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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제2의 쿠데타'…이번엔 '핫머니'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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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태국 '제2의 쿠데타'…이번엔 '핫머니' 축출

외자 30% 1년간 볼모…장기적으로 시장안정 효과

석달 전 '군사 쿠데타'로 새로 구성된 태국 정부가 최근 단행한 외환규제 조치와 그 여파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조치는 신규 외국인 투자액이 2만 달러를 넘을 경우 투자액의 30%를 태국 중앙은행에 1년 간 이자 없이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하고, 그 전에 인출할 경우에는 예치액의 3분의 2(총 투자액의 20%)만 지급받도록 하는 조치다. 이 조치는 상품 및 서비스 거래에 소요되는 외화자금에는 적용되지 않고 증권이나 채권 등에 투자된 외자, 이른바 '자본계정'에 포함되는 외자에만 적용된다.
  
  태국 당국이 '제2의 쿠데타'라고까지 불리는 이런 강도 높은 외환규제를 도입하기로 한 배경에는 높은 경제성장률, 높은 금리, '정치적 불안요소'였던 탁신 칫나왓 전 총리의 축출 등으로 최근 태국 자본시장의 매력이 높아지면서 1년도 채 머무르지 않은 투기성 외자가 급격히 태국 국내로 유입돼 태국 화폐인 바트(baht)의 가치가 급등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바트화의 가치는 지난 3개월 동안 달러에 비해 7% 올랐으며, 지난 3년 간 20% 상승했다.
  
  물론 태국 당국은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외국인 투자자에게 태국 자본시장을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간접적'인 방법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외화자금 의무 보호예수' 조치를 도입해 앞으로 국내에 들어올 핫머니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기로 한 것이었다.
  
  태국 정부의 '1일 천하'?
  
  타리사 와타나가세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저녁 "핫머니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단기자본에 대해 30%의 무이자 준비율을 부과할 것"이라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이는 최근 바트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형 경제인 태국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것에 대응한 특단의 조치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같은 조치가 발표되자 19일 태국 당국의 의도대로 바트/달러 환율은 35.6바트에서 35.82바트로 급락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태국 증시도 하락했다. 태국 증시의 SET지수는 19일 장중 1990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최대 낙폭인 19% 급락했다가 낙폭을 16%대로 좁혀 장을 마감했다.
  
  태국 정부는 이같은 증시 충격을 예상했다는 태도다. 프리디야손 데바쿨라 재무장관은 19일 "이번 결정으로 태국 증시가 15% 이상 폭락한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태국은 대규모 단기 외화자금이 계속 유입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면서 "지나친 자금유입은 장기적으로 태국경제와 외환시장, 증권시장을 망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태국 증시가 받은 충격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진폭으로 나타난데다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 이웃 국가들에까지 충격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태국 정부는 19일 밤 외환규제책을 증권 투자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겠다며 기존의 입장을 완화했다. 태국 증시는 규제완화 발표 하루만인 20일 안정을 되찾았고 아시아 각국의 금융시장도 요동을 멈췄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태국 정부가 외자를 규제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였다가 결국 꼬리를 내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2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와타나가세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증권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바트화 환율 관리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해 앞으로 필요에 따라 규제의 강약을 계속 조절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1997년 태국發 아시아 금융위기의 재연?
  
  19~20일 이틀 동안의 급박했던 태국 환시와 증시의 움직임은 전 세계에 '1997년 바트화 급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태국의 외환규제 조치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후 일본, 한국, 홍콩,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술렁였고 한국 원, 홍콩 달러, 싱가포르 달러, 대만 달러,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 등 아시아 주요 통화의 가치도 하락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에는 달러 대비 바트화 가치가 21%나 하락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1997년 5~6월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의한 바트화 폭락을 막기 위해 3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결국 태국 정부는 그해 7월 고정환율제도를 변동환율제도로 바꾸고, 8월 국제통화기금(IMF)에 172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바트 가치는 달러보다 12.3%나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경우에는 태국 중앙은행이 바트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등하자 이런 사태를 유발한 핫머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환투기 억제책을 시행했다는 점에서 1997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평가다.
  
  국제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일 태국발 악재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이 또다시 외환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양날의 칼' 외환규제
  
  국가 간 금리차이나 환율변동 등에 의한 차익기회를 노리고 국제금융시장을 부유하는 '핫머니(hot money)'에 대한 규제는 국가경제 운영에 있어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한편에서는 이런 외환규제가 국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저해해 해외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맹비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을 차단하면 단기적으로는 증시와 경제 전체에 충격이 갈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외자 가운데 장기 투자자본의 비율이 높아져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경험도 엇갈린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1990년대 말 말레이시아가 이와 유사한 외환규제 조치를 취한 후 외국인 투자자의 발길이 끊겼다며 태국 정부에 대해 외환규제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칠레와 콜롬비아는 단기 외화자금이 국내로 급속히 유입됐던 1990년 대에 이런 조치를 통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가령 칠레에서는 1991~99년 9년 간 단기 외화자금 20%를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 조치가 도입된 후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장기 외화자금 유입이 늘어났다. 금융규제라면 질색을 하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이 두 나라의 외환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사실 투기성 단기자본인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을 어떻게 방지해야 할 것인가는 국제경제의 오랜 숙제 가운데 하나다. 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은 1970년대 외환거래 시 거래량의 일정 비율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거래비용을 늘려 핫머니의 이동을 억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토빈세(Tobin Tax)'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그리 높지 않다.
  
  '낙관론'과 '비관론'은 종이 한 장 차이
  
  태국의 이번 외환규제가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리 경제와 태국 경제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그리 깊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펀드를 통해 태국 증시에 들어가 있는 자금이 꽤 있긴 하지만 큰 액수는 아니다.
  
  혹여 태국의 외환시장이 앞으로 더 흔들린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1997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9년 간 '학습 효과'로 열심히 외화를 쌓아둔 탓에 올해 11월 말 현재 국내 외환보유액은 2343억 달러나 된다. 1997년 말 국내 외환보유액은 204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10배 이상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태국에 유입됐던 자본이 탈출해 한국으로 오거나, 장기적으로 외환규제가 강한 이미지를 주는 태국을 피해 '규제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 낙관론은 그 핫머니가 우리나라 환시와 증시를 휘저어놓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비관론'과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에게 부과된 숙제는?
  
  그보다 우리나라가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태국 정부가 국제시장을 활보하는 핫머니를 어떻게 관리·감독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면밀히 주시하고 이를 통해 우리도 어떻게 핫머니를 잘 '요리'할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태국 이상으로 핫머니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 곳이다. 특히 IMF 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 말 10.3%에 불과했던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비율(시가총액 기준)은 2004년 현재 40.10%까지 높아졌다. 국제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이는 세계 8위 수준이다.
  
  이 중 장기적인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1%에 불과하고 단기적인 수익을 거두는 데 관심이 더 많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51%에 이른다. 직접투자 중에서도 기업 인수합병(M&A) 형식의 투자가 50% 이상이고, 보다 건전한 투자로 인식되는 공장설립(그린필드) 형식의 투자 비중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정부는 단기 외화자금 유출입 조절은 '정부 개입'에 의해서 하지 않고 시장의 '변동환율제'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위기 발생시 '긴급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이 조치가 발동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숙제는 바로 '넘치는 외환보유액'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다. 넘치는 외환으로 인한 통화 가치의 상승, 그로 인한 대외교역 조건의 악화는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의 골칫거리다. 우리나라 원화도 최근 3개월 동안 달러에 비해 5% 평가절상됐으며, 지난 3년 간 30%나 가치가 상승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0일 한국에도 원화 평가절상을 막기 위한 규제책을 도입해야 하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자에 대한 '과도한 개입'과 '지나친 방관' 둘 다 피해야 할 것이라면, 결국 문제는 어떻게 '적절한 관리'를 할 것인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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