억될 광주(경기도) 대단지사건, 과천시의 탄생배경, 한국 아파트의 역사, 노무현 정권의 천도계획 전말(위헌판결까지) 등이 포함된다.

***이 '역사 재발견'의 시대에 우리는 왜 '도시의 역사'에 무관심한가?**

광복 60년을 맞은 우리 사회는 지금 '역사'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 열풍이 이 사회를 휩쓸고 있고, '역사 스페셜'이 TV 방송에서 뜨며, 한옥 마을 땅값이 치솟고, 강남 아파트의 거실에는 (유럽) 골동가구가 대유행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시와 도시계획에 관한 한 역사를 알려는 열풍은커녕 미풍도 불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건 전문가건 위정자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그런 도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무관심이다. 오로지 이런저런 사업으로 내 집, 내 땅 값이 오를 건지, 정치적 이해득실이 어떨 것인지에만 온 관심을 쏟는다.

왜 '역사재발견'의 시대에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만은 모두 관심을 끄고 지내는가? 그 자체가 연구거리라고 생각한다. 도시환경이란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어서 흥미유발이 안될 수도 있다. '도시계획'이라는 분야 자체의 연륜이 짧아 자기성찰의 안목을 키워내지 못한 탓도 있다. 손 교수의 지적대로 자료의 부실 또한 큰 장애다. 그나마 있던 자료는 한국전쟁으로 멸실되고, 군사혁명 뒤에는 수입 펄프 대체한다고 폐지로 처분됐으며, 모든 설명은 차트 행정으로 빈약해졌다. 도시 전문가들이 반역사주의 시각 위에 구축된 수입 이론들(우파건, 좌파건)에 매몰되어 있는 것도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는 오늘의 연원이며, 현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오늘의 일을 올바로 풀 수 없고 내일을 제대로 열 수 없다. '과거사 정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지혜를 찾기 위해서 도시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손정목 교수의 저술이 현재 우리 도시의 연원을 그려내는, 황무지에 홀로 솟은 귀한 샘이라고 여긴다.

***'이론'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다**

손 교수의 다른 저술들이 그러하듯 '야야기'는 이야기일 뿐 이론이나 해설이고자 하지 않는다. 어떤 간명한 모델이나 이론으로 우리 역사를 그려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구성지긴 하나 흘러가는 객담으로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시건방졌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세상 (그리고 이론)을 좀 더 알게 된 지금, 나는 손 교수의 그런 소박한 이야기 전개방식을 더 귀하게 여긴다. 현실이 이론보다 더 풍부하고 복잡하며 먼저이고 '진짜'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론은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야기'를 해석하고 이론화하는 것은 손 교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광복 이후 60년을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주무대는 '격동의 시간' 속의 서울이다. 손 교수는 그 특유의 어법대로 단언한다. "1960년대 초에서 1990년까지의 30년간, 한국사회에서 전개된 도시화만큼 급격한 사례는 이 지구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지난날에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없다고 확신한다." 사실 엄청난 급성장이었다. 이 시기 서울의 경우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불어나는 데 5년도 안 걸렸다. 이런 급성장이 한 세대 동안 지속된 것이다. 이렇게 가공할 속도로 불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에 도시는 너무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1930년대 대동아 전쟁 이후 60년대 초까지 도시성장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는 전혀 없었던 반면, 한국전쟁으로 있는 시설마저 태반이 파괴됐다. "70만 명 살면 적합할" 도시를 어떻게든 고치고 키워서 1000만 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시대 당국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조직, 인력, 재정, 제도 모두가 미비한 상황에서 거의 감당 불가능한 임무였을 것이다. 거의 '위기관리' 상황이 아니었겠나 싶다. '이야기'에서 그려내는 드라마에는 반복적으로 인구집중, 빈곤, 무허가 건물과의 전쟁이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불도저' 시장, '황야의 무법자' 시장들이 등장하기에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급성장기, 도시형성의 시절, 왜 일관성 있는 계획을 세워 도시를 체계적으로 건설하지 못했느냐고 당시의 당국자들을 비판한다. 당연한 비판이고 피할 수 없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러한 비판이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갖춘 것 없는 가운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시수요를 감당해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강남 불패'의 신화, 각본도 없이 우발적으로 만들어지다**

'불도저'와 '황야의 무법자'들이 휘두르던 이 개척시대는 '뛰면서 생각하는' 시대였다. '이야기'에는 대본도 없이 드라마를 시작하거나 진행 중에 대본을 이리저리 바꾸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강남개발이다.

강남개발은 기존의 강북을 시들게 하고 강남을 새로운 서울로 부상시키는, 엄청난 파장을 가진 대역사였다. 이러한 대역사가 개발수요가 무르익어서도 아니고, 차분하게 준비된 장기계획이 있어서도 아니고, 돌연, 우발적으로, 그리고 치밀한 사전계획 없이 시작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오로지 돌연히 등장한 경부고속도로의 도로용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규모의 구획정리사업을 펼친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313만 평으로 시작해 520만 평으로, 나중에는 정부청사를 옮긴다고 937만 평으로 용수철처럼 마구 늘어났다.

불쑥 나타난 경부고속도로사업 때문에 기존의 드라마 대본은 폐기처분해야 했다.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애시당초 강남개발이 아니라 여의도를 거점으로 서울-인천축으로 성장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대본 없이 시작한 강남개발의 드라마는 첫 장면을 찍고 뒤따라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수요가 없는 강남개발을 시작하고는 땅값을 부추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시책을 양산한다.

공무원 아파트 건설, 특정지구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제정, 강북 일대의 백화점, 고등학교, 술집 등의 신설억제, 고속버스 터미널 입지 마련, 영동 아파트지구 개발 등이 이어진다. 모두 강북을 고사시킨 가운데 벌어지는 일이었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강남 불패'의 신화는 개발촉진시책을 끊임없이 생산해낸 정부가 30년 전부터 만들어낸 것이었다.

***광주대단지 사건을 다룬 도시사 연구서는 왜 없을까?**

'이야기'는 또 개발시대 드라마의 연기자들은 시장과 시청 공무원들이었지만 작가와 연출가는 어디까지나 대통령과 그의 지휘 아래 있던 중앙정부였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서울의 도시기본계획이 졸지에 바뀌게 된 것이 한 예다. 시장은 대통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로봇이었다. 오로지 대통령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인정받는 것이 행정의 잣대였다. 크고 작은 사업을 모두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받고 재가를 받았다. '이야기'에는 충성경쟁과 전시효과를 위해 시정의 우선순위가 바뀐 경우가 심심치 않게 제시된다.

'광주(경기도) 대단지사건'에 대한 기술은 '이야기' 속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다. 개발시대 서울의 국공유지는 살 길을 찾아 밀려든 사람들의 무허가 판잣집들로 가득 찼다. 버섯처럼 피어난 달동네들은 '불도저' 식 도시건설 과정에서 언제나 '청소'의 대상이었으며,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집단으로 이리 저리 집단이주를 당했다. 이러한 '무허가건물과의 전쟁'을 일거에 마무리하겠다는 발상에서 탄생한 것이 광주 대단지였다.

3년 안에 달동네 주민 1만5000가구, 인구 50만~60만 명을 철거해 허허벌판 광주 언덕으로 집단이주 시키려 했으니 그 '용맹함'이 놀랍다. 광주대단지사건은 그 와중에서 3만 명의 주민이 성남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큰 사건이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도시계획 교과서에서도 크게 다룰 일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다루는 사람도,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태풍 맞는 목포 앞바다' 같은 한국 도시사 60년**

해방 이후 60년의 도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야기'에서 이에 대한 직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손 교수의 생각은 분명하다. 두 해 전 발간된 책에서 그는 한국 도시계획 60년 역사의 성격을 일본 도시계획 120년사에 대비해 반어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도쿄의 도시계획 120년의 역사에는 항상 상식이 통하고 있었다. 권력의 나무도 없었고 정치자금의 창출도 없었으며 이권의 개입도 없었다. 개인의 재산권이 무참히 짓밟히거나 탈취되는 사건도 없었다. 하물며 도시계획을 통해서 재벌이 탄생되고 육성된 과정도 없었다. 그 쪽의 도시계획을 '바람기가 전혀 없는 날의 남해 바다'로 비유한다면 이쪽의 도시계획은 '태풍을 맞은 목포 앞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서울도시계획의 이야기> 한울, 33쪽)

지난 60년 한국의 도시사가 '태풍을 맞은 목포 앞 바다' 같았다면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과연, 우리의 도시계획은 이제 '상식이 통하는' 경지에 들어섰는가? 여기에 대해 '이야기'는 언급을 피한다. 다만 말미에 '노무현 정권의 천도계획 전말'을 기술하면서 상식이 결여된 계획이 상식의 힘에 의해 무산되는 과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해 줄 뿐이다. 분명, 세태는 많이 변했다. 도시계획을 통해 재벌이 탄생되고 정치자금이 마련되는 시대는 아니라고, 재산권이 짓밟히고 권력과 이권이 도시계획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도 지났다고 믿고 싶다.

***정말 권력과 이권이 도시계획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나?**

그러나 이제는 정말 개발시대와 달리 정치적 계산이 계획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가 도시계획을 좌지우지 하지 않고 지방에 위임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는 개발을 위한 개발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가? 선거 통에 돌연 출현한 '신수도 계획 (이제는 '행복도시'로 이름을 바꿨다), 당위성이 의심스러운 각종 신도시와 뉴타운(뉴타운의 정의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신도시다), 숱한 혁신도시, 기업도시계획을 눈앞에 보면서 자신 있게 "그렇다"하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당국자와 도시전문가들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에는 의도했으나 의도대로 실현되지 않은 일, 의도보다 부작용이 더 컸던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한 사례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신만만해 보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장우선주의자든, 계획옹호론자이든, 하나같이 원하면 이뤄진다는 식이다.

신수도계획을 고집하면서도, 왜 지금에 비할 바 없는 통제력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조차 신수도계획을 접은 이유는 캐지 않는다. 청계천 개발로 도심의 전자, 공구상가를 이주시키려는 서울시는 불과 20년전에 동일한 목적의 '도심부적격 시설'이전계획이 왜 수포로 돌아갔는지 따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으로 내놓은 강남 대단지 건설계획이 결국 집값 상승을 부추겼는데도 같은 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고집한다. 온 강북을 아파트 위주의 '뉴 타운'으로 개발하려 하면서도 도시를 단지로 뒤엎은 과거의 개발방식으로 어떤 사회적 결과가 나왔는지 따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역사에 비춰볼 때 우리 도시의 미래는?**

올해로서 우리나라에 도시계획분야가 소개된 지 40년이 된다(40년전, 최초의 도시계획연구소가 생겼다. 대학에 도시계획 교육과정이 창설되기 2년 전이다). 인생 40이면 생각에 중심이 잡히고 흔들리지 않을 나이다. 한 분야로서도 생각이 축적되고 그 분야의 과거를 성찰해볼 때가 된 세월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를 통해 현실을 다시 보려는 여유는 생겨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두 가지 상반된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관변'에서는 출생부터 기술관료로서의 '수단적 합리주의'의 문화가 강해 '과학주의'가 갖는 반역사주의에 매몰되기 쉽다. 그에 비판적인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는 워낙 '구조'에 매몰돼 행위자의 역할에 눈을 돌리지 않은 탓이다.

손정목 교수의 노력은 우리의 역사에 관한 한, 이러한 선입관이 크게 부족한 것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표현이나 자유시장의 경제학적 논리로 풀기에 우리 도시의 역사는 너무나 많은 드라마와 우연과 개인적 성취에 좌우되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미래는 개인의 노력과 꿈에 의해 창조되는 것임을 손 교수의 '이야기'는 보여준다. 한 평생 '개발과 관련된 분야에 몸 담았으면서도 땅 한 평 사재지 않은 채(못한 채) 대단히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희에 이르기까지 열정을 가지고 묵묵히 '이야기'를 찾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손 교수에게 우리 후학들은 크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죽어버리면 머릿속에 뒤섞여 있는 숱한 이야기들이 사라져 버릴까봐" 불편한 노구를 채찍질해가면서 집필을 계속하고 있는 그다. 아직 들려줘야 할 이야기들은 많고도 많다. 부디 그가 건강해서 계속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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