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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뚝심'은 한끝 차이…허정무, '두려움 없는 축구'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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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뚝심'은 한끝 차이…허정무, '두려움 없는 축구' 펼쳐라

[프레시안 스포츠] '탱고 축구' 원조 우루과이전 용인술 포인트는?

23일 펼쳐진 나이지리아전을 한 편의 영화로 생각한다면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훌륭했지만 편집됐으면 좋았을 뻔한 장면도 들어 있었다.

그 아쉬운 장면은 차두리와 김남일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차두리의 경우는 크로스에 대비하지 못한 채 상대 공격수를 놓쳤다.

후반 교체 투입된 김남일의 실수도 안타까웠다. 일차적으로 공을 따내긴 했지만 상대와 몸싸움에서 밀렸고 무리한 태클로 페널티 킥을 내줬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이후 맞은 결정적 기회를 살렸다면 김남일의 실수는 자칫 치명적일 수 있었다.

믿었던 김남일의 '경험'이 '과욕'으로 나타나

선수 한 명의 교체를 갖고 감독의 용인술을 평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우리는 철저히 결과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일의 교체카드는 의문부호도 남겼다.

허정무 감독은 많이 뛴 염기훈을 빼고 월드컵 경험이 풍부한 김남일을 내세웠다. 그리스전에서 성공적이었던 김남일 교체 카드는 월드컵 이전부터 허 감독이 머리 속에 그리던 작전이다.

원정 16강을 눈앞에 두고 중앙수비가 흔들리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경험이 풍부한 김남일을 투입한 것은 한 편으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김남일은 수비형 선수다. 교체카드가 실패했을 경우 '잠그기식 축구'의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허정무 감독의 의도와 달리 김남일의 경험은 경기장에서 과욕으로 나타났다. 평소 같으면 쉽게 처리했을 상황에서 그는 허둥댔다. 흔히 교체돼 들어간 선수가 경기에 적응하기 전 자주 보이는 현상이지만 이 경기에서는 더 도드라졌다. 뭔가에 가위눌린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랬을까? 박지성 이전 주장 완장까지 찼던 김남일은 한국이 16강에 가는 데 뭔가 한 몫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없을 때 후배들이 좋은 경기를 펼쳐서 이 곳까지 오게 됐다.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박주영의 '포효'

아마 김남일에게 나머지 태극전사들과 코칭스태프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을 것이다. 의지가 강한 김남일도 새로운 각오로 다시 훈련에 임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김남일이 갖고 있는 심리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박주영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뉴시스

우리는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골을 많이 넣었던 박주영이 기도 세리머니를 하며 맞잡은 두 손을 그렇게 세차게 흔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포효를 접했던 적도 없었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한 골을 넣어도 시원치 않은 그가 자책골로 겪었던 아픔만큼 그의 포효는 길고 짜릿했다. 2002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위축돼 있던 안정환이 연장 골든골을 넣었을 때 날렸던 반지 키스 세리머니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는 다른 리듬의 '탱고 축구'

26일 맞붙는 우루과이는 우리가 예선에서 싸웠던 아르헨티나와 또 다른 리듬의 '탱고 축구'를 구사한다. 우리에게 '탱고 축구'는 아르헨티나뿐이었지만 사실 이 축구 스타일의 원조는 우루과이다.

1930, 1950년 월드컵 우승으로 앞서가던 우루과이 축구는 경제가 몰락하면서 서서히 그 자리를 아르헨티나에 내줬을 뿐이다. 실제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종가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싸우다 작년 타협에 성공해, 탱고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

남유럽 이민자들이 많았던 두 국가는 축구 스타일이 비슷했다. 애초부터 유럽축구의 성향이 강했다. 브라질식 드리블 돌파보다는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짧은 패싱게임이 대유행했다.

차이가 있다면 아르헨티나는 개인기를 통한 '변주'가 많아 리듬이 불규칙적이다. 한편 우루과이의 공격 리듬은 메트로놈 같이 비교적 규칙적이다. 패턴 플레이에 익숙한 한국의 수비수로서는 아르헨티나보다 편한 리듬이다.

문제는 우루과이의 수비가 매우 안정됐다는 점이다. 예선전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원동력은 수비 라인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느림보 그리스나 측면 공세에는 속수무책이었던 나이지리아와 차원이 다르다.

시험대에 오른 허정무의 용인술

우루과이전에서 관심이 집중될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와 오른쪽 측면 수비수다.

박주영의 공격 파트너로 염기훈은 별 역할을 못 해줬다. 아르헨티나전에서 결정적 기회를 놓친 게 특히 아쉬웠다. 염기훈은 이렇게 골도 못 넣었지만 슈팅 시도도 매우 적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공격과 수비가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이다.

허정무 감독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될 것으로 생각된다. 염기훈처럼 궂은 일을 대신 해줄 한국의 스트라이커는 사실상 없다. 무작정 킬러 한 명을 넣자니 중원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지만 실패했던 오범석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차두리는 확실한 강점이 있지만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단점도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영표가 지키는 왼쪽에 비해 이 위치는 처음부터 한국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허 감독이 차두리, 오범석을 모두 믿지 못한다면 이영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에 김동진을 투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상이 아닌데도 수비라인을 자주 바꾸는 것은 더 위험하다. 수비는 선수들간의 '호흡'과 '믿음'이 중요해서다.

허정무 감독은 원정 16강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큰 부담감은 털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루과이와의 경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를 해야 한다.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공격적인 경기운영과 공격적 성향의 선수를 투입하는 화끈한 축구다. 지더라도 후회 없는 승부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16강 경기에서 허정무 감독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한 승부수는 뭘까? 이름값으로만 보면 안정환, 이동국을 적절한 시기에 투입하는 게 최고의 승부수다. 하지만 조금 약하다.

오히려 실수를 했던 선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게 훨씬 더 강력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감독으로서 더 용감한 선택이라는 뜻이다. 염기훈이 골을 넣고, 차두리는 잘 막고, 김남일은 후반 투입돼 '진공청소기'다운 활약을 해줄 것이라는 유쾌한 상상이다.

감독에게 '고집'과 '뚝심'은 한끝 차이다. 경기에 지면 고집이고 이기면 뚝심이 된다. 허정무 감독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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