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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동자, 벤츠와의 한 판 씨름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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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동자, 벤츠와의 한 판 씨름을 준비하다"

[기고] 벤츠사에 보내는 공개 질의

배 만드는 공장에서 15년 가까이 일했다. 명절날을 빼고는 360일 출근했다. 밤낮을 번갈아 일도 했고, 연달아 보름씩 밤샘작업을 하기도 했다.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이라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돌기도 했다. 부산에서 새벽 5시에 어둠을 가르고 승용차를 달려 진해의 조선소에 도착하면 6시. 죽음의 레이스를 하듯 달려 공장 정문에 도착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왔는지, 멍할 뿐 아무런 생각조차 없다.

그 시절 내게 유일한 위안은 아내도 딸도 아니었다. 자동차였다. 내 밥줄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는 자동차는 내 생명줄과 같았다. 360일 배와 씨름하는 내게 자동차는 유일한 벗이었다. 고된 노동을 잊으려고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자동차를 바꾸는 일이었다. 이 차 저 차를 바꿔가며 노동의 탈출구를 향해 달렸다.

2005년 조선소를 그만두며 나의 자동차 위안도 끝났다. 이제는 시외버스 군내버스를 이용해 다니는 게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동차와 결별은 공장에서 얻은 허리 디스크와도 관련이 있다. 오른 다리에 마비가 와서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마비가 온 다리로 걷는 일에 더욱 몰두했다. 공장을 그만두고.

수술을 권했던 병원에 가끔 찾아가 허리 사진을 찍는다. 허리 상태를 확인하는 일도 일이지만 병원 원장과 함께 내 몸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지난달에 병원에 찾아갔더니 원장 의사의 얼굴이 영 아니다. 왜 그러신가 물었더니 새로 산 자동차 때문이란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독일 벤츠사의 S350 모델이란다.

사람 몸도 삐거덕거리면 고치는데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소음 하나 못 잡는다며 하소연한다. 내가 사는 전세방 5배가 되는 거금을 들여 산 차란다. (이 순간 고소하기도 하고 약간 배알이 꼬이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가을 벤츠 S350을 샀는데, 소음 때문에 7차례 넘게 공장에 들어갔다. 한쪽을 고치면 다른 쪽에서 소리가 나고…. 요즘은 벤츠 S350을 타고 유턴을 하려고 핸들을 돌리면 '짜르르 짜르르' 하기도 하고 '끼르르 끼르르'하기도 한데 그 소리가 얼마나 불쾌한지 운전에 집중할 수 없고 미칠 지경이란다. 서비스센터에서 처음에는 수리를 해주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수리는커녕 '정상음'이라고 발뺌을 한다.

국내 차는 경차부터 중대형 승용차, 트럭, 승합차 할 것 없이 다 운전을 해본 나는 외제차는 몰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세계적 명성의 벤츠에서 이상음이 있다는 소리에 자동차에 대한 옛 애정(?)과 호기심에 내가 그 차를 몰아보면 안 되겠느냐고 원장에게 말했다.

먼저 위 내용을 가지고 지난 6월 14일 문의한 내용에 대한 벤츠 코리아의 답변을 소개한다. 벤츠 S350은 연비 향상을 위해 그동안 유압으로 작동되던 파워스틸워링을 전기모터를 통해 구동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시스템 변경으로 전기모터에서 나는 '정상음'이다. 벤츠 코리아 홍보를 담당하는 과장은 '정상음'임을 유난히 강조하였다. (벤츠 코리아 엔지니어는 원장에게 벤츠 S350 기종의 다른 시승차에도 나는 소리라고 했다. - 그러면 리콜 대상이 아닌가, 잠깐 의문도 들었다.)

정상음이라는 소리에 약간 화가 났다. '1번 어뢰'가 북한 소행임의 결정적 증거라는 천안함 진실 게임이 떠올랐다. 천안함은 직접 볼 수 없다. 하지만 벤츠 S350은 직접 볼 수 있다. 부랴부랴 '정상음' 탐구를 시작했다.

벤츠 S350을 가진 분을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만나 도움을 받아 운전을 했다. 물론 소리가 났다. 원장의 차처럼 귀에 거슬릴 정도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세하게 '씨르릭 씨리릭' 거렸다.

벤츠 S350보다 상위 차종인 벤츠 S500도 전기모터로 구동한다는 말에 벤츠 S500을 타보았다. 전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국내에서 ㅎ사의 ㅈ차량도 벤츠 S350처럼 시스템을 변경하였다기에 운전을 해봤다.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앞의 차량 말고도 국내에서도 벤츠 S350과 같은 시스템으로 바뀐 차종이 여러 대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시스템의 차량을 생산하는 ㄱ사의 기술부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입장을 들었다. 전기모터로 구동으로 인해 차에서 소리가 날 경우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운전에 거스를 정도로 소리가 난다면 자동차의 결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직접 시스템이 변경되었다는 차를 운전해 본 뒤에 지난 6월 17일에 벤츠 코리아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답변이 없다. 14일 오전까지 답변을 달라고 사정했다. 기다리라는 말 뿐, 언제 답변을 주겠다는 대답이 없다. 내가 별 볼일 없는 글이나 쓰는 작가이고, 벤츠를 평생 가도 사지 않을 고객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답변을 받지 못한 벤츠 코리아에게 한 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벤츠사의 성실한 답변 고맙습니다.

한 번에 질의를 하지 못하고 재차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먼저, 파워스틸어링과 관련하여 전기 시스템으로 변경되어 이상음이 들린다는 것은 제가 다른 자동차 기술자를 통해서 확인한 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만 추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혹 오해 소지가 있을까 싶어 메일로 질의를 합니다. 답변도 메일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벤츠 350의 다른 차에서도 동일한 이상음이 들리는지 묻고 싶습니다.

2. 이미 개발 및 시판 단계에서 이 음을 벤츠사는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3. 제가 벤츠 E 시리즈와 S 500을 탔더니 전혀 이와같은 소음이 없었습니다. 고객들이 이 부분에 대해 불만 사항을 나타냈는데, 이와 관련하여 대책 방법은 없는지요?

4. 350에서 소음의 정도가 차이가 있는데(실제 예민하게 감지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차를 운전했습니다) 모터 소음이 다른 차에 비해 심한 차가 있다면 이는 제작 과정이나 부품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음이 정상음이라 하더라도 소리의 정도에 대한 기준이 벤츠사에는 마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 이에 대한(정상음) 기준치가 있는지 여부를 묻고 싶습니다.

5. 벤츠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안전에 대한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되나 벤츠를 이용하던 운전자가 새로 구입한 이 차에서만 유독 소리가 나서 운전 시 집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안전과도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적인 명성과 신뢰를 지닌 귀사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일년 삼백육십일 고된 노동 속에 나는 '사치'스러운 자동차에 매달렸다. 지금 내 허리를 애정을 가지고 돌봐주는 이 의사도 말 못할 고됨을 자동차를 통해 이겨냈을지 모르겠다.

병원을 나오며 의사에게 한 마디 했다.

"가끔 차를 버리고 나처럼 세상을 떠도는 게 행복일 수 있어요. 차는 차고 사람은 사람이니 차에 당한 고민 사람 속에서 이겨내세요."

노동자 이야기만 쓰다가 뜻 밖에 벤츠에 빠지게 됐다. 글거리를 만들어준 세계적 명성에 걸맞게 오만(?)한 벤츠사가 고맙다. 배 만들던 시절을 떠올리며 당분간 이 벤츠 S350과 한판 씨름을 해야겠다. 내 부서진 허리를 매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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