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토종 PEF(사모펀드) '보고펀드'가 설립 1년도 안돼 좌초될 위기에 몰렸다.
변양호 대표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재직중이던 2001~2002년 현대차 비자금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12일 전격 체포됐기 때문이다.
보고펀드, '키맨' 변양호 대표의 체포로 큰 타격
보고펀드 측은 "이번 사안은 변 대표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펀드 운용과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좌초 위기 운운 '하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모펀드의 생리상 보고펀드의 앞날이 상당히 불투명해졌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는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운용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키맨'(핵심인물)의 존재 유무가 성공의 결정적인 요소로 꼽히고 있다.
변양호 대표는 투자자들과 맺은 약정서에 보고펀드의 '키맨'으로 등록된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출자자들이 투자자금 회수를 시도하고, 이에 따라 보고펀드가 좌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펀드 측은 정관에 변 대표 외에도 리먼브라더스 한국대표를 지낸 이재우 공동대표도 '키맨'으로 규정돼 있어 향후 펀드 운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고펀드의 설립은 물론, 설립 직후 5000억 원이 넘는 투자약정을 맺으며 단숨에 국내 최대의 토종 사모펀드로 떠오른 배경에는 변 대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 금융계의 정설이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이 미국계 펀드 론스타에 매각될 당시 헐값매각을 주도한 정부의 고위관료로 거론되기 전까지만 해도 변 대표는 국제금융계의 '파워엘리트'로 꼽히던 인물이다.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통관료 출신인 그는 외환위기 당시 외채만기 연장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 언론들으로부터 '세계경제를 이끌 차세대 리더 15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또 그는 2001~2004년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으로서 각종 부실기업 및 채권 정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게다가 그는 소위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면서 막강한 후광과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로 국제금융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가 재경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장(FIU)으로 있던 지난해 1월 "외국계 자본에 대항할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하고 싶다"면서 돌연 사퇴한 뒤 보고펀드 설립을 주도하고 나서자 금융계에서 "사실상 '이헌재 펀드'가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보고펀드, 설립 직후 5000억 투자약정 맺으며 급성장
보고펀드가 설립 몇 개월만에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외환은행 등 8개 은행로부터 각각 400억~1000억 원 수준의 투자한도 약정을 맺은 것은 변양호 대표 혼자의 힘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이 보고펀드에 400억 원의 투자한도를 설정해준 사실이 드러나자, 금융계 일각에서는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대가성'이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검찰이 변양호 대표를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로 체포하면서 동시에 보고펀드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실제 수사의 초점이 외환은행 매각 당시 재경부 장관이었던 이헌재 씨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고펀드는 지난 3월 말 첫 인수 대상으로 비씨카드의 지분 50% 이상을 인수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변 대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면서 비씨카드 인수에 필요한 자금조달 통로인 투자약정이 실제 투자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보고펀드와 투자약정을 맺은 한 은행 관계자는 "투자약정을 맺으면 조성된 펀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보고펀드가 조성한 5000억 원의 펀드 중 20%에 해당하는 1000억 원의 투자약정을 맺은 은행의 경우, 보고펀드가 특정기업에 1000억 원의 투자를 할 경우 20%에 해당하는 20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투자약정 자체를 철회할 사유가 생긴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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