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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외환위기가 울리는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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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외환위기가 울리는 경보

제2의 위기 모델…'한국에 불똥 없다' 장담 못해

북유럽의 아이슬란드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아이슬란드에 닥친 외환위기는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총체적인 부실에 빠진 탓이라기보다는 해외 투자자들의 '아이슬란드 투자' 열풍에 이어 일어난 갑작스런 '아이슬란드 탈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이슬란드가 처한 상황은 국가경제의 펀더멘털이 건전한 상황에서도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제2의 외환위기 모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에 불어닥친 '외국인투자 열풍'**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0만 명 남짓한 작은 나라다. 대외적으로 개방경제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주요 수출산업이 1차산업인 수산업이었고, 외환보유액도 8억 달러 남짓한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아이슬란드 경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은 21세기 들어 일본·유럽·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면서 대안의 투자처를 찾아 헤매던 세계의 '핫머니'들이 이 작은 나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세계의 헤지펀드들은 거의 제로 수준의 저금리로 빌린 엔화나 유로화, 즉 엔 캐리 또는 유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으로 아이슬란드의 광산 사업이나 에너지 관련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돈벼락을 맞은 아이슬란드 경제는 지난 몇 년 간 역사상 유례 없는 고성장을 했다. 아이슬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에만 8%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2005년에도 5.5%나 성장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 자금의 급격한 유입은 '양날의 칼'이었다. 엔화, 유로화 등 외화가 국내로 대거 유입되면서 아이슬란드의 크로나화 가치는 급상승했다. 크로나화 가치는 2002년 이후 3년 사이에 약 50% 이상 절상됐다. 그 결과 주가가 2003~2005년에 4배로 급등하는 등 자산 가격도 급등했다. 또 크로나화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입품에 대한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커져 수입도 급증했다. 2005년 한 해에만 수입이 50% 증가함으로써 아이슬란드의 순대외채무와 경상적자는 지속불가능한 수준까지 누적됐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이 상승했고, 노동시장도 경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이슬란드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고 자산버블이 붕괴할 가능성도 높아지자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해 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2004년 중반부터 지난 3월 30일까지 무려 14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고, 그 결과 아이슬란드의 현재 기준금리는 무려 11.5%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고금리를 노린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크로나화의 가치가 추가로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됐다.

***위기의 원인은?…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이탈**

결국 아이슬란드 경제는 2006년 들어 '위기의 신호'를 내기 시작했다. 2006년 현재 아이슬란드의 경상적자는 GDP 대비 16.7%다. 순대외채무는 GDP 대비 160%로, 이 중 상당량의 만기가 바로 내년이다.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자랑하던 크로네화 가치도 급락하기 시작해 2006년에만 유로화에 대해 13%, 달러화에 대해서는 12% 하락했고, 주식과 채권 등의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크로네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겨났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4.5%나 상승했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올해 연간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5%였는데, 실제 인플레이션이 벌써 이 목표치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런 위기가 닥친 근본적인 원인은 국제적으로 '돈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인상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도 이런 금리인상 행진에 동참했고, 일본마저 지난 5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금리를 인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 선진국의 채권수익률 역시 상승하는 추세다. 따라서 아이슬란드가 제공했던 고금리·고수익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고, 아이슬란드의 경제마저 적신호를 보내기 시작하자 엔·유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국제 투자은행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아이슬란드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치를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한 것은 핫머니의 대거 탈출을 촉발했다. 미국계 국제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도 아이슬란드 은행부문의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덴마크의 '단스크 방크'도 "이번 금융위기로 앞으로 2년 동안 아이슬란드 경제가 5~10% 후퇴할 것이고, 크로네화 가치도 25%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현재 아이슬란드 당국은 이런 외부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프리드릭슨 부총재는 최근 "크로네화 가치의 폭락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왔고, 훨씬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거리"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이슬란드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외부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또 아이슬란드의 아스그림손 수상도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우리는 계속 성장해나갈 것"이라며 "일부 사람들은 우리 경제의 유연성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비효과'의 가능성은?**

현재 아이슬란드가 처한 어려움을 '외환위기'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이슬란드뿐 아니라 뉴질랜드, 터키 등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1997년에 아시아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던 것과 같은 경제적 불균형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에 소재한 컨설팅회사인 캐피탈이코노믹스의 줄리안 제솝 수석 국제경제학자는 "아이슬란드의 경제위기가 세계경제를 무너뜨리기엔 이 나라의 경제규모가 너무 작다"며 "하지만 아이슬란드와 뉴질랜드에서 화폐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가 무시해서는 안 될 경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슬란드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있다"며 "(아이슬란드의 경제규모가) 매우 작기는 하지만 (이 나라의 경제위기는 세계 경제위기의) 첫 번째 도미노가 넘어진 것과 같은 것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아이슬란드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2년 동안 뉴질랜드 달러의 가치는 미국 달러에 대해 10.7%나 하락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금리를 7.25%까지 인상했는데, 이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이에 대해 뉴질랜드의 마이클 쿨런 재정부 장관은 "뉴질랜드 달러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 중앙은행에 추가적인 금리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염려하기도 했다.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기타 국가들도 아이슬란드 및 뉴질랜드와 비슷한 상황이다. 외국인투자가 이 나라들로 대거 유입되면서 통화 가치가 절상됐고, 자산버블이 생겼으며, 경상적자가 누적됐다. 지난 2월에는 아이슬란드의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이들 나라의 화폐 가치가 일제히 하락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해 위기가 그 이상 확산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아이슬란드의 위기가 이 국가들로 확산된 이유는 이들 국가의 경제가 불안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나라들이 잠시나마 위기를 겪었던 것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아이슬란드에서 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이들 국가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빼나갔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에 투자한 자금에 대한 금리 소득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크로네 가치가 이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이들 국가를 하나로 묶어놓고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가 직접적인 경제관계가 없어도 상호 간에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이기에 가능한 '불똥 튀기' 방식이다.

***당장 한국에 영향 미치지는 않을 듯, 그러나…**

당장 아이슬란드의 외환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 펀더멘털이 양호하고 외환보유액이 풍부해서 외환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금융센터도 지난 10일 발표한 '아이슬란드, 외국인투자 이탈로 인한 외환위기와 전염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아직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외환보유액이 상당히 축적돼 있는데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등 국제자본의 대거 이탈 가능성이 높지 않아 외환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은 아직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핫머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전세계 경제들을 엮고 있다. 이른바 아이슬란드의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불똥을 튀기는 '나비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기는 힘든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아이슬란드의 불안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흥시장의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른 외환위기의 재연 및 전염 가능성 등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는 그 구체적인 방편으로 △국제금융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할 것 △국가홍보(IR) 체계를 강화해 언론 및 투자은행(IB) 등을 통해 위기 관련 소재가 왜곡·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것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 △경상수지 등 경제 펀더멘털을 건전하게 유지할 것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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