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의약품과 관련된 미국의 요구사항이 관철되면 국내 제약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제네릭(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약의 복제품) 개발에만 의존하는 다수 영세 제약업체들은 FTA로 생존기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12일 발표한 '한미 FTA가 국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이번 FTA를 통해 자국 제약사의 한국시장 침투가 수월하도록 약값 및 특허권 관련 제도의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FTA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신약 가격산정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전망이다.
현재 국내 오리지널 신약 가격은 선진 7개국 평균과 유사효능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낮은 쪽을 따르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선진 7개국 평균의 50%에 불과해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계속 불만을 표시해 왔다.
또 미국은 우리 정부가 약값 인하를 위해 추진해 온 참조가격제(일정 수준의 상한가를 설정하고 초과가격은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나 포지티브 약가제(약효와 경제성을 평가해 보험급여 대상 약품을 제한하는 제도) 등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을 오리지널 제품의 80% 수준까지 보장하는 제도 역시 미국 측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와 함께 싱가포르나 호주와 FTA 협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신약에 대한 자료 독점권과 특허기간 연장 규정 등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의약품 특허권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미국의 이런 요구가 대부분 관철돼 제네릭 의약품 개발 환경이 나빠지면 극소수 대형업체를 제외한 국내 영세기업들은 제품출시 지연, 수익구조 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국내 제네릭 의약품의 선전으로 잠시 주춤했던 국내 진출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더욱 유리한 입장이 되어 국내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비해 FTA 체결에 따른 관세 철폐는 국내 의약품 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연구원은 우려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미국의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업이 얼마 되지 않아 당장 수출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FTA를 통해 의약품 제도의 투명성과 제품의 경쟁력이 강조되면 제약사와 병의원 간의 고질적인 불공정거래 관행이 줄어들고 국내 제약산업의 구조조정과 연구개발(R&D) 역량이 강화되는 등의 긍정적 효과는 기대해볼 수 있다고 이 연구원은 밝혔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고은지 책임연구원은 "국내 의약시장은 과거 미국의 협상 파트너였던 호주, 싱가포르, 바레인 등에 비해 규모가 크고 제약산업 활동도 활발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협상이 맹목적으로 미국 의견을 따르는 형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연구원은 그러나 "현재 국내 제약산업은 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며 "정부는 업계의 요구사안을 수렴해 국내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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