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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거리응원을 통해서 본 '멜팅 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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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거리응원을 통해서 본 '멜팅 팟'

[참관기] 유학생이 본 월드컵 응원 풍경

10년 만에 고국을 찾은 심혁기 인턴기자가 한국의 응원문화에 대한 참관기를 게재합니다. 심 기자는 10년 전 고국을 떠나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현재는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부에 재학 중입니다. <편집자>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전혀 낯설지 않다. 한국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나라의 월드컵 응원 장면은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수없이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고국에서의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 나서는 마음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 외국에 살면서 10년 동안 텔레비전으로만 보아왔던 서울광장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서울광장을 메운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 모두가 하나 되어 한국 팀을 응원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길거리응원에 직접 참여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경기가 시작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시청으로 걸어가는 길은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멀리서 보이는 서울광장은 이미 붉은 관중으로 꽤 차있어서 놀랐는데 막상 광장에 도착하니 멀리서 보았던 수보다 더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듣자 하니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대구에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했다. '듣기만 했던 '한국인의 근성'이 바로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한국의 응원문화, 왜 유명한가?


ⓒ뉴시스
한국의 응원문화는 전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외국에서 한국광고를 접할 때 서울야경과 함께 꼭 등장하는 것이 한국의 붉은 응원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응원하는 것은 절대 희귀한 장면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다니는 학교 UC버클리만 해도, 라이벌 학교 스탠포드랑 미식축구를 하는 날이면, 학교의 모든 학생이 학교 상징인 파란색 옷을 입고 게임에 미친 듯이 열광한다. 이런 게임에서 이기면 하루 종일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하고, 지면 훌리건들이 등장해 공공시설을 부수는 행위도 다반사다.

그렇다면 왜 외국인들이 한국의 응원문화에 그렇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기자의 '미션'이었던 외국인 인터뷰에 '한국의 응원문화가 무엇이 특별한가?'라는 질문도 포함하였다.

"제 생각에는 미국에는 이렇게 국가적으로 응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인 거 같아요. 미국사람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한데 말이죠."

미국 텍사스 주립대를 다닌다고 밝힌 쉘리아가 위와 같이 말해줬을 때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미국사람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다. 기자의 미국인 친구들만 해도 연고지 팀이 경기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경기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으로 모인다. 생중계로 보지 않으면 팀을 '배신'하는 행위라며 꼭 생방송으로 시청한다.

그러나 쉘리아가 말했듯이 그 녀석들은 막상 국가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같이 수많은 인종이 어울려 사는 미국에서 한국처럼 다들 하나가 되어 한 팀을 응원하는 것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그렇다면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 프랑스는 어떠했을까? 프랑스에서 온 여행가 존이 말하길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한국 길거리응원과 비슷한 국가적 응원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1998년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을 했을 때도 한국과 비슷하게 응원을 했어요."

요즘의 프랑스는 어떠한지 물으니, 더는 프랑스에서는 98년처럼 응원을 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왜 프랑스에서는 예전만큼의 응원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국가적인 길거리 응원이 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지에 대한 답은 추론해 볼 수 있었다. 이런 국가적 응원은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행해질 수 없는,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문화인 것이다.

쉘리아와 존은 응원문화에 대해 매우 관심을 보였고, 한국에 호감을 나타내며 빨리 응원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외국인들 모두가 한국인과 함께 '하나'가 되어서 즐길 수 있을까?"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국적으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것은 절대로 흔치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답은 경기도 파주에서 왔다고 밝힌 40대 중반의 파키스탄 아저씨 시단트 씨의 인터뷰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한국어는 힘들고 한국 사람들은 항상 바빠 보이네요. 오늘은 월드컵 응원하는 걸 구경하러 왔어요."

또한 전반전 내내 내 뒤에서 한국 팀을 영어로 광적이게 응원하다가 한국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응원을 그만둔 외국인들을 생각해보면 역시 '하나'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 또한 다 응원에 참여하러 시청까지 왔고 붉은색 옷을 입고 함께 응원가를 외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처럼 '붉은악마'가 되어 응원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인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무지했던 것일까? 하지만 매개체로 비춰지는 응원전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것이었기에 처음 응원에 참가했던 사람이었다면 누구나 조금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대~한 민국'

서울광장의 시계는 8시를 가리켰다. 게임의 시작과 함께 길거리응원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항상 간접적으로만 지켜본 길거리응원 그 장면에 서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매우 기뻐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자가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였다. 서울광장을 넘어 광화문까지 모든 구간이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면. 달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람이 조금 더 많았다는 거뿐이었다.

'실제로 봐도 뭐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대~한 민국'을 외치기 시작했다. 박주영이 자책골을 허용했을 때, 수만 명의 국민들은 하나가 되어 아쉬워했고, 기성용의 강한 중거리 슛에 환호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외국인, 그리고 심지어 교통정리를 맡은 경찰들까지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한국 팀을 응원하는 장면을 보니 온몸에 감격의 전율이 흘렀다.

지난 10년간 외국에 거주하면서 항상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아야만 했던 그 장면에 드디어 참가하게 된 것이다. 책으로만 보던 음식을 직접 시식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텔레비전 속 응원, 실제로 보니…

10년 동안 항상 외국의 문화에만 억지로 동화되어야 하였던 기자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고국의 응원 현장에서 함께 어울리며 느꼈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쁨도 기쁨이지만 그려본 적이 없던 새로운 모습도 보았다. 말했다시피, 내 생각 속 한국은 매개체를 통한 이미지였고, 한민족의 통일성과 단합성을 명확히 강조하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응원전 참가를 통해 깨달았다.

온종일 시청을 돌아다니면서 머릿속을 스친 단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 '빨간색','응원','축구','잡상인','외국인','예수쟁이', 등등… 그리고 이 모든 뜻은 내포한 단어가 떠올랐다.

'잡동사니'

그렇다. 기자는 짧은 시간 내에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것들을 관찰했다. 경기 시작 전 서울광장에는 사진을 찍느라 바쁜 외국인들, 사진에 찍히려고 관심을 끄는 복장의 사람들, 돗자리와 음료를 파는 청년들, 서울 수돗물 광고 부스와 방송국 부스들, 검사들의 비리를 시민에게 호소하는 아저씨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 신자들까지…… 정말 인종의 도가니라 불리는 멜팅 팟 (Melting Pot) 미국도 울고 갈 만한 '잡동사니'를 목격한 것이다.

이 장면이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지만,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기자에겐 단일민족 국가 한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이 흥미롭고 생소하기까지 했다.

단일민족의 잡동사니와 다민족 미국의 멜팅 팟

서울광장은 분명히 다민족 미국보다도 더 다양했다. 아무리 모든 민족을 수용한다고 자부하는 미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미국 내에서는 다민족끼리 한 장소에 모여서 어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서울특별시 나성구'라 알려진 LA를 가면 한국이 따로 없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국과 똑같이 생활하고 반대로 근처 차이나타운을 가보면 중국인들도 끼리끼리 모여서 생활한다. 그렇듯이 많은 종류의 민족들이 함께 미국 땅에 공존한다고 해서 같이 어우러져 사는 건 아니란 거다.

반대로 서울광장의 모습은 어땠는가? 한민족 국가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시청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가 붉은 옷을 입고 한 팀을 응원하였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이상적인 멜팅 팟이 아니었을까? 물론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완벽한 단결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이보다 더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특별한 행사이고, 이 장면은 그저 한국의 아주 조그만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그런 이상적인 멜팅 팟의 모습이 단일민족국가 한국에서 나타난다는 게 참 신기하지 않은가?

23일 새벽에 열릴 나이지리아전 경기는 또 어떤 놀라운 응원 광경이 펼쳐질 것인지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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