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인 7일, 정체된 도로에서 짜증을 내던 국민들은 "도로 1㎞당 자동차 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51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일(194대)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들어야 했다. 시점을 기막히게 맞춘 이 건설교통부의 발표를 듣고 대다수 국민들은 "아, 그래서 차가 막히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건교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인 도로 확충 없이는 혼잡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도로라도 중요도를 따져 필요할 때 국고를 지원하고 대도시권은 외곽 망을 구축해 연계성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도로 확충의 필요성을 또 한 번 역설했다.
하지만 과연 '도로 확충'으로 교통 혼잡을 해결하자는 건교부의 인식은 맞는 걸까? 건교부의 도로 부족 타령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것을 염두에 두면 계속 도로를 뚫는데도 교통난이 계속 심화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동차 이용 강요하는 나라…도로 계속 뚫어도 교통난 심화
도대체 도로는 계속 뚫는데 왜 교통난은 계속 심화될까? 녹색연합은 8일 건교부의 발표를 반박하면서 "우리나라 교통난은 '자동차 위주의 도로 공급 정책'이 빚어낸 악순환"이라고 설명했다.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있지 않은 데다 도심에서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너도나도 자동차를 운행하고 결과적으로 교통 혼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부의 2004년도 교통 부문별 투자액을 비교한 결과를 살펴보면 이런 녹색연합의 분석에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전체 투자액의 66%가 도로 건설에 할당됐는데, 이는 철도·지하철(23.7%), 버스·택시(0.4%)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가구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꾸준히 늘어 2006년 3월 현재 1가구당 0.86대나 된다. 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하루 운행 거리가 2002년 기준 61.2㎞로 미국과 비교했을 때도 하루 6㎞나 더 길다는 사실이다. 이 운행거리는 일본보다는 무려 35.5㎞나 더 긴 수준이다. 더구나 2001년과 비교해보면 미국, 영국, 일본은 다 운행 거리가 줄어든 반면에 우리나라만 오히려 늘었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도로 면적은 '대지 면적'에 맞먹어…일본보다 더 높아
더구나 건교부의 발표는 중요한 다른 사실도 누락했다. 건교부는 "우리나라 도로 1㎞당 자동차 대수는 151대나 된다"며 "우리나라 뒤를 잇는 이탈리아(73대), 포르투갈(63대), 일본(62대)의 2배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건교부의 발표는 진짜 중요한 사실은 감추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땅덩이가 크지 않은 마당에야 무작정 도로를 뚫을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면적 중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2490㎢)은 약 2.5%나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국의 대지 면적(2500㎢)에 맞먹는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전체 면적 중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1.88%에 불과하다.
국토 면적 당 도로 길이는 1008m/㎢로 OECD 중위권이다. 고속도로만 놓고 봤을 때는 국토 면적 당 도로 길이는 29.4m/㎢로 OECD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영국,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즉 좁은 국토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은 결코 나쁜 편이 아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 국도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접근이 가능한 현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다.
2005년 도로 건설 5조4000억 원 중복·과잉 투자…'유령 도로' 남발
건교부의 도로 공급 위주 정책은 교통 혼잡을 해결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환경 파괴뿐만 아니라 막대한 '혈세'가 낭비된다.
녹색연합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5년 6월 현재 전국의 국도 건설 공사 구간 중 24곳, 고속도로 건설 공사 구간 중 3곳이 중복·과잉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중복·과잉 투자되고 있는 구간의 총 길이는 434.8㎞로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길다. 이런 공사로 낭비되는 예산은 무려 5조4000억 원에 이른다. 물론 이 돈은 건설업체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또 이런 도로에 대한 중복·과잉 투자는 필연적으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유령 도로'를 낳는다.
건교부의 통계에 따르면 1일 교통량이 4만 대에 못 미치는 고속도로 노선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13개 노선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문경에서 수안보로 이어지는 이화령 고개의 경우에는 채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4번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인접해 지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국도의 교통량은 예측 당시의 20~30% 수준에도 못 미쳐서 결국 2004년 12월 29일 정부(부산지방국토관리청)가 도로를 건설·운영하는 사업자에게 배상을 해줘야 했다.
녹색연합은 "도로 공급 위주의 정책으로는 교통 혼잡을 결코 풀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교부는 도로 건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며 "건교부가 자동차 중심의 도로 공급 위주의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면 결국 건교부는 결국 무능력을 이유로 해체나 전면적인 인사 쇄신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교부는 언제까지 "도로가 부족하다"는 타령만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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