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달 23일부터 '금융사가 예금 총액의 일정 비율을 한은에 예치하는 현금준비 비율'인 지급준비율(지준율)을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예금 등에 대해 현행 5.0%에서 7.0%로 인상하기로 했다.
또 장기 저축성예금의 지준율은 현행 1.0%에서 0.0%로 인하해 장단기 예금 간 지준율 격차를 확대하기로 했다.
금통위는 23일 정례회의를 열어 이같이 의결했다.
금통위가 지준율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은 콜금리 인상을 피하면서 시중유동성을 흡수해 부동산시장 안정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준율 인상의 시장파급 효과 자체는 제쳐 놓더라도 중앙은행이 동원 가능한 수단을 통해 유동성 흡수에 나섰다는 점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시장에 무게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판단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콜금리를 인상할 경우에는 그 효과가 전국적으로 무차별하게 나타나 경기흐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집값 폭등으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서도 이달 콜금리 동결을 결정했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등은 통화정책 당국이 부동산 '광풍'에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을 계속 던졌고, 한은도 나름대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찾느라 고심을 거듭해 왔다.
일각에서는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사항인 대출총량 규제 시행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는 '극심한 통화팽창기 등 국민경제상 긴절한 경우'에 한해 쓸 수 있는 수단으로 한은법에 명시돼 있다.
한은 스스로 과연 지금이 그런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어서 대출총량 규제의 시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쪽으로 기울었다.
대신 그동안 거의 손대지 않던 지준율 카드를 꺼내 최근 수 일 동안 면밀히 검토를 거듭했다.
예금은행을 상대로 예금별 지준율을 부분적으로 조정해 단기자금을 장기자금으로 옮아 가도록 하는 것으로 유동성을 일부 흡수하고 투기성 자금을 통제하면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한은은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콜금리 조절은 경기의 흐름과 시중자금 사정과 맞물려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방향예측이 가능한 친시장적 수단인 데 반해 지준율 조절은 적용대상 예금은행에 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예측 자체도 불가능하게 불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시장친화력이 떨어지는 조치다.
따라서 통화신용정책의 효과 제고를 위해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온 한은이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지준율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은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은이 그동안 일관되게 견지해 온 '중앙은행은 부동산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통화정책을 펴지 않는다'는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비판은 면키 어렵게 됐다.
한편 한국은행이 23일 지준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중유동성 흡수에 나서기로 하자 은행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금통위의 의결은 은행들의 대출 여력을 줄여 집값 안정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나, 당장 은행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장기적으로 콜금리 인상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초래될 것으로 은행들은 우려하고 있다.
은행들은 지준율 인상으로 예금액 가운데 한은에 예치해야 할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주택담보대출 등 여신 운용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금조달 비용의 상승 효과를 가져오게 돼 대출금리 인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지준율 인상조치가 자칫 주택담보대출 뿐만 아니라 기업대출 등 은행권의 여신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은행들은 우려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지준율 인상은 주택담보대출에 한정하는 정밀폭격이 아니라 기업대출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시장 반응에 따라 금리인상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지준율이 올라가면 은행의 핵심 예금인 월급통장 등 입출금 예금의 유치 비용이 높아지므로 입출금 예금 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소매금융 비중이 큰 은행의 영업에 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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