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대표팀의 오카다 다케시(岡田武史) 감독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덜란드와의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분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0-1로 끝난 그 경기는, 사실 두 팀의 전력 차이를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고 내용 역시 쉽게 비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16강 진출 가능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감독 입장에서 약간의 여유나 호기 정도는 부릴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카다 감독은 카메라에는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물론 경기에 지고 분하지 않을 감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승리를 거둔 카메룬과의 첫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조차 오카다 감독은 웃지 않았었다. 언론에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 리그 1차전 카메룬 전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오카다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표정이 밝지 못하다. ⓒ로이터=뉴시스 |
'오카다 이지메'에 취한 日 언론
사실 첫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오카다 감독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거의 '이지메'에 가까운 것이었다. 연이은 평가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이 그 이유였겠지만, 그에 대한 비판과 조롱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도가 지나친 듯했다.
'일본 국민들, 일본팀 3전 전패를 예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방패 삼아 언론들은 연일 '오카다 재팬'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애시당초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이미 언론에 의해 만들어져 있던 것을 생각하면 그 결과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 차기 감독까지 거론하며 오카다 이지메를 주 메뉴로 삼던 언론이 간판을 바꿔 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메룬 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설레발 장사'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대표팀 합류 조건으로 수비 면제를 요구하는 등 잦은 문제를 일으키던 혼다 케이스케(本田圭佑)가 일약 일본 축구의 구세주로 떠오른 가운데, 그를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운 오카다 감독에게는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나붙었다.
'3전 전패'라던 언론의 저주는 '네덜란드 격파, 16강 진출'로 긴급 수정되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거대한 미디어 이벤트가 언론의 천박한 속성을 얼마나 생생하게 드러내는지를 감안하더라도 손발이 심하게 오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도 조롱 퍼부었던 냄비 언론
오카다 감독에 대한 일본 언론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얼마 전 사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언론이 그 둘을 다루는 방식이 판에 박은 듯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전총리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은 재탕삼탕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TV, 일간지, 주간지 할 것 없이 '하토야마 이지메'로 시청률과 판매부수를 올렸다. 언론이 좋아하는 지지율의 끔찍한 수치는 출범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정권의 목을 옥죄었다.
▲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로이터=뉴시스 |
놀라운 건 하토야마의 뒤를 이어 정권을 꾸린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다. 이달 초까지 20% 아래를 헤엄치던 내각 지지율은 간 내각이 출범하자 66%(<마이니치신문>6월10일자)까지 반등했다. 한때 자민당과 같은 수준으로까지 급락했던 민주당의 지지율 역시 덩달아 34%까지 회복했다.
오카다가 웃지 않는 이유?
일본 미디어 정치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이 수치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내각이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농담같은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총리가 1년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네 차례나 연달아 일어나자 국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이 경제위기 만큼이나 심각한 사회적 불안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번에도 언론이다. 하토야마 총리를 끌어내린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언론이 어느새 그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심판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서 있는 것이다.
오카다 감독이 16강에 안착할 수 있을지, 간 내각이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언제든 조금이라도 불안과 공포의 냄새를 풍기는 순간, 순식간에 다시 언론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본선 전패(1998년)를 경험해 본 오카다 감독이 웃지 않는 건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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