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FAZ)>은 12일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이라는 기사를 통해 "그라스가 오는 9월 출간 예정인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17살의 나이였던 지난 1944년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62년만에 고백했다"고 보도했다.
<FAZ>는 "독일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왜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겨 왔는지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62년간 숨겨 온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주홍글씨'
지금까지 그라스는 독일군에서 방공부대 산하 지원대에서 복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가 복무한 부대가 실제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나치 친위대'라는 점과 그같은 사실을 60여 년이 넘도록 숨겨 왔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라스는 <FAZ>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군 부대를 지원하는 노동봉사자로 근무하다가 나치 친위대 소속 부대로 드레스덴에 주둔한 제10기갑사단에 입대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했다"고 털어놓았다.
<FAZ>에 따르면 그라스는 말년에 회고록 <양파 껍질>을 낼 때까지 이같은 사실을 감춘 이유에 대해 "젊은 날 세상물정을 모르고 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 나를 짓눌렀으며, 그것은 나의 '주홍글씨'였다"고 말했다.
그는 "친위대 복무 사실은 아내 말고는 자식들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나치 친위대는 하인리히 히믈러 지휘 하에 초기엔 9만5000명의 히틀러 경호부대로 발족했으나, 그 뒤 90만 병력에 36개 사단을 거느리는 정예 전투부대로 확대됐다. 특히 나치 친위대는 전선에 투입되는 것은 물론 유태인 체포와 강제노동수용소 관리, 유대인·공산당원 및 집시의 학살,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 나치 점령지에서 민간인 학살과 마을 방화 등의 만행을 자행해 악명을 떨쳤다.
그라스는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 "당초 15세에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수함 부대에 입대하려 했다. 이것도 사실 미친 짓이었지만, 잠수함 부대는 신병 모집을 중단한 반면 나치 친위대는 전쟁 막바지였던 당시 최대한 신병을 모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친위대를 정예 부대로만 생각하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전쟁에 끝나고서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이후 언제나 나는 '당시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또 "언젠가 이같은 과거를 고백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제펜클럽 체코본부 "그라스에게 수여한 문학상 철회 고려"
그의 고백이 발표된 후 독일 지식인 사회, 전세계 문학계 등에서는 그라스를 둘러싸고 옹호와 비난 의견이 대립하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펜클럽 체코본부는 13일 그라스에게 수여했던 문학상을 철회할 것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리 스트란스키 회장은 "우리는 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며 논의에 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 펜클럽은 1994년 체코의 저명한 작가인 카렐 차페크(1890∼1938)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그라스에게 수여했다. 공교롭게도 차페크의 형으로서 작가 겸 화가였던 요세프 차페크는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그라스는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요제프라는 소년에 대해 회고한 바 있다. 그 소년은 지금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다. 라칭거는 1941년 나치 소년단에 입단했었다는 과거 때문에 지난해 추기경에서 교황 후보로 떠오를 때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