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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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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운동인가

[통일운동의 시각전환을 위하여(1)] 근본적 질문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시민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발전'의 박승옥 대표가 최근 발간된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된 기고문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운동인가?'를 통해 통일운동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름대로 대안의 통일운동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박승옥 대표는 이 글에서 석유에너지의 고갈이 임박한 지금의 시대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남북한이 함께 잘살 수 있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통일운동은 석유의존 체제에서 벗어나 남북한을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자립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박 대표의 주장은 정부의 통일정책은 물론 시민사회의 지배적인 통일운동 방향과도 여러 측면에서 다르지만,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의 발전을 위해 누구나 한번쯤은 고려해봐야 할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에 <프레시안>은 <황해문화> 측의 허락을 얻어 박 대표의 글을 3회에 걸쳐 분재한다. <편집자>


1. 들어가며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나,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 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
마음 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 김구, <3천만 동포에 읍고함>, 1948.2.20.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통일이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당연히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그 속에 실현될 것이다. 공산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평등, 자유, 번영, 복지 이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통일과 대립되는 동안은 진정한 실체를 획득할 수 없다. 모든 진리, 모든 도덕, 모든 선이 통일과 대립하는 것일 때는 그것은 거짓 명분이지 진실이 아니다.
-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1972.9., <씨
의 소리>.

우리는 용이하고 실천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 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 간의 불신을 신뢰로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며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
1. 조국의 평화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완화와 국제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
- 박정희, <평화통일외교 정책에 관한 선언>, 1973.6.23.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 2000.6.15., 남북공동선언문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남북을 가릴 것 없이 한민족에게 통일은 지상과제였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다 치떨리는 고문을 당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옥살이를 하는가 하면, 단지 북한을 방문했다는 사실 때문에 간첩으로 몰리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통일운동 과정에서 남북 정권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통일은 당위이자 의무였다. 박정희도 김일성도, 시중의 장삼이사도, 극좌이건 극우이건, 교류협력을 통한 단계적 통일론이건 흡수통일론이건 간에 누구나 통일을 주장한다. 통일은 유전자처럼 한민족에게 내재되어 있는 염원이자 희망이었다. 198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KBS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분단현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통일의 필요성을 웅변해준 사건이었다.

굳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단은 한민족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가 강제로 한민족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분단의 피동성과 비자주성이야말로 그 어떤 사회과학 용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통일의 당위성을 얘기해주는 첫 번째 까닭이었다. 때문에 한국전쟁 이래 통일운동은 끊이지 않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사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한반도에 세워진 것은 한국민의 자주독립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군사정부였다. 그 결과 1950년 6월에 어림잡아도 근 4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한 피의 동족상잔인 한국전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국전쟁 이후 남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의 사회주의 체제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상대방 체제의 붕괴를 통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극단의 적대정책을 펼쳤다. 말로는 평화통일을 천명하고 있었지만 북은 혁명의 전국화 전략을, 남은 공산정권 타도 전략을 취하였다. 남북의 정권은 이를 빌미로 또 극도의 반공주의, 극도의 반미주의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해 왔다. 적대하면서 공생하는 기이한 독재의 공범자들이었다. 물론 이런 전략의 뒤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남북의 정권은 꼭두각시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각기 미국과 소련의 대리인이었다. 특히 이런 외세의존과 식민성은, 주체를 강조하면서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높이고 있던 북한 사회주의 정권보다 미 대사가 총독으로까지 지칭되던 남한 군사독재정권이 더 심했다. 분단체제라는 표현은 이같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용어였다.

1970년대까지 전후복구에 성공한 북한 사회주의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상징하듯 가난과 부패에 찌든 남한보다 인민들의 생활과 경제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고, 이때까지 통일공세는 주로 북한 쪽에서 이루어졌다. 통일정책 또한 체제경쟁의 하나였고, 북은 그 경쟁에서 우위에 서 있었다. 무장병력을 남한에 보내면서 남조선 해방전략의 무장투쟁 노선이 등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들판의 불길처럼 고조되어 가기만 하던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을 제어하고자 하던 미국의 강한 요구에 따라 남한이 근대화, 산업화 전략을 취하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1970년대를 지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리고 급기야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더욱이 남한이 체제경쟁의 승자였고, 당연히 통일공세의 주도권은 남한 정권으로 넘어왔다. 주석궁을 탱크로 밀어버리자던 선동구호가 상징하듯 남쪽 일부에서 무력사용을 통한 북한정권 붕괴론, 북한 민주화론, 북한 흡수통일론이 나오는 것 또한 똑같이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이같은 남북 군사독재정권의 적대적 공존을 위한 통일정책의 허구성을 깨면서 새로운 통일운동의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운동은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는 반통일 범죄행위의 기초를 허무는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인민의 민주주의 기본권과 일상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분단체제를 허물어뜨리는 민주화운동은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통일운동이었으며, 민주주의야말로 각종의 통일운동이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었다. 1960년 4.19혁명 직후의 통일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의 승리 이후 분출되었던 남북교류와 통일운동은 이를 입증한다.

2000년 6.15선언 이후 오늘날의 통일운동은 주체와 대상,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난날의 다분히 이론투쟁에 가까운 논쟁을 벗어나 교류와 지원, 협력을 토대로 하는 다양한 활동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지금은 논쟁다운 논쟁이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 남북 정부 차원의 활발한 교류협력에 견주어 민간의 통일운동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기아와 대량탈북 사태에 직면하여 민간이 보여주었던 활발한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과 교류협력 지원사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그 활력과 의제선정 능력은 지금은 적잖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평가되고 있다. 때문에 새롭게 민중참여형, 사회통합형 통일운동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변화된 현실에 걸맞게 통일운동 또한 변화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하는 근본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아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통일을 희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북한에 석탄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어떤 통일을 위한 지원인지, 그것이 올바른 지원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예전과 달리 20대 가운데 5명 중 1명은 꼭 통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기도 한 현실(서울신문, 2005.7.18.)이라면 모든 통일은 선하다는 명제에 대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근본의 도전을 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진단이 필요하다. 지금의 양극화된 남의 현실을 그대로 북에 복사하는 자본주의 통일이란 결코 바람직스러운 통일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북의 기아와 왕조군사독재 체제를 그대로 남에 복사하는 통일이란 언어도단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어떤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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