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가 지난달 '한미 FTA 2차 예비협상'에서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나오는 문서들 중 '대외 비밀문서'로 설정된 문서는 협정 발효 후 3년 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초지일관 "협상 문서들을 공개하면 다른 나라에 협상 전략을 노출시키게 된다"는 논리를 고수해 왔다.
공개 않겠다던 협정문 초안 내용, 왜 공개했을까?
이처럼 정부가 초안의 내용을 일부나마 공개한 것은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정부가 한미 FTA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보고할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고의로 한미 FTA 관련 문서들을 감추고 밀실협정을 맺으려 한다"는 등의 비판을 거세게 하고 있는 데 대한 정부 나름의 대응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는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라는 대정부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한농연, 전농 등 42개 농·축·수산 단체들로 구성된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는 이달 초 '우리 측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정보공개 청구서'를 외교통상부에 제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이달 초 정부를 상대로 한미 FTA와 관련된 문서들을 공개할 것을 공식으로 요구했다. '정보공개 청구제도'에 따르면 정부는 법령상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닐 경우 10일 내에 해당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10일 간 공개시한을 미룰 수 있다.
정부는 지난주 민변 측에 정보공개의 연기를 통보했고, 이에 따라 최종 공개시한이 다음 주로 미뤄진 상황이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협정문 초안의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FTA는 네거티브 방식…국민들은 협정서 내용이 궁금하다
그러나 150여 쪽에 이르는 초안을 불과 4쪽에 불과한 요약문으로 줄여 발표한 것에 대해 초안 전문의 공개를 기대했던 민변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미 FTA처럼 국가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협정의 경우에는 협정문에 들어가는 문구 하나하나가 중대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상적인 국제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이 협정문에 들어갈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자국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한미 FTA의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국민여론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게 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의 견해다.
한미 양국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을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작성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협정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식 포지티브(positive) 방식과 자유무역협정(FTA) 식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이 있는데 전자에서는 협정의 적용을 받게 될 사안들을 일일이 협정문 안에 기재해야 하는 반면 후자에서는 협정의 일반 원칙을 세운 후 그 일반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안들에 대해서만 기술하면 된다.
지난달 문화관광부 등 정부 부처들이 해당 이해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협정문에 열거돼 있지 않은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이 등장할 경우 자동적으로 개방대상이 된다"고 밝혔다는 점도 협정문이 네거티브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협정서 안에 별도의 조항을 삽입하지 않은 모든 분야가 자동적으로 협정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FTA는 WTO 협정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로서는 본인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 협정서 안에 들어갔는지 알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외통부 "협정문 초안의 全文, FTA 발효 후 3년간 공개 안 한다"
17일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2차 예비협상 때 미국과 협의했던 대로 협정서 초안은 협정 발효 후 3년까지 공개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정부가 협정문 초안의 전문(全文)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2일 국회에 보고한 것도 초안의 전문이 아니라 초안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고, 국회 보고서를 다시 요약한 것이 바로 15일 발표한 요약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선뜻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분위기다. 이미 올해 1월 사법부가 '정부가 WTO 쌀 협상에서 나온 문서들을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판결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정부가 협정문 초안의 전문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농 의장인 문경식 씨는 외교통상부 반기문 장관을 상대로 정부가 WTO 쌀 협정 과정에서 나온 국가별 협상 문서들을 3급 비밀로 분류해 공개를 거부한 데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1월 '정부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 법률상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했던 정보는 비공개 대상으로 보기 힘들다'며 원고 측에 손을 들어줬다.
당시 이 소송에서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았던 수륜법률사무소 측은 "서울행정법원은 미국과 중국 등과 개별적으로 체결한 합의문을 3급 비밀로 분류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국제 통상협상 내용을 국가기밀로 분류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침해하던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서 비공개의 기본전제는 '정부-국민 간 신뢰'
사실 정부가 통상협정에서 나오는 문서들을 모조리 공개할 경우 나른 나라들과의 통상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는 일리가 있다. 또 다른 많은 나라들도 FTA 협상 문서들을 비공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행정법원도 위 사건의 판결문에서 "(…) 국가에 있어서도 외국과의 통상에 관한 합의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공표되어 투명하게 됨으로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고, 다른 한편 일정한 통상에 관한 합의 등이 공개되지 아니함으로써 국가의 정당한 이익이 보다 잘 지켜줄 수 있다"며 "그러므로 통상교섭에 관한 사항 중 일정 부분은 그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지만, 그 일부는 국가 이익을 위해 공개되어져서는 아니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비공개의 결과 발생되는 투명성 부족의 문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통제나 이후의 합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에 의하여 상당한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정부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나오는 문서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대정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정부가 국민들의 비판 여론을 적절히 수용할 자세가 돼 있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협상 문서들을 공개할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결국 '정부가 협상 문서들을 공개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정부와 정부의 협상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환원된다. 지금껏 공청회도 한 차례 개최하지 않고 한미 FTA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온 정부의 태도에 비춰볼 때 국민들이 협상 문서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부가 공개한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의 요지> ◇상품무역 분야 상품(농산물 포함)에 대한 내국민 대우 및 시장접근 -상품 교역에는 양국간 내국민 대우 원칙을 적용하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인정하는 것 외의 수출입 관련 제한의 도입 또는 유지 금지 -부속서 상의 양허표에 따라 상대국 상품에 대해 관세를 즉시 또는 점진적으로 철폐 -무역을 과도하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속서 상 양허표에 따라 관세할당제도(TRQ, Tariff Rate Quota)를 관리 -농산물 수입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하거나 수입물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농산물 특별 긴급관세'를 도입 원산지/통관절차 -상대국 상품에 FTA 협정 상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원산지 기준을 규정 -역외가공 특례(한·EFTA 방식)를 규정해 개성공단 생산물품에 대한 원산지 인정 근거 마련 -상품의 수출입 과정에 수반되는 통관절차적 내용을 규정: 원산지 자율증명제, 원산지 사전판정제, 원산지 검증제도, 양국 관세당국 간 협력방안 무역구제 -양국 간 교역 과정에 수입 급증으로 인한 산업 피해시 무역구제 수단으로 양자 및 다자 세이프가드 조치를 규정 -미국 측의 반덤핑 발동을 억제하기 위해 발동요건을 강화하는 특례조항을 다수 포함 SPS(위생검역)/TBT(기술장벽) -위생 및 식물 검역 조치 적용에 대하여 WTO의 SPS(위생검역) 협정 상의 권리와 의미를 재확인하고 양국간 SPS 논의를 위한 접촉선(contact point) 지정 -상품 교역에 장벽이 될 수 있는 표준 및 시험검사 제도 운영 관련 상호협력 방안을 규정하고 시험검사 결과에 대한 상호 수용 촉진을 규정 ◇서비스/투자 분야 투자 -양국 간 투자 및 투자자에 대해 내국민 대우를 부여하고 투자 관련 이행 의무 부과를 금지: 단 특정 분야에서 차별 조치가 필요한 경우 부속서상 유보 목록에 기재해 허용 -중대한 국제수지 위기의 예외적인 상황에서 국경간 자본거래 및 송금을 제한하는 긴급제한 조치 발동 가능한 권리 규정 국경간 서비스 무역/일시입국 -서비스 교역 관련 일반적인 의무사항인 내국민 대우,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고, 시장접근 제한을 금지: 단 상기 의무사항에 불합치하는 조치는 부속서 유보목록에 명기 -전문직 서비스 자격 상호인정을 위한 작업반 구성 -우리 전문직 종사자의 대미 진출을 위해 별도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설정 금융 서비스/통신 서비스/전자상거래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금융허브 달성을 위해 상업적 주재 금융서비스의 경우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 유보안에 열거 (네거티브 방식) -금융서비스의 국경간 거래는 소비자 보호 및 금융감독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기존의 개방방식을 유지 (포지티브 방식):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내용을 반영 -통신서비스의 경우 WTO 관련 규정상의 내용 위주로 구성: 상대국 통신망에 대한 비차별적 접근 및 이용 보장, 지배적 통신사업자의 의무, 공정한 정책결정을 보장 -전자상거래를 통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관행을 유지하되 향후 WTO 결정에 변경이 있는 경우 재검토 |
<정부가 공개한 분야별 협상 목표> 상품무역 일반 내국민대우 규정 등을 통해 자유무역을 가로 막는 차별적 대우를 철폐하고 점진적인 관세철폐를 통해 양국간 교역 증진 및 시장접근 기회 확보 농업 우리나라 농업의 민감성을 반영: -민감도가 높은 일부 품목의 양허제외, 관세인하기간 장기화 등 다양한 유형의 관세인하방식 마련 -농산물 수입관리제도(TRQ 등)의 적정한 운영 방식 규정 -수입급증에 대비한 세이프가드 등 적절한 보호장치 마련 원산지/통관 -FTA에 따른 특혜관세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원산지기준 확정 -개성공단 생산물품에 대한 원산지 인정 근거 마련 -양국간 통관절차의 간소화·신속화로 교역 촉진을 지원하고, 원활한 협정이행을 위한 양국 관세당국간 협력장치 마련 무역구제 거대시장인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주요 무역구제 피제소국임을 감안해 FTA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가 극대화되는 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 위생검역(SPS)/기술장벽(TBT) -WTO SPS 협정을 비롯한 국제기준 및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SPS 문제를 협의하도록 대응 -우리의 표준 및 시험검사(적합성평가) 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 양국 교역에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새로운 기술장벽 발생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투자 -투자 자유화를 통한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 및 이를 통한 국내산업 발전과 소비자 혜택 확대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진출환경 개선 및 투자보호 강화 서비스 일반 -국내 서비스 산업별 특성과 경쟁력 수준을 감안하여 단계적인 개방을 함으로써 국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 -우리 서비스업체 및 서비스인력의 미국진출 확대를 위한 미측 자유화 조치 확대 일시입국 양국간 상품·서비스 교역 및 투자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인 및 전문직 종사자들의 원활한 이동 보장 금융서비스 -세계적인 금융개방 추세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의 현실을 감안, 금융개방 기조를 유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건전성 제고, 금융허브 전략과의 연계 등을 목표로 협상 기타 분야(경쟁,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분쟁해결 등) -FTA를 통한 무역자유화 효과 제고 등을 위해 경쟁법 및 소비자보호법 집행에 있어 양국간 협력 기반 마련 -미국 조달시장에 우리 업계의 효과적 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통해 지식기반 경제 활성화 도모 및 지재권 관련 국내 제도의 선진화 -우리의 노동권 보호수준 및 집행능력에 대한 객관적 인식 제고 및 노동분야 협력 강화 -국내 환경법령 및 환경 보호수준과 조화되면서, 양국간 적절한 환경협력 사업을 마련 -협정 발효 후 원활한 협정의 이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및 신속하고 효과적인 분쟁해결절차 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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