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원장 최흥식)이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결정과정이 불투명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거듭 발생하면서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된다.
금융연구원은 은행권에서 설립한 연구소로서는 이례적으로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행태를 비판한 뒤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재정경제부보다 상위의 금융정책 관련 행정조직을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은 19일 '주간 금융브리프'에 게재한 이동걸 선임연구위원의 보고서 '금융정책의 투명성 및 신뢰성 제고'를 통해 재정경제부가 방카슈랑스 시행일정 재조정안, 금융-산업 간 분리 원칙과 관련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24조의 개정안, 자본시장통합법안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논의가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금산법 개정안과 자본시장통합법안, 특정 기업집단 대변"**
이동걸 위원은 "방카슈랑스 시행일정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보험소비자의 편익 증진이나 보험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본래 취지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며 "끼워팔기 식으로 보험모집인에게 수익증권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피해 발생 등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또 금산법 24조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정경제부가 많은 논리적 허점과 절차상의 부적절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특정 기업집단의 이해를 강변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금산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재정경제부는 정부 부처 간의 적법한 협의 절차와 공개적인 논의를 기피하는 한편 특정 기업집단을 변호하는 법무법인의 법률의견만을 객관적인 견해로 포장하는 정책추진 태도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재정경제부의 중립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행정절차상 부적절한 행위를 한 관련 공무원에 대한 책임추궁도 유야무야로 끝남에 따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재발할 위험이 커졌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또 "최근 재정경제부가 일부 공개한 자본시장통합법안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그 내용이나 추진과정이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스스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장담한 이 법안이 특정 기업의 입김이 과도하게 지배하는 특정 업종만의 이익이 배타적으로 고려된 상태에서 졸속 추진되고 있는 점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재정경제부는 자본시장통합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융관련 유관부처마저 배제한 것으로 알려져 정책당국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정책으로 인한 금융시장에서의 부작용을 통제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 관련부처가 정책준비 과정에서 배제되면서 과거 카드사태의 재현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재정경제부의 자평대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 그 방향에 따라서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해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십수 년 후퇴할 수도 있다"며 "일례를 들면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업무와 자산운용업 겸업 허용은 긍정적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큰 위험한 조치로서 세심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밀실정치 연상케 하고, 참여정부 전체 신뢰도 저해"**
이어 이 위원은 "과거 밀실정치 시대를 연상케 하는 이런 정책추진 행태가 반복되면서 재정경제부가 공평무사한 중립적 금융정책 당국으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재정경제부의 불투명한 정책 추진은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이라는 참여정부의 국정추진 원리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이는 비단 재정경제부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라 참여정부 전체에 대한 신뢰마저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재정경제부의 폐쇄적ㆍ편파적 정책추진 행태를 개선해 금융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경제부보다 상위의 행정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학자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또는 총리 직속의 금융개혁위원회 또는 금융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