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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고 싶은 회사원을 위한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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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공하고 싶은 회사원을 위한 고전"

[화제의 책]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철학자 강유원(44)은 한국 지식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적을 두지 않은 철학자는 꽤 있지만 그처럼 철학과 전혀 무관한 '웹 사이트 기획'과 같은 직업을 가진 '회사원 철학자'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학문적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다. 헤겔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0년이 넘게 헤겔의 저작을 강독해 온 그의 실력은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진 터이다. 그는 이런 모습을 '기행'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다음처럼 지청구를 놓기도 했다.

"속 편하게 학문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지는 것이 학문적 독립성을 지키는 데에는 가장 좋을 것이다. 게다가 직업을 가지면 구체적인 현실 속에 정신이 자리 잡을 수 있고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자학과 자만에 빠지지도 않는다. 글을 통한 현실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차적인 것일 뿐이다. 스피노자를 존경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당장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내가 공부하는 방법', <현대사상> 제9호, 민음사, 1999)

이 같은 강유원이 최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펴낸 <공산당 선언>에 대한 해설서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뿌리와이파리 펴냄)을 펴냈다. 저자와 출판사는 이 책을 처음 기획할 때 "좌파를 위한 자기 계발서"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고 한다. 이 '회사원 철학자'는 지금 <공산당 선언>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좌파를 위한 자기 계발서?
▲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강유원 지음, 뿌리와이파리, 2006). ⓒ프레시안

강유원은 2005년 봄 야간에 개설한 한 교양 강좌에서 주로 회사원을 상대로 강의한 내용을 뼈대 삼아 이 책을 썼다. 수강생 중에는 <공산당 선언>은 물론이고 마르크스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이도 있었다. 이런 학생들과 공산당 선언을 같이 읽기로 한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는 것."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은 많다. (…) 그러나 그 모든 책들이 회사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의 입장에서, 임금 노동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쓰인 것은 아니다. 책을 고를 때는 이 책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쓴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떤 책을 읽더라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 이익은 당장 연봉 올라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아 사람답게 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이익은 이익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유원이 당장 혁명을 하자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법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도 이 책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공산당 선언>의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한 줄, 한 줄 읽어 가면서 그는 자본주의의 정체를 규명하고 "왜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지"에 관심을 가진다.

이 과정에서 강유원은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공산당 선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는 <공산당 선언>을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 맥락에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책 곳곳에 지금 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할 참고도서 목록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동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펴냄), 부르스터 닌의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안진환 옮김, 시대의창 펴냄)가 그런 책들이다.

군데군데 일상생활에서 뽑은 다양한 예가 입말이 살아 있는 생생한 설명 속에 녹아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자신이 프롤레타리아인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회사에서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군가.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 마인드 가진 팀장, 사장보다 더 사장스러운 사람, 회사에는 사장과 사장 아닌 사람밖에 없는데 사장도 아니면서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객관적 위치를 알지 못할 뿐더러 남이 그 위치를 알려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답이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2004년에 삼성이 낸 세전 이익은 19조 원이었다. (…) 대한민국의 삼성이니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풀렸을까. 그래서 그게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고, '우리 서민'들을 배부르게 했을까. 그건 아니다. 이건 고용효과만 들여다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그 회사 공장들은 이미 중국, 인도, 브라질, 말레이시아, 태국, 슬로바키아 같은 곳으로 이전해버렸다. (…) 삼성의 매출과 이익은 거의 다 반도체 산업에서 나온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은 장치산업이기에 국내에 공장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생색낼 만한 고용효과가 별로 없다. 고용된 인원인 별로 안 되니 당연히 발생되는 이익이 사회로 돌아오는 효과도 적을 수밖에 없다."

강자에게 무릎 꿇기 싫은가? 그럼 '고전'을 읽어라!

강유원이 지금 새삼 <공산당 선언>을 같이 읽자고 목소리를 높인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전 읽기는 "강자에게 흡수되기 십상"인 "성찰 없는 몰역사성의" 시대에 "진정한 자기를 찾는 방법"이다. 고전을 천천히 곱씹다 보면 결국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고전이라고 알려진 책을 읽어보니 어떤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과 동떨어진 것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사실 별 거 아니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 중에 고전 그 자체보다는 해설서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버거워 보이더라도 고전을 직접 손에 집어 드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고전을 어렵게만 여기지 말고 읽어보기로 하자."

사실 강유원의 고전 읽기에 대한 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유원 때문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세 번째 고쳐 번역해야 했던 이윤기의 말을 들어보면 그를 고전 읽기의 안내자로 삼은 게 얼마나 행운인지를 알 수 있다. 이윤기는 2000년에 나온 <장미의 이름> 세 번째 개정판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1992년 미국에서 원고를 다시 손보았다. 미국과 일본에서 나온 <장미의 이름> 관련 서적을 구입, 약 500개에 이르는 각주도 달아, 같은 해 개역판을 냈다. 오금 저린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잡초 없는 뜰이 어디 있으랴,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면서 8년을 보냈다. 2000년 3월, 무려 60여 쪽에 달하는 원고를 받았다. 철학을 전공한 강유원 박사의 '<장미의 이름> 고쳐 읽기'라는 제목이 달린 원고였다.

강유원 박사는 동국대학교에서 철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장미의 이름>을 바르게 읽어 주면서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가르쳤던 모양인데, 바로 그때의 메모를 내게 보내 준 것이다. 매우 부끄러웠다. 이 원고는 무려 300여 군데의 부적절한 번역, 빠져 있는 부분 및 삭제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강 박사의 지적은 정확하고도 친절했다.

(…) 2000년 6월말부터 7월초까지 강유원 박사의 지적을 검토하고, 300가지 지적 중 260군데를 바르게 손을 보았다. 그러고는 강유원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고, 그의 지적을 새 책에 반영해도 좋다는 양해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장미의 이름>에 내가 세 번째로 손을 댄 내력이다."


이윤기가 탄복한 강유원의 실력은 이미 그가 2004년 펴낸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펴냄)를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장미의 이름 읽기>에서 중세의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 누비며 제대로 된 텍스트 읽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강유원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최근의 '고전 다시 읽기' 류의 책의 범람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제법 배웠다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텍스트를 재미 삼아 뜯어서 아무 데나 붙여서 제멋대로 읽어대는 일을 대단한 학문적 행위로 간주하는 요즘, 제대로 된 텍스트 읽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 유용한 조언까지…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의 또 다른 미덕은 글쓰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지침서로서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막판에 멋진 말 쓰는 거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거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냥 끝을 맺자니 허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쓰면 안 된다. 허전하더라도 끝을 맺어라. 앞에서 하지 않은 말을 결론에 써서는 안 된다. 결론은 항상 앞에 나온 말들보다 범위가 작거나 같아야 한다. 이걸 어기면 논리적 비약이고, 일상용어로 말하면 사기다."

이쯤 되면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이 대단히 매력적인 책임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유원의 '썰렁한' 유머를 빌리자면 올해 도서 구입비를 1만 원으로 책정했으면 꼭 이 책을 사서 읽을 일이다. 독일어 판에서 번역된 <공산당 선언> 1장이 부록으로 붙어 있는 것은 돈을 따로 들이지 않고도 직접 '고전 읽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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