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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NY'이 '평택 시위'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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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NY'이 '평택 시위'와 만나면?

[화제의 책] 반대의 감각 <불찬성의 디자인>

13일 저녁 친구들은 다음날 평택 대추리에서 열릴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집회'에 나설 채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라면상자에서 오려낸 골판지에 '대추리에 사랑 걸렸네', 'America(미국)는 전쟁 대신 fuck(섹스의 속어)-사랑-하라'와 같은 문구들을 새기고 이에 어울릴 사진과 그림을 골라 붙이며 낄낄댔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인용 시위 포스터들에는 평택 주민을 선동하려는 외부세력의 불순함이 아니라 전쟁의 확산에 반대하는 명랑한 목소리들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 '반대'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수단과 매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워졌다. 다양한 형식의 포스터, 만화, 배지 등이 만들어지고,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유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반대'의 목소리들은 '반대를 반대'하는 보수 주류언론들의 목소리에 의해 왜곡되거나 사장되기 일쑤다.

<불찬성의 디자인(The Design of Dissent)>(2005년, 밀턴 글레이저와 미르코 일리치 지음, 박영원 옮김, 지식의 숲 펴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 옛 유고슬라비아의 분쟁, 이라크 전쟁 등 1980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이 담겨 있다. 또 인종 및 남녀 간의 차별, 식량안보, 기업윤리, 유전자 조작(GM), 미국 대통령선거 등과 관련해 외쳐진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해학성과 선정성을 동시에 지닌 이 이미지들은 전세계 거대 미디어들이 전달하는 폭력적인 현실의 이미지들로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밀턴 글레이저는 'I ♥ NY'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그래픽 디자인 계의 살아있는 화신이다. 글레이저와 함께 책을 쓴 미르코 일리치는 <뉴욕타임스>와 <타임>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다.

글레이저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킨다"
▲ <불찬성의 디자인(The Design of Dissent)>(2005년, 밀턴 글레이저와 미르코 일리치 지음, 박영원 옮김, 지식의 숲 펴냄)

밀턴 글레이저는 뉴욕 소재 시각예술학교(SVA)의 교수이자 아트디렉터인 스티븐 헬러와의 인터뷰에서 '불찬성(dissent)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글레이저는 "전체주의를 향해 움직이는 제도상의 본능 때문에 반대는 매우 필수적입니다"라며 "배지를 디자인하면서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기술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글레이저는 반대의 목소리가 빠질 수 있는 '독단의 함정'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는 "만약 반대해야만 하는 상황에 계속 처한다면 당신은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일한 명제로 반대를 대하기 때문에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 인해 당신은 자기 확신이라는 막에 휩싸이고 맙니다.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반대의 성격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있는 신념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반대의 이상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나는 반대가 더욱 긍정적인 측면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글레이저는 많은 그래픽 디자인들이 정치적·사회적 반대를 가장해 시장의 마케팅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그는 "오늘날 어떤 제품들은 젊은이들이 그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정의하도록 재촉해 그것을 혁명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반대의 가장 슬픈 표현 중 하나입니다"라며 베네통, 케네스 콜, 벤 앤 제리스 등 소수의 '생각 있는' 기업들이 만든 정치적 광고들도 오염됐다고 선언한다.

'시장에 갇힌 그래픽 디자인'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대를 표현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남아 있다. 미국의 저명한 연극 연출가인 토니 쿠스니는 "시장은 그래픽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의 어휘, 그리고 대기 밖의 공기까지도 생산한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대단한 정치적 그래픽 디자인의 힘도 압제와 맞서 싸우는 곳에서조차 반대와 이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인식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변화가 불가능하다 한다든지, 무작정 희망으로 결론을 내린다든가, 반대의 언어나 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현상을 문제 해결의 씨앗 속에 숨긴다면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속에 모든 것이 펼쳐져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들은 '반대에 대한 반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에서 어떤 '반대의 목소리'들이 나오는지 궁금한가, 그런데 식자들의 따분한 글을 읽어낼 인내력은 없는가? 그렇다면 <불찬성의 디자인>를 펼쳐 그 안의 충격적인 이미지들에 당신의 감각을 맡겨 보라.

아래에 <불찬성의 디자인> 속에 담긴 400여 점의 작품들 중 그나마 '덜 선정적인' 작품 몇 점 소개한다.

'부시 대통령님, '석유' 드셨어요?'
▲ '석유 드셨어요?' ⓒ지식의 숲

'석유 드셨어요?' (포스터, 네다르 치즐과 토니 토마셰크 제작, 슬로베니아, 2004년)는 미국 낙농업협회의 '우유 드셨어요?'라는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입가에 우유를 묻히고 있는데, 이 포스터의 효과는 사람들이 그 '우유 수염' 광고를 알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입가에 '석유 수염'을 단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치 뱀파이어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석유를 향한 탐욕을 드러내 보인다.
▲ '죽음의 깃발'(좌)과 '줄무늬와 별'(아래). ⓒ지식의 숲

'죽음의 깃발 (미국이여, 어디로 갔는가)' (포스터, 에이드리언 버크 제작, 미국, 2003년)(위)은 석유와 피로 구성된 성조기의 이미지를 통해 미국이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이미지의 포스터는 반(反)이라크전 운동에 사용됐다.

'줄무늬와 별' (만화, 캐리 휘트니 제작, 피터 쿠퍼 그림, 2002년)(아래)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강력히 반대하는 <코믹 저널>이 특별판인 '애국주의'를 위해 제작한 만화다. 부시 정부의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이 어떻게 폭력을 재생산해내는지 보여준다.

아이팟으로 고문받는 이라크 병사
▲ '이라크' ⓒ지식의 숲

'이라크' (포스터, 코퍼 그린 제작, 미국, 2004년)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의 광고를 패러디한 포스터다. 이 이미지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아부 가라이브 군교도소에서 당한 끔찍한 고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제작자는 기존의 아이팟 광고물 사이에 이 포스터를 전시해 충격효과를 높였다고 한다.
▲ '피의 욕조' ⓒ지식의 숲

'피의 욕조' (포스터, 요시 레멜 제작, 이스라엘, 2002년)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 분쟁에 있어 그 어느 쪽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제작자인 요시 레멜은 시체 보관소와 자살 등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의도적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팔 분쟁…잘린 손으로 악수하는 샤론과 아라파트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3'(위)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4'(아래). ⓒ지식의 숲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3' (포스터, 요시 레멜 제작, 이스라엘, 2003년)(위)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4' (포스터, 요시 레멜 제작, 이스라엘, 2004년)(아래)는 2002년에 '피의 욕조'를 제작해 '이-팔 분쟁'의 잔혹성을 전달했던 요시 레멜이 2003~2004년 시리즈로 제작한 포스터들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3'(위)는 평화도 생명체, 즉 깨지기 쉬운 유기체에 불과할 뿐인데 이스라엘은 왜 이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 비아냥거린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004'(아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정부가 협력을 시도하는 중에 무자비하게 잘려 나간 평화를 묘사한다. 이와 동시에 잃어버린 수족이나 몸의 일부는 계속된 분쟁의 결과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미친 소 드셨어요?"
▲ '유전자조작 식품(GMO) 좋은 음식'(위)과 '미친 소 드셨어요?'(아래) ⓒ지식의 숲

'유전자조작 식품(GMO) 좋은 음식' (소책자, 아레크 부이니 제작, 폴란드, 2004년)(위)을 보면 유전자조작 식품을 '프랑켄슈타인 식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먹음직스러운 레몬에서 털이 돋아난 모습이 담긴 이 혐오스러운 이미지는 우리가 어머니 같은 자연에 장난을 칠 때 직면하게 될 미지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미친 소 드셨어요?'(포스터, 샤론 디지아신토, 미국, 2004년)(아래)는 '석유 드셨어요?'처럼 미국 낙농업협회의 '우유 드셨어요?' 광고를 패러디한 포스트로 초식 동물인 소에게 분쇄된 고기를 먹이는 것과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다. 2003년 미국은 3680만 마리 이상의 소를 도축했지만 그 중 광우병 검사를 실시한 소는 2만453만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비율은 공중위생과 동물관리와 관련한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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