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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축구'는 옛말, 오늘은 '박지성 시프트'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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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축구'는 옛말, 오늘은 '박지성 시프트'로 승부수

[프레시안 스포츠]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 딜레마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허점은 마라도나 감독이라고 했다. 전술구사 능력, 용인술 등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컸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마라도나는 감독이 된 뒤에도 그저 공만 잘 찼던 선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이다. 마라도나는 축구 선수로 경기장 안팎에서 칠 수 있는 '사고'는 다 쳐봤던 풍운아다. 신의 손 골, 코카인 복용, 마피아와의 연계설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굴곡진 인생사 속에 마라도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잉글랜드 두 번 울린 마라도나의 '임기응변'

한 잉글랜드 기자가 마라도나에게 물었다. "신의 손 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마라도나는 기자를 쓱 보더니 한마디 했다. "잉글랜드가 나한테 스포츠맨십에 대해 설교할 자격이 있나? 1966년 잉글랜드가 어떻게 월드컵에서 우승했는지 생각해 봐라." 잉글랜드 기자는 머쓱해졌고,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잉글랜드는 1966년 월드컵 결승에서 '웸블리 골'로 우승했다. 월드컵 역사에서 골라인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가장 컸던 골이다. 더욱이 잉글랜드는 원래 계획마저 바꿔가며 잉글랜드의 모든 경기를 웸블리 경기장에서 하는 '비신사적' 행동을 했다.

<프레시안>에서 '광야의 아침'이라는 부제로 글을 연재하는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기자에게 잉글랜드와 서독과의 결승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적절한 설명을 해준 적이 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이긴 다음에야 신사지." 장 대표는 1966년 월드컵 현장을 지켜본 유일한 한국 기자다.

▲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감독 ⓒ뉴시스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의 딜레마 어떻게 풀까?

마라도나는 임기응변에만 강한 게 아니다. 감독이 된 뒤 의외로 치밀해졌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터진 아르헨티나의 골은 마라도나의 '머리'에서 나왔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나이지리아 경기에서 코너킥 기회를 얻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마라도나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23명의 선수 누구라도 출전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1군과 2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리그 득점왕 디에고 밀리토가 주전이 아닐 정도로 초호화 공격진이다. 아르헨티나 6명의 스트라이커가 유럽리그에서 이번 시즌 넣은 골을 모두 합치면 무려 133골이다.

그런데 차고 넘치는 아르헨티나 공격수 풍년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원래 공격수인 선수를 수비수로 내세웠다. 오른쪽 윙백으로 나선 구티에레스의 원 포지션은 레프트 윙이다. 아직은 측면 수비에 익숙하지 않은 구티에레스는 제 위치를 못 잡고 헤맸다. 나이지리아의 측면 공격이 간간이 살아났던 것도 구티에레스의 무기력한 수비와 관련이 컸다.

마라도나는 구티에레스를 교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같이 빠른 팀을 상대로 구티에레스를 그대로 두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마라도나도 알 것이다. 구티에레스 대신 나올 수 있는 선수는 니콜라스 부르디소다. 그는 중앙수비와 측면수비를 모두 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아르헨티나 '컨트롤 타워' 베론의 공백

아르헨티나에는 '돌출변수'도 발생했다. 베론의 부상 결장이다. 베론은 아르헨티나의 야전 사령관으로 마라도나 감독과 전술에 관해 자주 상의하는 위치에 있는 핵심 선수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였던 베론은 아르헨티나의 공격 템포를 조절한다. 정상적인 아르헨티나 공격인 모두 베론의 발에서 시작된다. 월드컵을 앞두고 모든 세계 언론은 메시에 주목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메시는 경기를 읽는 눈을 좀 더 익혀야 한다"고 했다. 메시가 아직 가지지 못 한 거의 유일한 부분은 베론이 채워 준다.

마라도나는 베론 자리에 막시 로드리게스를 내세울 예정이다. 로드리게스는 분명히 35세의 노장 베론보다 체력이 앞선다. 한국과의 경기가 고지대에서 펼쳐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로드리게스는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아르헨티나 경기의 리듬을 조절하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허정무 감독이 야심 차게 준비 한 '박지성 시프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베론이 없는 중원으로 위치를 옮긴다. 그동안 허정무 감독이 공을 들여온 '박지성 시프트'다.

허정무 감독은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마라도나와 만났다. 당시 한국은 힘 한 번 못 써보고 1-3으로 졌다. 실력도 한 참 떨어졌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전술적으로는 중원에서 아르헨티나 패스에 정신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다. 허 감독은 마라도나를 집중마크 하느라 '태권축구'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허 감독은 강대 강의 대결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강팀을 상대로 중원에서 밀리면 한국다운 축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은 그리스를 제물 삼아 만든 '신바람'을 아르헨티나 전에서 계속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조별 예선 경기가 위험해 진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메시를 경험해 봤다. 그를 꽁꽁 묶었다. 하지만 박지성 혼자 한 게 아니었다. 다른 맨유 선수들이 메시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끊임없이 방해해 줬기에 박지성의 수비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결국 '박지성 시프트'의 성공여부는 메시에게 연결되는 패스의 적절한 차단에 있다. 그래야 박지성에게 여유가 생긴다. 김정우, 기성용 등이 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에게 편안하게 패스가 연결되는 순간 '박지성 시프트'의 효과는 반감된다.

북한 축구의 교훈 두 가지

북한은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수비 면에서 북한은 상대 선수가 슛을 때릴 때 몸을 날리면서 적절하게 각을 줄여줬다. 북한의 리명국 골키퍼는 이 덕을 많이 봤다.

골키퍼 혼자서 막강 화력의 상대방을 막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수비수가 도와야 골키퍼도 산다. 스위스가 스페인을 잡을 수 있던 것도 스페인 선수가 슛을 할 때마다 절묘하게 각을 줄여 준 스위스 선수들의 위치선정에 있었다. 꼼꼼한 훈련으로 소문이 난 수학교사 출신의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의 작전이 성공했던 이유다.

공격 면에서 북한은 어떻게 해야 약 팀이 역습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줬다. 북한의 골은 정대세의 헤딩에 이어지는 지윤남의 슛으로 터졌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지윤남의 퍼스트 터치는 환상적이었다. 정대세의 헤딩 연결이 약간 길었지만 이 기회가 골로 연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습 시에 한국 선수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24년 전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맞아 특별한 전략도 없이 '몸'으로 싸웠다. 이제 한국은 똑 같은 상대와 '머리'로 싸운다. '박지성 시프트'의 위력이 짜릿한 골로 연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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