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 체제 다음의 세계 무역질서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세계무역기구(WTO)가 진행하고 있는 도하라운드, 즉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또 다시 결렬돼, 도하라운드의 궁극적인 타결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WTO 회원국들 가운데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60여 개 나라 무역장관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협상을 벌였으나 협상 타결에 실패했다. 특히 무역규모가 크고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25개 핵심 국가의 무역장관들은 1일 '그린 룸' 회의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여 막판 타결을 시도했으나, 회원국들 사이의 의견차이가 좁혀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타결시한을 6월 말에서 7월 말로 한 달 더 연기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에서 출범한 도하라운드 협상은 애초의 타결시한이었던 2004년 말은 물론이고 수정된 타결시한 2006년 말과 다시 수정된 타결시한 2006년 6월 말도 지키지 못한 채 정처 없이 표류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제네바 회의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최근 임명된 수전 수워브 미 무역대표가 처음으로 미국 협상단을 이끌고 참가함에 따라 국제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새로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지만, 결국 이런 기대는 헛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도록 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양보의 카드를 새로이 제시하지 않은 채 기존의 입장에서 전혀 물러나지 않은 데 있다고 유럽연합(EU)과 개발도상국들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들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 강력히 주장해온 미국 내 농업보조금의 대폭적인 삭감에 대해 스워브 미 무역대표는 그에 상응하는 유럽연합과 개발도사국들의 추가적인 시장개방 확대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며 미동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워브 미 무역대표를 비롯한 미국 측 협상대표들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농업보조금은 미국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럽연합이 미국에 비해 3배나 되는 보조금을 농업 부문에 지원하고 있다"거나 "개발도상국들의 경우에는 민감품목이니 특별품목이니 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시장접근 차단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고 유럽연합과 개발도상국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 무역담당 집행위원을 지낸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유럽연합의 농업이 미국의 농업과 경쟁할 수 있게 하려면 우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경쟁할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지구의 친구들',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 등 100여 개의 국제 시민단체들은 지난주 말 제네바 회의에 참석한 각국 무역장관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도하라운드에 의한 시장개방의 이득 대부분이 선진국들로 흘러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면서 "이런 식의 다자간 무역협상은 세계인구 대다수를 이롭게 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일의 그린 룸 회의에 참석한 무역장관들은 라미 WTO 사무총장이 앞으로 2주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 브라질, 인도,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들과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의 마지막 날인 2일의 일정은 취소됐으며, 새로 설정된 협상시한인 이달 말까지도 이견절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내년 중반으로 예정된 미국 정부의 신속무역협상 권한(TPA) 유효시한 종결 등의 일정을 고려할 때 도하라운드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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