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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월평마을과 건축가 이승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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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월평마을과 건축가 이승택 (1)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사실 월평마을은 찬찬히 둘러보질 못했다. 서귀포를 중심으로 지역문화 활동을 하는 건축가인 이승택의 차로 잠시 둘러보았을 뿐이다. 여기의 답사기는 주로 2009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월평, 예술로 물들다' 보고서에서 뽑아 쓴 글이다.

이 월평마을은 4.3사건에서 피해를 별로 입지 않은 몇 안 되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이 성을 쌓고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을 쌓고 철저히 감시를 한 까닭이다. 지금도 마을이 제주도 돌담으로 둘러 싸여 있는 데가 많아 고즈넉하고 아담해 보였다.

월평은 세대수가 240세대고 주민들이 물경 660명이 넘는다. 여기도 가시리처럼 꽤 큰 마을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을에 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옆 마을의 학교를 옮겨 다녔다. 도순에 붙어 있어 처음엔 도순국민하교엘 다니다가 다시 해군기지 문제로 이름이 난 강정국민학교에 다니고 지금은 하원초등학교로 옮겨 다니고 있다.

이 마을은 제주도 내에서 기후가 온난하고 바람이 적은 편이다. 또한 강정천을 중심으로 주변에 하천이 잘 발달하고 토질이 좋아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밀감농사 이전까지는 옆의 강정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짓는 부자마을이었다. 지금은 주로 백합을 중심으로 한 화훼단지로 유명하다.
▲제주 출신의 문화활동가 겸 건축가 이승택씨의 안내로 월평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는 월평마을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주민들의 삶에 다가갔다. 왼쪽 필자, 오른쪽 이승택.

이 월평마을은 4.3 사건으로 주민들이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해 보이지만 사실은 주민들의 피해도 상당히 컸다고 한다. 그 당시 산으로 간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하여 온 응원대에서는 자기들을 대접하라고 식량과 가축을 요구하면서 괴롭혔고 명단에 들어 있던 마을 사람들이 무고하게 공개 처형되기도 했다.

이 월평마을이 설촌 시기는 제주도에서 강재검의 난(1862년), 방성칠의 난(1898년), 김재수의 난(1901년) 등이 일어나기 전 19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재수의 난에서 삼의사로 알려진 강우백과 이강은 이 월평마을 출신이다. 이래저래 이 마을도 제주도의 수난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 월평에서 발견한 원형 그대로 보존 된 마을의 형태에 기대를 걸고 이승택은 지역 예술가들과 '문화도시공동체 쿠키'를 조직하여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이름하여 '월평, 예술로 물들다'이다.

서귀포가 고향인 이승택은 2000년도에 서울생활을 잠시 접고 이 곳 월평과 인연을 맺었다. 3 년여를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는 월평의 속속들이 다 알아버렸다. 정말 아기자기하고 이쁜 월평포구에서 한 날을 보내기도하고 아왜낭(지금은 소나무 밭인데 원래 마을의 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아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밑에서 놀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는 건축가라 유달리 이 마을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가장 그가 특이하게 본 것은 이 마을이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도로에 의해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개발시대 이후에 한 마을이 도로에 의해 작살이 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는 이 마을이 도로에 의해 분리되지 않고 원래 만들어진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그 때문에 마을의 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에서 펼쳐진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도 잘 풀려 나갔다. 이 사업도 일종의 공모사업이다. 이승택이 주동이 되어 주변의 예술가들을 모아 조그마한 조직을 꾸렸다. 이름하여 '문화도시공동체 쿠키'다.

여기서 2009년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에 신청하여 선정된 것이다. 이들은 이 사업을 신청할 때 사업의 이름을 '월평, 예술로 물들다'로 정했다. 아예 작정하고 월평을 예술로 접촉하겠다는 의지를 들어낸 셈이다.
▲ 마을 답사를 하며 주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여러차례 마련하여 월평마을에 다가가는 문을 열었다. 외부인이 들어와서 뭔가를 뚝딱 만들어놓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이 함께하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마을일이 아닐까.

이 사업을 신청 할 때부터 서귀포시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마을답사부터 시작했다. 마을을 답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붙임성 좋은 이승택은 월평에서 살기도해서 주민들과의 접촉은 쉬운 편이었으나 나머지 쿠키의 회원들은 주민들과의 만남이 처음이라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대표들도 그랬고 더군다나 주민들은 처음에 '뭔 예술?'인가 다들 긴가민가한 모양이었다. 단원 중에 젊은 처자들이 섞여 있으니 으레 '이 마을에 있는 총각들 장가나 보내주' 정도의 농 섞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 월평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주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모아 '마음의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단순히 지리적 표기만이 아니라 장소와 사람, 관계의 의미들을 되새겼다. 주민들이 끄집어낸 기억 속에 월평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으면 좋건 싫건 끝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야 한다. 이게 정부 지원 공모사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공모 사업은 내용 보다 형식에 치우치기 쉽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제일 처음에 낸 사업계획서가 내용이 부실한 경우도 있고, 현지 조건이 처음에 계획할 때와 다를 때도 있다. 사업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능력의 차이도 있지만 현장 경험, 특히 주민들과의 소통이 않되 계획 자체가 무너질 때도 있다.

'월평, 예술로 물들다'는 애초에 마을답사와 조사, 주민들의 구술사 인터뷰를 기초적으로 충실히 했다. 이것이 이 사업 전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을 이야기와 주민들의 삶의 내력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들의 작업을 다음 회에 좀 더 꼼꼼히 살펴보자.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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