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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제로'야, 낙천주의자 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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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제로'야, 낙천주의자 내가 왔다"

[화제의 책] WTC 터 재건하는 <낙천주의 예술가>

"건축가는 모두 창녀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건축가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기 위해서 책 한 권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책을 읽어가다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면 그 책을 통독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시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과연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늘 한결 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때로 구불구불 흐르기도 하고, 암석에 부딪히기도 하고, 댐에 막혔다가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고…."

"이곳에 서서 아주 옛날의 기억까지 되살려보라. 기억은 빛 속에 떠오르고 나머지는 어둠에 잠겨들지 않는가? 과거는 빛이 바래 암흑과 같고, 미래는 불확실하여 그저 별처럼 깜빡일 뿐이다."

이런 표현을 쓴 이가 시인, 철학자가 아니라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건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 <낙천주의 예술가>(하연희 옮김, 마음산책 펴냄)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정말로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 '낙천주의 예술가'가 있다
▲ <낙천주의 예술가>(다니엘 리베스킨트 지음, 하연희 옮김, 마음산책, 2006) ⓒ프레시안

리베스킨트는 건축가로서 아주 독특하다. <낙천주의 예술가> 앞부분에 소개된 그의 건축물 사진 몇 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금방 확인된다. 도시가, 그의 말대로, "건축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내기 위해 사용하는 도화지나 장난감"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정작 그의 건물은 그림이나 장난감 같다.

덴버 미술관 신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펠릭스 누스바움 미술관 등이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금방 튀어나오는 건축물 이름들이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그를 2001년 '9·11 사태'로 무너져 내린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터를 재건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기록할 것이다.

아주 잘난 사람은 잘난 체 할 필요가 없다. 잘난 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난 사람이 잘난 체 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고 즐겁다.

더구나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을 증축 설계할 때 첨단 컴퓨터로 시안을 준비한 다른 경쟁자를 레스토랑 냅킨에 그린 수채화로 따돌렸다는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재능 있고 유쾌한 예술가 친구를 누군들 옆에 두고 싶지 않겠는가?

너무나 미국적인,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의 적임자

<낙천주의 예술가>는 세계무역센터 터를 재건하는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다시 그 프로젝트로 끝난다. 그는 왜 이 프로젝트에 집착하는가? 거기에는 한 성공한 '유대인 뉴요커'의 개인사가 한몫 했다.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소련으로 탈출했다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혔던 아버지. 공산 치하의 폴란드에서 당 간부의 아내와 정부들에게 인기 있는 수제품 속옷을 만들어 팔다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의 염색공장 노동자가 된 어머니.

그 둘 사이에는 한 때 아코디언 연주로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이츠하크 펄만과 함께 협연을 하기도 했던 리베스킨트가 태어났다. 이스라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하는가 하면 뉴욕 시민의 자랑거리였다가 미국인의 상처가 된 '그라운드 제로'를 재건하는 데 앞장서려고 한다.
▲ 영국 맨체스터의 대영 전쟁 박물관. "도자기 주전자는 세계다. 전쟁은 세계를 부수는 행동이다. 전쟁으로 부숴진 세계를 담은 박물관의 형상이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 가는 그러므로 깨어진 도자기를 다시 맞춰몸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프레시안

자신을 '이민자 출신의 뉴요커'라고 규정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공한 기회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믿는 리베스킨트가 왜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는지 짐작이 되는 개인사다. 그는 "9·11 테러는 민주주의, 전 세계 민주주의와 전 세계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단언한다.

누가 그를 싫어할 것인가?

물론 이 책은 리베스킨트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는 다만 나중에 그라운드 제로 위에 세워질 건물을 보고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의 궁금증을 채워주고 싶었을 뿐이다.
▲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저녁을 먹던 레스토랑에서 영감이 떠올라 냅킨에 그려 제출한 이 스케치가 컴퓨터로 제작한 경쟁자들의 시안을 제치고 캐나다의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의 디자인으로 당선되었다. ⓒ프레시안

리베스킨트가 의도하든 않았든 또 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든 않든, 그는 성공했다. <낙천주의 예술가>를 읽고 그의 자격을 의심할 만한 사람, 혹은 그를 싫어하게 될 사람이 생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건축가는 누군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건물을 짓는지, 건축물 프로젝트 하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건축가가 관료, 개발업자, 정치인 사이에서 어떻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과외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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