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이 없는 현대차, 정말 안 되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만 10일이 지났다. 정 회장이 구속될 당시 재계와 대다수 언론들이 '위협하듯' 주장했던 대로 경영 공백으로 인한 현대차의 표류가 그동안 가시화됐다. 체코 공장의 건설이 늦춰졌고, 새 승용차의 시판에 차질이 생겼으며, 월드컵 관련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이런 현대차 위기에 대해 제시되고 있는 해법들은 엇갈리고 있다.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의 '귀환'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정 회장의 '옥중 경영'과 '조기 석방'을 전제로 한 경영일정 조정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조기 석방과 경영 일선 복귀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경영 정상화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정 회장의 부재를 보다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전문경영 체제 구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에는 현대차 지분을 5.2%밖에 보유하지 않은 정 회장이 현대차를 마치 사적인 소유물처럼 통제하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유발한 데 대한 비판이 녹아 있다.
표류, 누수, 총체적 난국, 식물기업…'엄살'만은 아니다
최근 현대차그룹 주변에서는 '현대차의 표류', '경영 누수', '총체적 난국', '식물기업화' 등과 같은 표현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정몽구 회장의 공백이 국내 제2의 재벌인 현대차의 몰락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같은 위기론은 현대차의 주장대로 '엄살'만은 아니다. 최근 정 회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와 품질회의에서는 미국 조지아 주의 기아차 공장 기공식과 체코의 현대차 공장 건설 등과 같은 긴급한 현안들이 논의되지 않았다. 이달 29일에는 신차의 개발 등과 같은 핵심 경영사안들이 논의되는 상품기획위원회가 열리지만 현대차는 정 회장 없이 이 위원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모습이다.
현대차가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다는 '월드컵 마켓팅'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민과 함께 하는 월드컵 페스티벌' 행사가 취소됐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공식 지원 차량을 전달하는 행사의 규모가 대폭 축소했다. 한편 현대차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신규 사업들도 삐그덕거리고 있다. 이달 1일 시판을 시작할 예정이던 신형차 아반떼의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일본 도요타가 생산하는 고급차인 렉서스를 능가하는 차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추진됐던 'BH 프로젝트'는 아예 중단됐다.
게다가 정 회장이 경영 일선을 비운 지난 10일 동안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등 대외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현대차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현대차 노동조합에서마저 잡음이 일고 있다. 최근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그동안 정 회장에 대한 엄정한 검찰수사를 촉구해 왔던 노조 집행부를 비판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비즈니스위크 'MK 부재를 전화위복 삼아 현대차 도약할 것'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공백을 딛고 경영체제를 새롭게 정비해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는 모습보다는 현대차에서 정 회장의 카리스마와 제왕적 면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오히려 위기론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정 회장이 가능한 한 빨리 경영 일선에 복귀해야 더 이상의 위기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BW)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현대차가 겪고 있는 작금의 일들은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라고 보도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정몽구 회장의 부재가 현대차에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현대차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BW 인터넷판은 8일 '현대, 큰 바퀴 없이 더 원활한 운행?'이라는 글에서 정 회장의 부재가 그동안 정 회장의 강렬한 통제 하에 있었던 젊은 경영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증대시켜 주가가 부양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BW는 "정 회장이 2개월 안에 보석으로 석방될 것 같다"고 전망하며 적어도 그때까지 김동진 부회장, 이현순 연구개발(R&D) 총괄본부장, 서병기 품질 총괄본부장 등 "강력한 경영진"이 현대차의 성장을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BW는 현대차의 이사회 또한 총수의 입김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독립경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BW는 SK(주)의 사외이사인 남대우 씨의 말을 인용해 "회사에 믿을만한 이사회가 있다면 (검찰의) 수사가 [새 공장의 건설 등과 같은] 중요한 경영현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BW는 오랫동안 노조와 다툼을 벌여 왔던 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빠지면서 기업 내에 보다 조화로운 노사관계가 구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과연 현대차가 정몽구 회장의 부재를 회사의 질적 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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