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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동유럽 과거청산에 '막차'로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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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동유럽 과거청산에 '막차'로 합류

"공산치하에서 국민 전체가 실험용 기니 피그로 취급됐다"

지난 80년대 말 공산정권이 무너진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 구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후 15년이 지나도록 공산주의 시대에 대한 청산작업에 착수하지 못했던 루마니아가 마침내 과거청산 보고서를 발표했다.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은 1989년 10월 유혈 민중봉기에 의해 무너지고,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는 처형됐다.
▲ 18일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이 과거 공산정권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로이터=뉴시스

트라이안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은 18일 의회에 66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과거 공산정권은 범죄와 불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면서 "당시 공산정권은 국민과 개인에 대해 심각한 경멸을 숨겨두고, 국민 전체를 실험용 기니 피그로 취급했다"고 맹비난했다.

또 그는 "1945년 소련에 의해 점령하면서 강요된 이 체제는 법을 짓밟고 국민들을 거짓과 공포 속에서 살도록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루마니아가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공산주의 정권 시대(1945~1989)를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이 보고서 관련 연설을 하는 자리에는 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 대통령, 젤류 젤레브 불가리아 전 대통령, 그리고 1947년 공산정권의 강요에 의해 퇴위했던 미하엘 루마니아 왕도 참석했다.

공산치하 45년 동안 50만~200만 명 희생

보고서는 지난 3월 정부의 의뢰로 메릴랜드 대학의 블라디미르 티스마네아누 교수가 이끄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8개월만에 완성한 것이다. 티스마네아누는 저명한 반체체 인사로 1980년대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보고서에는 반체제인사와 종교인들에 대한 암살과 추방 등의 탄압, 검열, 낙태금지, 재산 몰수와 주택 파괴 등 공산정권 치하에서 저질러진 범죄들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또 공산정권의 희생자 규모를 50만~200만 명으로 추정했다.

바우세스크 대통령은 공산 치하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경일을 제정하고, 공산정권의 잔혹상을 고발하는 박물관 건립과 새 역사 교과서 제정 등 국민 교육을 위한 방안 등 보고서의 제안에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과거청산에 소극적이던 루마니아가 보고서까지 내게 된 배경에는 불과 2주 뒤에 실현되는 내년 초 루마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해 초 유럽의회는 과거 동유럽 공산정부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해당 국가들이 공산정권의 역사를 재평가할 것을 촉구했다.

이미 체코 공화국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이듬해인 1993년 7월 소련 치하의 폐해를 밝히기 위한 법안 시행에 들어갔으며, 불가리아 의회는 2001년 과거사 청산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도 지난달 말 1930년대 1000만 명의 주민들을 사망으로 몰고 간 기근이 스탈린 정권의 잘못된 정책 탓이라고 비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일부 논평가들은 이 보고서가 이웃의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너무 늦게 나왔다거나, 충분치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공산정권 시절 지배엘리트 상당수가 현재도 루마니아 권력 구조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보고서 완성이 쉽지 않았다"면서 "일부 정부 기관들은 위원회의 협조 요청에 침묵했고, 일부 위원들은 과거 공산정권에 협조했던 과거가 드러나 사표를 내는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한 유명 언론인, 저술가와 시인들의 명단이 수록돼 있는데, 그 중에는 티스마에아누 교수의 작고한 부친 레온 티스마네아누도 공산정권을 지지하는 글을 쓴 것으로 기록됐다는 점이다.

또한 이온 일리에스쿠 전 대통령 등 공산정권에 협조했던 일부 현역 정치인들도 이 보고서에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 '대루마니아당' 당수로 이 보고서에 '공산정권의 시인'으로 지칭된 코르넬리우 바딤 투도르는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사용하는 '레드카드'를 꺼내들고 대통령의 연설을 조롱했다. '대통령은 건달"이라고 외치며 바세스쿠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쓰인 플래카드를 휘두르며 의회 앞을 행진하기도 했다.

일리에스쿠 전 대통령도 이 보고서에 대해 "이번 보고서는 매카시즘이며, 역사를 정치화하는 것으로, 차우세스쿠 정신에 대한 복수"라면서 "민주적 좌파를 악마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공산정권 하에서 중앙위원회 선전부장을 지냈고, 공산정권 붕괴 후 루마니아 정계를 지배했던 인물이며, 지금도 사회민주당의 명예총재로 있다.

이와 관련해 루마니아 언론인 코리나 다라고테스쿠는 "과거사 청산은 공산정권에서 살았던 우리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만, 후손들이 공산정권이 왜 무너졌는지 물을 때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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