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빚어온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정책이 29일부터 시행된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면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에 대해서만 보험을 적용하는 '선별등재 방식(Positive list system)'이 도입된다. 그동안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의약품을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관리하는 방식(Negative list system)을 채택해 왔다.
새로운 약값 정책…논란 속 29일부터 시행
27일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복지부 장관 고시 등이 개정돼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새로운 약값 정책이 시행되면 선별등재 방식이 도입되는 것과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약의 등재 여부, 가격 등에 대해 제약업체와 협상하는 절차도 도입된다.
또 일단 등재된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약값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는 "보험에 등재될 때의 예상 사용량을 초과해서 판매되는 등 상황이 변할 경우 약값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 계속 약값이 적정 수준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보험 적용을 받고 있는 기존의 의약품 약 2만1000종(실제 유통은 약 1만4000종)에 대해서는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등재된 것으로 간주된다. 복지부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에 걸쳐 경제성 평가를 실시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등재 목록을 정비하고 가격을 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약품의 등재 여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설치될 예정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의약품의 경제성 평가, 약값 협상 등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의약품이 등재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현재(150일 이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총 240~270일). 복지부는 경제성 평가에 150일, 약값 협상 및 등재에 90일~120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혁신적 신약' 값 떨어질 듯…복제약 값도 하락
새로운 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약값 산정 방식의 변화다. 이른바 '혁신적 신약'의 약값이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업체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그간 혁신적 신약의 값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독일 등의 약값을 참고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 상대적으로 국가경제 규모에 비해 국민들이 더 높은 약값을 지불해 왔다.
또 특허가 만료된 신약은 자동으로 가격이 20% 인하된다. 그동안에는 특허가 만료된 신약도 가격조정 없이 유통돼 왔다. '복제 약(제네릭)'의 값도 특허가 만료된 신약 값의 80%에서 68% 수준으로 더 떨어진다.
또 복지부는 선별등재 방식에선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권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80%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의약품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약값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환자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의약품은 별도로 보험적용 여부 등을 가릴 수 있다.
선별등재 방식이 도입돼 일부 의약품에 대해서만 보험이 적용되면 오히려 환자의 약값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의 경우 보험적용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일축했다. 복지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의 경우에도 생명보험회사 등에서 보험 적용하는 약은 2000종 이하"라고 덧붙였다.
한미 FTA 영향은…미국 '실속'은 이미 챙겨
한편 복지부가 예정대로 새로운 약값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런 조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미국 정부와 미국 제약업계는 선별등재 방식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새 약값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대의 뜻을 표시해 왔다. 지난 7월에 열린 한미 FTA 2차 협상 때는 미국 측이 이 새 약값 정책에 반감을 표시하며 협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이번 새 약값 정책 시행이 한미 FTA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 측이 선별등재 방식을 수용하면서 제3의 독립적인 이의신청기구 설치 등을 요구해 관철시킨데다가 추후 협상 과정에서 의약품 특허권 연장과 같은 진짜 '실속'을 챙길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FTA 담당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 진전을 위해서 의약품 등에서 양보하는 빅딜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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