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력 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출범한 기관의 이사장 선임 문제를 놓고 국제 원자력계와 국내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하게 문제제기 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2004년 국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내 우라늄 농축실험의 최고 책임자가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의 이사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2004년 핵물질 파문, 국제사회에서 재론되지 않을까?
2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정에 정통한 원자력계 관계자는 "최근 출범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원장 이헌규)의 이사장에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이 임명된 사실에 대해 IAEA를 비롯한 국제 원자력계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원자력통제기술원은 2004년 국내의 우라늄 농축 실험이 국제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된 이후 국내 원자력 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7일 출범한 기관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이미 정부 발표에서 확인된 대로 장인순 이사장은 2000년 1~2월 원자력연구소장 재직 때 우라늄 농축실험을 직접 승인한 인물"이라며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명목이긴 했으나 우라늄 농축실험을 주도해 IAEA 특별사찰까지 받는 등 국내 원자력 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에 먹칠을 한 장인순 이사장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된 기관의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국제 사회에서 큰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이 지난 10일 개최된 창립 이사회 자료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2004년 원자력연구소의 핵물질 실험 사건으로 추락한 국가 신뢰를 회복하고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돼 설립됐다"고 출범의 배경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장 이사장이 주도해 발생한 우라늄 농축실험의 '후폭풍'이 바로 이 기관의 설립 명분이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2004년 9월 국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우라늄 농축실험 파문은 대전 소재 원자력연구소에서 IAEA 규정 상 신고 대상인 우라늄 농축 실험을 무단으로 실시한 사실이 뒤늦게 IAEA에 확인돼 큰 논란을 빚었던 사건이다. 이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실험은 그 뒤 IAEA의 특별 사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논란이 됐던 과거 국내의 다른 핵 물질 실험과 함께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장인순 이사장은 국ㆍ내외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은 나의 허락 하에 이뤄진 것이었기 때문에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며 "핵 연료 생산 및 농축 기술의 국산화를 평생 목표로 삼아 온 과학자로서 최신 기술인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핵물질 실험 주도 당사자가 통제기관 이사장으로?
게다가 이번 이사장 임명은 과학기술부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돼 2004년 우라늄 농축실험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도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 하게 됐다. <프레시안>이 원자력통제기술원의 정관을 확인한 결과 초대 이사장과 원장은 과기부에 의해 선임되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해 논평을 요구 받은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원자력통제기술원은 IAEA가 별도의 원자력 통제기관을 마련해 핵 물질의 안전 조치를 대외적으로 실천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에 설립된 것"이라며 "과기부가 이런 중요한 기관의 이사장에 당시 우라늄 농축실험의 핵심 책임자를 앉힌 것은 다시 한번 국내 원자력 이용의 대외 신뢰도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과기부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했다.
그는 "장인순 이사장은 지난 1979년 원자력연구소에 들어간 뒤 27년간 국내 원자력 개발을 주도한 인물로 국내 원자력계의 '대부' 격인 인물"이라며 "관계, 학계, 산업계에 포진돼 있는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가 그의 이사장 선임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은 황우석 사태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기부가 여전히 '국익 논리'만 앞세우면서 국제적 규범을 무시하고 일부 과학계 기득권 집단에 휘둘려 맹목적인 지원을 하는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2004년 당시에는 장 이사장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자력연구소장 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으나 과기부는 임기를 다할 것을 권유하는 등 그를 감쌌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2005년에는 그에게 훈장을 주기도 해 원자력계 관계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장 이사장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원자력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과기부 '감싸기 급급'…시민사회단체 "감사청구 등 공론화할 것"
시민사회단체들은 장 이사장 임명의 철회를 과기부와 원자력통제기술원에 정식으로 요구할 예정이어서 파문 확산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IAEA를 비롯한 국제 원자력계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전에 국내에서 '자정'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장 이사장이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는 것을 포함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장 이사장의 자격에 대해서 이사회 등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과기부와 원자력통제기술원 등은 이를 '묵살'했다"고도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사회의 한 관계자도 "이사회에서 환경단체 쪽에서 선임된 이사 등을 중심으로 장 이사장의 자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이런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한편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과학기술부의 이문기 원자력국장은 23일 오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장인순 이사장의 임명' 사실은 확인하면서도 장 이사장이 2004년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이번에 다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 했던 사실이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는 등으로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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