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인 농업을 방해하며, (자본주의 체제가 농업의 기술적 발전을 촉진하더라도) 합리적 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 합리적 농업은 자기 노동에 의존하는 소농민을 필요로 하거나 또는 제휴한 생산자들에 의한 통제를 필요로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3권 6장 2절)
100년도 전에 자본주의와 농업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분석했던 마르크스는 거대 자본이 전세계 농업을 장악하다시피 한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편집자들인 프레드 맥도프, 존 포스터, 프레드릭 버텔도 19세기 말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자본주의와 식량 생산의 관계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자본주의와 농업의 결합은 건전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이 펴낸 책 〈이윤에 굶주린 자들〉(윤병선, 박인선, 류수연 옮김, 울력 펴냄)에서는 농업, 환경, 사회,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 20여 명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기아가 팽배하는 수수께끼를 파헤친다.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세계의 식량 공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자본주의 농업의 패러독스'라고 주장한다.
이런 패러독스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다름 아닌 카길, 몬산토, 네슬레 등 '이윤에 굶주린' 미국계 초국적 식량기업들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농업 관련 산업은 제약산업 다음으로 이윤이 많이 남는 산업으로, 연간 판매만 40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이 몇 안 되는 거대 기업들이 전세계에서 어떤 식품을 생산할지, 어떤 방식으로 이 식품을 처리하고 배분할지, 또 이를 어떤 곳에서 어떻게 판매할지 등 모든 것에 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
게다가 이 기업들의 지원에 힘입어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엄청나게 발달하면서 더욱 더 많은 소농들이 우리의 건강, 우리의 삶의 질, 나아가 지구환경에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한, 그들 방식의 테크놀로지를 쓰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무역기구들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보호주의의 고향은 다름아닌 미국**
미국 코넬대학의 필립 맥마이클 교수(농업사회학)은 '세계의 식량정치'에서 식량과 정치를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정책과 연계한다. 그에 따르면 이 기구들은 일찍이 보호무역을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했던 미국이 다른 약소국가들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장치들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듯이 오늘날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두르며 자유무역의 장점을 부르짖는 미국은 사실 보호주의 무역의 본산이다. 미국은 지금도 보이지 않은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이런 보호주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대공황이 발발했던 당시 농산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해 자국의 식량 생산자들이 더 싼 가격의 외국 농산품으로 피해를 보지 않게 보호했다. 또 이들에게 농업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농산품의 수출을 장려했다. 이런 보호주의는 카길, 몬산토, 컨티넨탈과 같은 초국적 식품 기업들을 낳았다.
그 뒤 이런 미국식 농업 비즈니스 발전 전략은 '마샬플랜'과 '녹색혁명'을 통해 유럽과 몇몇 개발도상국에 전파됐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앞세워 다른 나라들이 '미국산 보호주의'를 채택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1997년 WTO가 성장촉진 호르몬이 투여된 몬산토의 가축에 대한 수입을 거부한 유럽연합(EU)에 협정위반 판정을 내린 것도 그 한 예다.
***우리가 먹는 콩 중 절반이 유전자조작 식품**
한편 여러 명의 다른 저자들은 바이오테크놀로지, 생물해적질, 게놈 프로젝트, 그리고 악명 높은 '터미네이터 유전자'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중 유전자조작(GMO) 식품은 이미 현대농업의 중심부에,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전세계 콩 생산량의 2분의 1, 옥수수 생산량의 3분의 1이 바로 이 GMO다.
이들은 바이오테크놀로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이 테크놀로지를 손아귀에 쥐고 단기간에 이윤을 짜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파괴 등은 철저히 '외부효과'로 간주된다.
예전에 녹색혁명으로 기아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큰소리쳤던 바로 그 기업들이 이제는 이 녹색혁명으로 생긴 환경파괴 문제를 바이오테크놀로지로 풀어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테크놀로지로 생길 폐해는 또 무엇으로 풀 것인가? 그리고 그 비용은 도대체 누가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영양실조는 불공정 문제, 기아는 불평등 문제"**
또 눈에 띄는 에세이는 미국 헌터 대학의 재닛 포펜딕 교수(사회학)의 '부족과 과잉: 기아에서 불평등까지'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자선 사업으로 기아와 영양실조를 줄여보겠다는 '선의'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정부가 국가 차원의 기아대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막을 여지가 있고, 더 나아가 '기아'라는 식량 문제가 근본적으로는 '불공정'과 '불공평'이라는 계급문제에 귀속된다는 사실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는 담론의 주제도 영양실조 문제에서 불공정으로, 굶주림의 문제에서 불평등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은 농업 비즈니스의 역사나 마오주의자들의 토지개혁에 대한 분석 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와 내가 염려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먹거리가 '이윤에 굶주린' 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뭔가 석연치 않은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식량 체계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쩌다 이 꼴이 났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포괄적인 밑그림을 제시해줄 것이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은 2000년 '먼슬리 리뷰 출판사'에서 발간한 〈Hungry for Profit: The Agribusiness Threat to Farmers, Food, and the Environment〉를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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