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자서전 발간 직전 이같은 고백이 나왔다는 점에서 '책 광고'를 위해 '노욕'을 부린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증폭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좀 더 일찍 그의 모든 과거를 알기 원했다"
특히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 19일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은 순전히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광고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맹비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마저 21일 "우리는 좀 더 일찍 그의 모든 과거를 알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그라스의 '말년 고백'에 대해 힐난했다.
독일 ARD 방송의 심야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울리히 비케르트도 최근 그라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이제야 고백을 했으며,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라스의 고백과 이에 대한 논란이 생중계된 덕분에 자서전은 그야말로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당초 9월 초 시판될 예정이던 그라스의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는 독일 유력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FAZ)>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나치 전력'이 화제를 모으자 이번달 16일로 대폭 판매 개시일이 앞당겨졌다.
1쇄 15만 부는 발매 이틀만에 매진됐으며, 번역출판권도 이미 12개 국으로 팔려나갔다. 독일의 일간지 <빌트>는 "그라스는 독일어판 인세로만 최소 170만 유로(약 20억4000만 원), 그리고 여기에 외국 판권료를 덤으로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빌트>는 나아가 "독자들의 75%는 그라스의 '나치 전력 고백 파문'으로 자서전 발간 소식을 알게 됐고, 상당수가 '묻지마' 구매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그라스의 '고백'은 '책 광고용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독일 출판계를 중심으로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책 선전' 같은 그라스의 답변들
그도 그럴 것이 그라스는 "왜 이제야 고백을 했느냐"는 질문에 "책이 출간됐으며, 그 책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책 선전' 같은 '군색한' 답변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21일 요약 보도한 비케르트와의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문답들에서 그라스의 '억지 해명'이 잘 드러난다.
비케르트 :그라스 씨, 왜 이제야 고백을 했나요? 그리고 왜 좀 더 일찍 고백하지 않았나요?
그라스 : 그같은 사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억눌렀었죠. 나 자신도 (그 질문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그같은 사실을 담아 두고 있었죠..
비케르트 : 당신의 문집 속에서 지난 1967년 이스라엘에서 당신이 매우 중요한 연설을 했던 것을 발견했어요. 그 연설문에서 당신은 14살 때 히틀러 소년대원이었던 사실, 또 16살 때 나치군에 입대했으며, 17살 때 전쟁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들을 결코 은폐하지 않았다고 쓰고 있는데요, 나치 친위대 병사였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는 없었나요?
그라스 : 언급할 수도 있었겠지요. 나도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는데요, 내 책에 왜 그 문제에 대해 침묵했는지를 포함해 자세히 썼습니다. 그 책을 지금 구해 볼 수 있으니, 독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내 책을 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케르트 : 당신은 아무 것도 당신의 '기억의 짐'을 가볍게 해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고백을 했더라면 '기억의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라스 : 그래요.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쓰면서 한 일입니다. 누군가는 그 고백이 너무 늦었다고 말하겠지요. 이제야 고백을 하게 됐는데, 나를 심판하고 싶은 사람들은 심판하겠지요.
<슈피겔> "미군에게는 1945년에 이미 친위대 복무 사실 시인"
<슈피겔>지는 또 그라스가 1945년 전쟁포로가 됐을 당시 미군에게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원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문서들을 단독 입수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문서들 중에는 그라스의 지문 도장과 함께 그라스를 나치 친위대 소속 제10 기갑사단의 소총수로 기재한 서류도 있다.
이 서류에 따르면 그라스는 1946년 4월24일 포로수용소에서 일한 대가로 107달러 20센트를 받고 풀려났다.
또다른 서류에는 1944년 11월 10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Waffen SS(나치 친위대)'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에 대해 <슈피겔>은 "그라스가 친위대에 모집된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슈피겔>은 또 "최근 발견된 이 문서들은 나치군에 관한 기록들을 관리하는 기관에 보관돼 있다"면서 "나치군은 전쟁 말기 인사자료들을 대부분 파기했기 때문에, 나치 친위대에서 그라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록한 또다른 문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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