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3-2로 앞선 9회말 1사 2루. 삼성 벤치는 전에 없이 술렁였다. 타임을 걸고도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냉철한 판단으로 칼같이 투수를 바꾸던 5차전까지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한국시리즈 전부터 "마지막 순간은 무조건 오승환에게 맡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가장 고생한 투수를 우승 영광의 중심에 세워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선 감독은 선뜻 '오승환 카드'를 뽑지 못했다. 전날(28일) 5차전 4이닝 동안 무려 63개의 공을 뿌린 탓이다. 5차전 전까진 한화 타자들을 압도하는 모습도 보이지 못했다. 한참 동안이나 불펜에서는 권오준이 함께 몸을 풀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쉽게 꼬리를 내릴 듯 보였던 한화 타선은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더욱 집중력을 보였다.
하지만 선 감독은 이내 마음을 굳혔다.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리고는 모든 투수들을 불펜에서 철수시켰다.
오승환은 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첫 타자 대타 조원우에게 내야 안타를 맞고 흔들리는 듯했다. 오승환의 글러브에 맞지 않았다면 중전안타로 동점이 될 뻔한 위기였다. 다음 타자 고동진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1사 만루.
그러나 오승환은 다음 타자 클리어를 2루수 플라이로 솎아낸 뒤 마지막 타자 데이비스를 삼진으로 잡아내 아슬아슬한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삼성은 이로써 한국시리즈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한국시리즈 6차전서 3-2로 승리를 거두며 4승1무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의 주인이 됐다.
삼성은 1회 한화 선발 안영명을 두들겨 2점을 먼저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선두타자 박한이의 중월 2루타로 포문을 연 뒤 조동찬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이어 양준혁이 우전안타를 때려내며 가볍게 선취점을 뽑았다.
삼성의 공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김대익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박진만의 볼넷으로 공격기회를 이어간 뒤 진갑용의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가 터져나와 한 점을 더 보탰다.
삼성은 2-0으로 앞선 2회에도 2사 후 박한이의 2루타와 조동찬의 중전 적시타가 잇달아 터져나오며 1점을 더 달아날 수 있었다. 삼성 불펜의 높이를 계산하면 한화가 넘기엔 버거운 느낌을 주는 점수였다.
그러나 한화도 넋 놓고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한화는 0-3으로 뒤진 6회 선두타자 김태균이 좌전안타로 출루한 뒤 이범호가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내 무사 2,3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 타자 이도형이 삼성의 바뀐 투수 임창용에게 유격수 땅볼을 때려내 3루 주자 김태균이 홈을 밟았다. 다만 이후 공격에서 추가점을 뽑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1사 3루서 한상훈의 중견수 플라이 때 이범호가 홈을 밟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팠다. 당시 송구가 3루 쪽으로 치우쳐 홈에서의 승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8회 1사 후에는 김태균이 4번째 투수 배영수를 두들겨 우월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이범호와 이도형이 내리 삼진으로 물러나 아쉬움만 2배로 남겼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6 한국시리즈는 다양한 기록과 진기록을 배출하는 역사적인 시리즈로 남게 됐다. 한국시리즈 초유의 3경기 연속 연장 승부, 삼성의 잇단 최다 투수 출장기록 경신(3차전 8명,5차전 9명)등의 기록이 나왔다. 또 무려 15회까지 펼쳐진 5차전은 한국시리즈 최장경기 시간(5시간15분) 기록도 세웠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이날 우승을 확정지으며 감독 데뷔 첫해부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첫 감독으로 기록되게 됐다. 선 감독은 또한 한국시리즈 15회 연장전을 선수(93년 對삼성)와 감독(2006년)으로 모두 경험하는 첫 야구인으로도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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