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시카와 마스미(石川真澄)의 〈일본 전후 정치사〉(박정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가 출간됐다. 이시카와는 1961년부터 1996년까지 〈아사히신문〉 기자로 재직한 일본 정치사의 산 증인이다. 이 책은 패전 직후 일본에서 천황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부터 최근 일본 정치의 보수화까지 일본 정치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이 책 출간에 맞춰 성공회대 권혁태 교수(일본학과)가 서평과 함께 국내에 생소한 이시카와에 대한 꼼꼼한 소개를 〈프레시안〉에 기고해 왔다. 권 교수는 "나도 과거에 이 책(일본어판)을 통해 일본 정치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를 갖게 됐다"면서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일본 정치에 대한 '거시적 현미경'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거시적 현미경'으로 일본 정치사를 본다**
한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지배적 골격과 원리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변하기 전의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였던 기본 골격과 원리를 확정하고 골격과 원리를 지탱했던 조건들이 어떤 이유에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과학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일본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를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니, 혹은 우경화, 보통국가화, 친미 동맹 체제의 강화와 같은 여러 가지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시대를 움직였던 지배적 원리가 소명을 다하고, 다른 지배적 원리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여곡절, 모색이 전체적으로 보면,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에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를 초역사적인 '국민성론'이나 '문화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가 된다. 물론 이 변화란 전 시대가 가졌던 유산이 어느 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전 시대의 조건이 다음 시대의 방향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경로 의존적이고 역사 구속적이다.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변화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변화의 전제가 되어 있는 기존의 시대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혹자는 자민당과 사회당의 보혁체제가 만들어지는 시점에 주목해서 '55년 체제'라고도 하고, 혹자는 전시기에 만들어진 국가개입/국가주도라는 사회경제적 골격이 정상적인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입장에 서서 '1940년 체제'라고도 하며, 혹은 전쟁 경험이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내재적 갈망을 제도화하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는 입장에 서서 '전후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나는 일찍이 전후 일본 사회를 '경무장 평화주의'라는 말로 정리했으며, 최근의 변화를 '중무장 국가주의'로의 전환기라 규정한 바 있다. 어찌 되었든 이 같은 규정들은 모두 일본의 전후 사회가 전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지배적 원리나 골격에 의해 지탱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들은 일본 전후 사회의 골격에 대한 단면도일 뿐, 골격을 구성하고 이를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던 내부 메커니즘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용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시카와 마스미의 〈일본 전후 정치사〉는 전후 일본 사회의 내부 메커니즘을 구체적인 사실과 검증을 통해 잘 보여주는 일종의 '거시적 현미경'이다. 이 책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지배했던 정치 구조가 현미경 같은 사실과 함께 거시적 안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생활보수주의', '토건국가' 처음 쓴 이시카와**
이 책은 1984년의 〈데이터 전후정치사〉를 보강한 〈전후정치사〉(1995년)에 다시 홋카이도 대학교의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郎) 교수가 1995~2004년 부분을 더해 재출간한 책이다. 따라서 최근의 정치 정세까지도 포괄한 본격적인 전후정치사 개설서인 셈이다. 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옮긴이인 박정진 씨가 쓴 역자 서문에 잘 설명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주로 지은이인 이시카와 마스미에 대해 소개하기로 한다.
이시카와는 언론인으로서는 드물게 규슈공업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 뒤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을 거쳐 니이가타(新潟)국제정보대학과 오비린(桜美林)대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 2004년에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저서로는 이 밖에도 〈전후정치구조사〉, 〈일본의 정치의 지금〉, 〈어느 사회주의자〉, 〈인물 전후 정치〉, 〈추락하는 정치〉 등이 있다.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얻은 현장 감각과 알기 쉬운 글쓰기와 아울러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조어 능력, 그리고 꼼꼼한 통계수치다.
그가 만들어낸 조어들은 적지 않다. 일본 사회의 내부 특징을 분석할 때, 일반 명사로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이후의 경제 호황기에 사회 전체가 경제적 가치의 확대를 추구해나가는 상황 속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 없이 오직 자신의 풍요로운 생활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이시카와는 '생활보수주의'라고 불렀고 이 용어를 통해 1980년대 이후의 자민당 집권의 정치적 기반을 설명했다.
또 만성적인 재정적자의 주범이기도 한 공공사업이 자민당 득표기반의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자민당 장기집권의 메커니즘을 파헤칠 때 '토건(土建)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바로 그다. 전후 민주주의의 제도적 골간인 보혁체제를 '1과 1/2'(자민당과 사회당의 의석비율) 체제라고 설명한 것도 또한 그다.
이와 같은 이시카와의 '조어능력'은 물론 단순히 탁월한 감성과 언어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인은 현장 취재의 격무에 시달려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우를 범하기 쉬운데, 이시카와는 취재 현장에 쌓은 미시적 경험을 넓은 시야에서 재구성해서 이를 거시적 용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꼼꼼한 통계수치 덕택이다. 이 책에도 1946년부터 2004년까지의 선거결과가 의석수, 득표율이 꼼꼼한 수치로 망라돼 있다.
이 같은 수치 감각은 그가 기자 중에서는 아주 드문 이과 출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객관화된 수치를 중시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연일 계속되는 시위 속에서 일본의 연간 소득을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소득배증계획'을 추진하던 당시 수상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에게 이시카와는 '소득이 늘어나도 물가와 세금이 오르니,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자, 이케다는 공제율과 물가상승율 등을 계산해서 수치를 들이대며 이시카와의 견해를 반박했다고 한다. 이에 대답할 말을 잃은 그는 그 후 객관화된 수치를 중시하게 되었다고 후배기자는 증언한다(〈아사히신문〉 2004년 9월 21일).
***일본의 민주주의 지키기에 앞장 선 양심적 지식인**
또한 그는 철저한 전후 민주주의자였다. 전후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제도들이 1990년대 이후 하나하나 부정되어 나가는 우경화 바람 속에서 그는 이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엽에 카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내각이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할 때, 그는 사회여론과는 달리 외롭게 소선거구제 도입을 반대했다. 그는 소선거구제 도입이 정권 교체를 원활하게 해줄 것이라는 일반적인 분석과 달리, 결과적으로 거대여당을 출연시키고 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당시 소선거구제 도입이 여론의 대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용기 있는 주장이었던 셈인데, 그의 이런 주장은 결국 2005년 선거에서 입증되었다. 자민당이 민주당보다 1.3배 정도 많은 득표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보다 4배나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1999년에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제도화를 담은 국기국가법안이 제정될 때, 법안 공청회에서 식민지였던 한국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한다. 그는 또한 '납치' 정국 속에서 '북한 때리기'가 횡행하던 시기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의 국교수립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가장 긴요한 과제라는 판단 하에 '일조국교촉진국민협회'의 이사직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2000년에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제도가 천황을 정점으로 한 국가적 성노예 제도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천황에 유죄판결이 내려지는데, 대다수의 일본 언론이 침묵하는 가운데서도 이 민간재판에 주도적 역할을 한 바우넷 저팬(VAWW-net Japan, Violence against women in War-Network Japan)이라는 시민단체에 자신이 대표로 있던 일본 저널리스트 회의가 특별상을 수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는 언론인이면서도 주류 언론이나 여론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이를 현실에 입각해서 정교한 분석과 용어로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었던 전후 민주주의가 이미 용도 폐기된 '고물' 취급을 받고 있는 현재의 일본을 그가 만일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데이터 전후 정치사〉(1984년)라는 그의 책을 통해 일본 정치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를 갖게 된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그의 책이 한국 사회에서 일본 정치에 대한 '거시적 현미경' 같은 역할을 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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