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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드는 세상 바꾸는 법 가르쳐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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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드는 세상 바꾸는 법 가르쳐 줄까?"

[화제의 책]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

1911년 앰브로스 비어스가 <악마의 사전>을 펴냈을 때, 책 제목 그대로 '꼬일 대로 꼬인' 이 책이 한 세기가 지나도록 널리 읽힐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비어스의 통찰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당장 지금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를 "범죄 계급 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비어스에게 누가 반박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출간된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갤리온 펴냄)은 이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 대척점에 서 있다. 이 책은 삶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앞서 산 사람의 지혜를 빌려온다는 점에서 비어스의 책보다 겸손하고, 책 제목대로 '유쾌하게 사는 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비어스의 것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톨스토이의 <지혜의 달력>이나 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과 닮았다.

"정의롭기만 한 인간은 잔인한 인간이다"

앞서 산 사람의 지혜가 담긴 '말들의 향연'이라고 해서 저자 고유의 색깔을 기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막시무스(Maximus)'라는 필명 뒤에 숨은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인간을 사랑하는 법'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나중에 뉴욕 시의 시장이 된 미국의 판사 라 구아디아와 영국의 시인 바이런에 기대 드러내고 있다.

"라 구아디아는 빵 한 덩어리를 훔친 노인을 재판하게 됐다. 노인은 가족들이 굶고 있어 빵을 훔쳤다고 말했다. 사연이 안타까웠지만 법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되는 법. 라 구아디아는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고, 자신이 대신 벌금을 냈다. 그리고 그 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그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도시에 사는 죄로 50센트씩 벌금형을 선고했다. 라 구아디아는 벌금을 모아 노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막시무스 지음, 갤리온, 2006). ⓒ프레시안

막시무스는 이 일화에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다음 말을 떠올린다. "정의롭기만 한 인간은 잔인한 인간이다(He who is only just is cruel)." 그렇다면 그의 '타인을 배려하는 법'은 어떨까? 그는 미국의 작가 워너의 다음 말을 상기하며 간디의 일화를 들려준다. "훌륭한 선물은 값비싼 것이 아니라 유용한 것이다(The excellence of a gift lies in its appropriateness rather than in its value).

"간디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신발 한 짝을 승강장에 떨어뜨렸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신발을 주을 수가 없었다. 간디는 얼른 남은 신발 한 짝마저 벗어서 떨어진 신발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그는 옆 사람에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 가난한 사람이 저걸 줍는다면 짝이 맞아야 신을 것 아닙니까?"

"당신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오해하지는 말자. 막시무스는 '밥은 제때 챙겨 먹기',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하기', '날마다 조금씩 더 부드러워지기'를 실천하는 평범한 40대 생활인일 뿐이다. 그가 전 세계의 '인생 고수'들이 삶의 문제에 대해서 어떤 현명한 답을 내놓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자신의 평범한 삶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앞서 산 사람의 지혜 사이에 자신이 끼워 넣은 80개 남짓한 단어에 대한 '그만의 사전'은 좀 더 불완전한, 그래서 훨씬 더 인간미가 있다. 예를 들어 막시무스는 짐짓 정색하고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피력한다. "(인간은 처음 보는 사람을 지극히 경계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보통은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동안에만…."

이 단어들에 대한 막시무스의 해석은 흥미롭게도 비어스의 것과 많이 닮았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충고'를 "친구를 잃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바보가 특히 선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막시무스는 이렇게 '충고'에 대한 생각을 들려준다. "절대로 하지 마라. (…) 당신의 충고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이라면 당신의 충고는 돼지에게 춤을 가르치려는 시도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충고하건대 누구에게도 절대로 충고하지 마라."

그러나 막시무스의 해석은 비어스의 냉소주의와는 다르다.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좀 괜찮은 사람들은 정치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좀 괜찮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그들로부터 지배받는 벌을 받는다."

막시무스는 불혹의 나이를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바꾸는 법'을 되뇐다. 미국의 작가 잉거솔이 지적한 것처럼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말이다. "당신이 바뀌면 세상이 당신을 위해 바뀔 것인다(If you change yourself, the world will be changed for you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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