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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물고 물리는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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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 편의 물고 물리는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분석] 검찰 수사 결과,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나?

4개월에 걸쳐 진행된 황우석 씨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그 간 황 씨와 그의 지지자 또 일부 언론이 주장해 왔던 내용 대다수가 '거짓'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 가운데 특히 주목할 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논문 조작'의 가장 큰 배경은 '주먹구구식 실험실 운영'

검찰은 12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04년,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은 황우석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해 이뤄진 '사기극'이라고 밝혔다. 황 씨는 그동안 논문 조작에 일부 개입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특히 2004년 논문의 경우에는 조작을 주도한 사실을 부인해 왔다.

검찰에 따르면 2004년 논문에 실린 1번 줄기세포(NT-1)는 2003년 2월 9~11일 경 미즈메디병원으로부터 제공받은 노 모 씨의 난자 및 체세포를 이용해 박을순 연구원이 확립한 것이엇다.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애초 이유진 전 연구원이 이를 확립했다고 발표했으나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박 연구원이 확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이 대목에서 황우석 씨의 주먹구구식 실험실 운영이 그 자신의 발목을 잡았음이 이번 수사 결과 확인됐다. 이같은 황 씨의 실험실 운영 방식은 논문조작 사태의 가장 중요한 배경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2003년 2월 중에 황 교수 연구실에 난자가 공급된 것은 3일과 9일 두 차례. 당시 전반적인 실험 상황을 관리하던 류영준 연구원은 3일의 난자 제공자인 이 모 씨의 인적사항은 전달 받았으나 9일의 난자 제공자인 노 모 씨 인적 사항은 받지 못한 것. 기본이 결여된 사태였다. 결국 류 연구원은 나중에 1번 줄기세포가 확립돼 DNA 지문분석이 필요한 시점에 이 씨를 난자 및 체세포 제공자로 '잘못' 지목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실수는 충분히 교정될 수 있었다. 2003년 5월경 황우석 씨 등은 1번 줄기세포에 대한 DNA 지문분석을 실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박종혁, 김선종 전 연구원이 1번 줄기세포의 DNA 추출에 실패하자 황 씨는 "그럼, 우선 난자 제공자 체세포의 DNA 시료를 둘로 나눠서 보내!"라고 지시했고, 두 사람은 이 지시에 따라 1번 줄기세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씨의 체세포 DNA 추출물을 2개로 나눠 전남 장성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부분소로 보낸다. 검찰은 "황 씨는 이렇게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대질 조사 과정에서 박종혁, 김선종은 일관되게 '황우석의 승낙을 받고 이렇게 DNA 시료를 보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과정을 통해 1번 줄기세포는 전혀 관계없는 이 씨의 DNA 지문분석 결과와 함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렸다. 검찰은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황우석이 정상적으로 1번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DNA와 이 씨의 체세포 DNA에 대해 지문분석을 분석 의뢰했더라면, 1번 줄기세포가 노 씨에게서 유래한 것임을 실험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우석의 '논문 조작'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런 실험실 분위기에 덧붙여 황 씨 자신이 논문조작을 적극적으로 진두지휘한 정황도 이번 수사결과 확인됐다.

황 씨는 DNA 지문분석 외에도 염색 사진, 테라토마 사진, 각인 유전자 검사 등 전 과정에 걸쳐 조작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는 강성근 교수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 특히 염색 사진, 테라토마 사진의 경우에는 1번 줄기세포의 사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황 씨와 강 교수는 "다른 줄기세포 사진이라도 괜찮으니 좋은 사진을 보내라"고 박종혁 전 연구원에게 직접 요청해 미즈메디병원 수정란 줄기세포 사진이 2004년 논문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 세상을 속이고 나니 두 번째는 훨씬 쉬웠다. 검찰은 "황우석은 2005년 3월 줄기세포 2, 3번의 존재를 믿고 줄기세포 확립 기술을 확신해 다른 나라에 앞서 논문을 제출해 특허권을 취득하려는 욕심에 논문을 조작하게 됐다"며 "그는 각종 검증 실험 결과의 조작을 지시하는 등 논문 조작을 총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확립 현황 도표를 직접 조작하고 줄기세포 확립 과정에서 동물영양세포를 사용하고도 인간영양세포를 사용한 것처럼 허위 기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황 씨는 직접 핵 이식한 난자 개수를 줄이는가 하면, 아직 확립되지 않은 8~12번 줄기세포가 확립된 것처럼 조작하기도 했다.

당시 황 씨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을 보자. 황 씨는 테라토마 형성 검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2005년 2월 21일 김선종 전 연구원이 "2번 줄기세포 테라토마 슬라이드를 만들었다"고 보고하자 "2, 3번 다 찔렀으니까 조직이 좋으면 2번으로 2, 3, 4번의 사진을 다 만들죠. 다 똑같은 것 아닌가 뭐"라고 하면서 김 전 연구원에게 테라토마 사진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황 씨의 줄기세포'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에서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할 점은 줄기세포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황우석도 이번 수사 과정(김선종과의 대질 조사)을 통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애초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황우석 씨는 2005년 4월 22일(이른바 14번 줄기세포가 확립됐다고 황 씨 측이 주장하고 있는 날) 이후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실험실을 폐쇄하기 전까지 8개월 동안 단 한 개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로 확립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는 이미 소위 '섞어 심기'의 주역인 김선종 연구원이 2005년 논문의 제2 저자가 아닌 제7 저자로 등재된 데에 실망해 황 씨와 갈라선 뒤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황 씨의 줄기세포는 모두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였다. 검찰이 12일 밝힌대로, 이 줄기세포들은 모두 김선종 전 연구원이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와 배반포 단계의 서울대 실험실의 줄기세포를 섞어서 배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바탕영양세포 접시에 배반포 단계의 서울대 줄기세포와 이미 확립된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함께 넣을 경우, 당연하게도 생명력이 미약한 서울대 줄기세포는 성장하지 못하고 사멸한 반면 이미 줄기세포로 확립된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는 바탕영양세포에 안착해 성장하게 됐던 것이다.

김선종 전 연구원은 매주 월, 수, 금요일에 바탕영양세포를 서울대 실험실로 가져오면서 미즈메디병원 수정란 줄기세포를 바탕영양세포 배양접시에 숨겨서 가지고 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연구원은 이 때 서울대 연구원들에게 발각될 것을 염려해 '조명이 밝으면 세포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면서 작업대의 조명만 남기고 실험실의 나머지 조명을 모두 끄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특히 김 전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그때까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던 미즈메디병원 수정란 줄기세포(Miz-2, 7, 10)를 사용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검찰이 이 비공개 줄기세포의 반출 현황을 김 전 연구원이 조작했다는 사실을 적발하면서 덜미를 잡히게 된 것. '완전 범죄' 시도는 이렇게 덧없이 끝나고 말았다.

논문 조작의 '조역' 김선종, 그의 중압감과 도덕불감증

그렇다면 김선종 전 연구원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검찰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정리했다.

첫 번째 이유는 김 전 연구원의 심리적 중압감이었다. 황우석 씨는 1번 줄기세포가 확립된 이후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박종혁, 김선종 전 연구원을 통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의 확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자 그는 입버릇처럼 "이것만 되면 되는데…, 나는 여한이 없는데…"라며 김 전 연구원에게 줄기세포 확립을 심하게 독려했다는 것이다. 2004년 8월부터 박종혁 전 연구원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김 전 연구원의 심리적 중압감은 더욱더 심해졌다. 여기에 강한 성취욕도 한몫 했다.

검찰은 또 다른 이유를 김선종 전 연구원의 "과학자로서의 연구 윤리의식 및 진실성 결여로 인한 습관화된 도덕적 불감증"을 들었다. 김 전 연구원은 2003년 12월 경 자신이 배양하던 1번 줄기세포의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미즈메디병원에서 이미 확립한 수정란 줄기세포(Miz-1)를 섞어 배양한 적이 있었다. 또 2003년 11월~2005년 2월 경 작성한 줄기세포 관련 논문 4편의 실험 결과와 사진도 조작했고, 이 논문을 근거로 작성한 박사 학위 논문을 한양대에 제출해 2005년 8월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황우석은 '줄기세포'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었을까?

'논문 조작'이라는 핵심 사실과는 관계가 없지만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황우석과 김선종의 사전 공모 여부에 대해 검찰은 이날 "김선종은 어느 누구와도 사전 협의하거나 사후 보고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황우석, 김선종을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모두 김선종 단독으로 행한 일이라는 답변에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황우석 씨는 도대체 실험실의 책임자로서 뭘 한 걸까? 검찰 수사 결과 그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황우석 씨는 2004년 10월 5일 2번 줄기세포의 확립이 배반포 단계에서 사실상 중단된 것을 보고 "어떻게 하느냐, 큰 일이다"며 큰 실망감을 보이고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전문가들에게 당시 배반포 단계의 줄기세포 사진을 보여주며 확인한 결과,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더 이상의 배양이 불가능한 것이었음에도 황 씨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날 김선종 전 연구원은 '우발적인 충동에 의해' 미즈메디병원에 가서 수정란 줄기세포(Miz-4)를 가져와 최초로 '섞어 심기'를 시도해 성공한다(2번 줄기세포). 황 씨가 줄기세포 확립에 정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런 갑작스러운 성공에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황우석 씨는 배양 부분에 관한 한 김선종을 자신의 '선생님'이라고까지 진술하면서 매일 아침 서울대 실험실에서 김선종과 함께 세포를 관찰하였음에도 줄기세포 형성 과정의 세포 상태를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김선종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의존했다"며 "서울대 연구원들은 김선종의 배양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고 '신의 손'이라고 평가했다"고 이런 정황을 꼬집었다.

제자가 스승을 속이고, 스승은 제자에게 부정행위를 지시하고

궁극적으로는 황우석 또는 김선종이라는 개인의 문제를 훌쩍 넘어서서 '학문적 사기' 행위가 자행될 수 있는 토양이 문제였던 것으로 지적됐다.

실험실 내의 뿌리 깊은 '도덕적 불감증'이 서로 속고 속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섞어 심기'를 숨겨야 했던 김선종 전 연구원은 2004년 11월 4일과 2005년 1월 24일경 각각 2번 줄기세포, 3번 줄기세포에 대한 DNA 지문분석을 앞두고 각각의 체세포 DNA를 추출해 이를 2개로 만든 후 국과수 서부분소로 보내 DNA 지문분석 결과 두 가지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낸다. 당연한 결과였다. 김 전 연구원은 이를 강성근 교수에게 전달했고 강 교수는 그대로 이 데이터를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나머지 4~12번 줄기세포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황우석 씨가 김 전 연구원에게 직접 "김 선생, 그러면 남아 있는 체세포 DNA로 지문분석을 빨리 하자"고 지시해 체세포 DNA를 2개로 만든 후 국과수 서부분소로 보냈다. 결국 제자가 스승을 속이고, 스승은 제자에게 부정행위를 지시하는 '악순환'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행됐던 것이다.

황우석 씨도 뒤늦게 김 전 연구원을 의심하기는 했다. 검찰은 "황우석이 11월 12일 <PD수첩>에 줄기세포를 넘겨주기에 앞서 2005년 10월 중하순에 이미 2번, 3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를 의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황 씨의 '가짜 줄기세포'에 대한 사후 인지 시점을 추정하기도 했다.

"한 편의 물고 물리는 사기극이었다"

검찰이 이날 배포한 144쪽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본 한 생명과학자는 "한 편의 물고 물리는 사기극을 보는 기분"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이번 검찰 수사 결과는 지난번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과와 큰 맥락에서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며 "단, 황우석 교수나 김선종 연구원 등 부정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의 구체적인 역할이 상세하게 드러난 점이 의미라면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형기 피츠버그대 교수도 이날 오후 KBS1 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중요한 연구가 실시될 때 자칫하면 그 판 자체가 깨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검찰 수사결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또 "이 사건은 결국 어떤 연구의 기본적인 자격 요건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연구자의 정직성과 연구 대상에 대한 윤리적인 조건 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중요한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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