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원/달러 환율이 한때 940원대로 떨어졌다. 정부가 황급히 개입에 나서 다시 950원대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시장은 이제 환율이 950원 아래로 내려앉은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1.5원 오른 995.0원으로 시작했으나 국내외 투기세력들의 달러 매도 공세가 이어지면서 오전 장중 한때 948.5원으로 폭락했다. 외환당국이 황급히 달러 매수에 나서면서 환율이 다시 950원대로 반등했으나 결국 전날 종가보다 0.3원 하락한 953.2원에 장을 마쳤다.
이로써 원/달러 환율은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환율이 950원 이하로 떨어진 것은 8년6개월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환율이 1997년 말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1000원 아래로 떨어진 환율은 심리적 지지선을 990원, 980원, 970원, 960원, 950원으로 계속 낮춰가며 계단식 하락의 길을 걸어 왔다. 외환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연내에 환율이 920~930원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국외 환투기 세력 따라하는 국내 수출업자들**
이번 환율 하락에 불을 지핀 것은 최근 외국인들에게 다시 찾아온 '바이 코리아' 열풍이다. 최근 순항하고 있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표시된 주식을 달러로 매집하면서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의 양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지난 한 주일 동안 코스닥 시장에서만 외국인들은 1조 원이 훨씬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을 '폭락'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역외 환투기 세력이다. 역외에서 외국인들이 끊임없이 투기성 '달러 팔자'에 나서면서 국내로 대량의 달러가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의 일부 수출업체들까지 이런 역외 환투기에 가담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보유 중인 달러를 환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내다파는 것이 아니라 옵션, 타깃 선물환 등 다양한 파생상품 구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통해 환차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당국이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지 않겠다며 관망의 태도를 취한 것도 환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 이미 '중장기적'인 차원의 '외환시장 수급대책'을 내놓은 만큼 그 효과를 더 기다려보겠다는 것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일 환율이 950원 아래로 떨어진 것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특별한 개입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환율이 하락하는 속도를 조절하는 차원에서 소량의 달러를 매입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 부총리는 "(환율 대책은) 시행하더라도 서프라이즈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콜금리 동결로 환율 폭락은 면해…시장은 환율 추가하락 기정사실화**
일단 7일 이성태 신임 총재가 처음으로 주재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 목표를 4%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환율이 추가적으로 폭락하는 사태는 면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제 환율이 940원 이하, 930원 이하로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환율이 하락하는 근본 원인이 원화 가치의 상승에 있다기보다 달러화 가치의 하락이라는 국제적 요인에 있는 만큼 환율의 추가 하락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곧 정책금리 인상 릴레이를 멈출 것이라는 전망도 달러화의 추가적인 하락에 힘을 싣고 있다.
또 이런 전망에는 외환당국의 환율정책 방향이 환투기를 방지해 급격한 달러의 유입을 막는 쪽보다는 내국인의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를 폐지해 달러의 유출을 유도하는 쪽으로 굳어진 만큼 '더 이상 외환당국에 기대할 것은 없다'는 심리도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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