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새로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들의 노블레스는 기부자들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새로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만들기 위해 그 영웅들의 역사를 참고해야 한다.
기부의 역사를 만든 사람: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카네기는 위대한 기부자이다. 그는 엄청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점에서도 훌륭하지만 미국의 역사에 찬란한 기부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 지금 현재 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5만6천여 개 자선재단의 시발점에 그는 우뚝 서있다.
그는 "인간의 일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야 한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나누는 시기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일생을 그러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산 사람이었다. 그는 또 일찍이 자신이 집필한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부의 사회환원이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한 선각자였다.
카네기는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급진적인 좌파 성향의 정치색을 띤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네기는 아버지의 정치적인 이념보다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슬럼가에 정착한다. 카네기는 13살 때부터 섬유기계공, 증기기관 관리자,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의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1853년 펜실바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당시 철도 고위관리인이었던 토마스 스콧의 눈에 들어 그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전쟁 후 스콧은 자신의 철도관리인 직을 카네기에게 물려준다. 안정되고 높은 소득이 보장된 철도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카네기는 수입을 침대차회사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얻었으며 철도기재 제조회사, 운송회사, 석유회사 등에도 투자하여 상당한 수익을 얻는다.
이때 주식투자로 번 돈은 훗날 창업자금이 된다. 1865년 철강 수요의 증대를 예견한 그는 철도회사를 사직하고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수시로 영국을 방문하여 철강산업의 엄청난 성장을 목격한다.
그는 현대 산업이 기존의 철 기반에서 강철 기반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간파해, 영국 기술자인 베서머로부터 최신식 용광로를 구매하고 본격적인 강철 제조사업에 뛰어든다. 그리하여 1872년에는 미국 최초로 거대한 평로(平爐)를 가진 홈스테드 제강소를 건설하게 된다.
전쟁 뒤 미국은 철의 수요가 급증했다. 영국 역시 철도산업이 붐을 맞으면서 철강의 수요가 전례 없이 치솟았다. 때를 만난 강철 산업의 호황으로 카네기의 사업은 승승장구, 어느새 수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다. 1870년대부터 미국 산업계에 일기 시작한 기업합병 붐을 타고 그는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석탄, 철광석, 광석 운반용 철도, 선박 등을 수직계열화하는 하나의 대 철강 트러스트를 형성하게 된다.
1889년에는 오랜 동업자인 헨리 프릭에게 회사의 사장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뉴욕에서 연구개발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1892년에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생산라인을 규합해 카네기 철강회사(Carnegie Steel Company)를 설립하는데,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로서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생산하는 규모였다.
이즈음 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된 프릭은 1892년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을 때 300여 명의 파업 저지대를 조직하고 시위자들을 무차별 폭행하며 파업을 무력화시켰다. 이때 10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졌으며, 주지사의 명령으로 군대까지 동원돼 진압에 나섰다. 이런 불상사까지 빚으며 카네기 철강은 노조를 끝내 해산시킨다.
가혹한 노조 탄압 뒤에 카네기 철강은 기적적인 급성장을 기록한다. 1900년 강철 생산량은 10배가 넘게 증가했으며, 매출은 20배 이상 오른다. 당시 카네기 철강이 생산하는 강철의 양은 영국 전체에서 생산되는 강철의 양보다도 많았다.
1901년 카네기는 자신의 철강회사를 JP 모건(JP Morgan)에 5억 달러에 매각한다. 당시 일본 예산이 1억3천만 달러였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JP 모건은 카네기 철강을 인수함으로써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을 탄생시킨다.
이 합병을 계기로 카네기는 실업계에서 은퇴하여 본격적인 자선사업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의 신념대로 '부를 나누는 시기'인 후반부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카네기는 이 합병으로 얻은 돈으로 인류 발전을 위한 기금을 운영한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 총 3000개의 도서관을 지었으며, 미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카네기 과학연구원과 기술원을 잇달아 설립한다. 이 연구소는 후일 미국의 명문대학이 되는 카네기 멜론 대학의 모태가 된다.
그는 또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 거액을 돈을 쾌척했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세계 평화를 위한 기금(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도 설립한다. 카네기 홀, 카네기 인스티튜트, 피츠버그의 카네기 도서관, 카네기 박물관, 스코틀랜드대학의 카네기 장학기금, 워싱턴의 카네기 인스티튜트, 덤퍼린 카네기 장학기금, 뉴욕의 카네기 코퍼레이션 등이 모두 그가 만든 단체들이다.
카네기 재단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교육, 국제평화와 안전, 국제발전,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 등 4가지 분야인데, 그 중 교육분야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카네기는 기업을 매각한 후 18년 간의 여생 동안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 썼다. 그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부를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심했다. 카네기에 의하면 잉여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익기관에 유증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소유자가 직접 관리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카네기는 자손에게 부를 물려주는 첫 번째 방법은 그것을 물려받은 자손에게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만약 당신이 자식의 진정한 행복을 생각한다면 결코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식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것은 독이나 저주를 남겨주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두 번째 방법인 공익을 위해 부를 유증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증된 재산이 쓰이는 것을 볼 때, 그 재산이 당신 사후에 당신이 바라던 대로 사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 힘들다. 유증자가 바라던 진정한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유증자의 소망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유증된 재산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기념하는 기념물로 이용된다."
카네기는 세 번째의 경우가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경영수완과 무한한 창의력을 가진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어 주는 방법과 기술도 창안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가난이 무엇인지 안다면, 경험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부자는 자신에게 신탁된 재산을 관리하라는 소명을 받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에 최상의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잉여재산을 관리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부자는 단순한 수탁자에 불과하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네기는 가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선이라는 것이 어떠한 효과를 갖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맹목적으로 광범위하게 베풀어지는 단순한 자선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오늘날 이른바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쓰이는 1000달러 가운데 950달러 정도는 바람직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 자선행위는 그것을 통해 치유 내지는 경감시키려 했던 악을 오히려 유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를 축적하는 데도 뛰어났지만 부를 나누는 것에도 혜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부자였다.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은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재물은 남을 위해 사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카네기가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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