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에 대한 수리모형실험이 지나치게 단기간에 끝나는 등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논란이 인 가운데, 이번에는 보의 수문 운영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보 건설이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4대강에 건설되는 보의 공정률이 이미 30퍼센트를 웃도는 상황에서, 정작 보의 운용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것. 정부의 '속도전'에 밀려, 안정성 검증을 위한 기본적인 절차들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16일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과 대한하천학회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 박재현 인제대 교수(토목공학) 등 전문가 및 환경단체 회원들이 연구소를 찾았다. 국토해양부의 의뢰를 받아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되는 보의 수리모형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이 연구소에서, 보의 안정성 및 적절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나선 것. 이곳에서는 한강의 여주보·이포보·강천보와 낙동강의 합천보·낙단보 등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되는 5개의 보를 60분의 1 크기 모형으로 축소해 수리모형실험이 진행 중이다.
수리모형실험이란 보·댐과 같은 대규모 시설물이 하천에 들어설 경우 발생하는 여러 변화를 예측해 설계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구조물을 본뜬 모형에 물을 흘려보내 그 영향을 분석하는 실험이다. 이러한 실험 과정을 통해,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공사의 수질 악화나 홍수 피해 가능성 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다.
▲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에 위치한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 내부의 모습. 한강의 여주보·이포보·강천보와 낙동강의 합천보·낙단보 등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되는 5개의 보를 60분의 1 크기 모형으로 축소해 수리모형실험이 진행 중이다. 사진은 낙동강 합천보를 축소한 모형. ⓒ프레시안(선명수) |
▲ 관동대 박창근 교수(가운데)가 국토해양부 및 수리모형실험 관계자들에게 실험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이날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이들 보에 대한 수리모형실험이 "홍수 피해나 수질 오염 등, 보 건설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함이 아닌, 단지 실험을 했다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형식적으로 치른 실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수기에 보의 수문을 작동하는 방법, 홍수기 이후 보에 물을 다시 채우는 방법, 갈수기 시 물의 활용 방법, 오염원 처리 방법 등 보의 수문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방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4대강에 들어서는 16개의 보 공정률은 이미 30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의 안정성에 대한 사전 검증과 수문의 운용 계획이 전혀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보 공사가 진행된 것.
이날 현장에 나온 국토해양부 산하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정책총괄팀 담당자는 "보의 수문을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를 의뢰해 놓은 상태이며, 결과는 올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관동대 박창근 교수(토목공학)는 "정부는 이미 보 공정률이 30퍼센트가 넘었기 때문에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공정률이 30퍼센트가 되도록 운영 방안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4대강 사업은 여전히 '설계 중'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보 건설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수질 오염에 대해서도 대책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수리모형실험에서 오염 물질에 대한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면서, '고정보'가 아닌 '가동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천 폭 짧고, 배사구는 누락…'날림' 실험 우려, 현실로 드러나
이밖에도 이날 현장 조사에서는 단기간에 완료돼 '부실' 논란을 낳은 4대강 수리모형실험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조사 결과, 한강 이포보 모형의 강폭은 설계 도면과 60센티미터 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험에 사용되는 모형이 실제 크기의 60분의 1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실제보다 무려 36미터나 강폭을 짧게 만든 상태에서 그대로 실험을 진행한 것. 박창근 교수는 "실제 하천 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험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또한, 낙동강 낙단보 모형은 설계 도면과 달리 바닥에 쌓인 모래를 배출하기 위한 배사구 3곳이 아예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형 실험을 진행한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 측은 이런 내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지난달 말 국토해양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 같은 수리모형실험 결과가 나오면, 향후 이를 본 공사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공사를 먼저 시작하고 그에 맞춰 수리모형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형식적인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며 "이미 집을 지어놓고 그 집이 무너질지 나중에 검증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이날 현장 조사를 토대로 4대강 사업의 절차적 문제점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인제대 박재현 교수(토목공학) 역시 "4대강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단지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실험에 불과하다"며 "이 상태로는 홍수 시 보 건설로 인한 영향을 분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강폭을 실제보다 36미터 가량 짧게 만든채로 실험을 진행해 논란을 빚은 이포보 모형. ⓒ프레시안(선명수) |
4대강 수리모형실험 '부실' 논란…실험 끝나기도 전에 보 착공되기도
4대강 사업 수리모형실험에 대한 '부실'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대강 일대에 들어서는 16개의 보 가운데, 금남보를 제외한 15개 보는 수리모형실험이 끝나기도 전에 공사가 강행돼 논란을 빚어왔다. 수리모형실험을 통한 안정성 검증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된 것.
특히,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3월까지 실험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본 공사를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보에 대한 수리모형실험은 대부분 5월 말에야 완료됐다. 수리모형실험 결과를 보 공사에 반영한다는 계획 역시,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공사가 진행되면서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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