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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자본의 횡포 앞에 홀로 선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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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자본의 횡포 앞에 홀로 선 자, 누구인가"

[긴급기고] 도올의 새만금 1인 시위 소식을 듣고

***특별한, 아주 특별한 새만금**

서해의 중턱을 막아서고 거의 마지막 남은 하구해안을 없애게 되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조금은 독특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나 일본의 경우에 이런 토목사업을 막아서는 것은 보통은 지역 주민이고 중앙 정부가 강행을 하는 구도인데, 새만금은 지역 주민인 전라북도에서 이 사업을 원하고 중앙 정부는 약간은 한 발 물러선 듯이 조망하는 분위기다.

물론 사업 주체인 농림부는 아직도 농지로만 활용을 하겠다고 하면서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소위 '공유수면'에 대한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해양수산부의 실무자 생각들은 조금 다르고 환경부 실무자들의 생각도 좀 다른 것 같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이 약간 묘한 차이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구조와 만나고, 동서로 구분되는 특이한 우리나라의 정서와 만나면서 강하게 중폭되었다.

농업과 지역감정, 그리고 경제주의가 엇갈리는 21세기에 새만금 간척사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매우 독특하고 어려운 질문이다.

***토건자본 앞에 홀로 서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애초에는 산업자본의 힘이 가장 좋던 군사정권 시기에 기획된 사업이다. 그래서 공업 단지를 염두에 두고 시작되었다. 이 공업 단지가 다시 농지로 목표가 전환되는 과정에는 '기업농'의 꿈을 농림부가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생태적인 의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막 생겨나던 1990년대의 일이다.

그래서 이 간척사업의 매립허가는 농지로 허가가 나왔고,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모든 절차가 농업, 그것도 어느 정도는 기업화된 규모농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생태의식은 다시 박정희 개발시대로 후퇴하였다. 농지든 골프장이든 아니면 뭐라도 좋으니까 어쨌든 매립만 하면 전라북도의 새로운 발전이 생긴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생겨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어쨌든 무조건 승자는 토건자본이다. 산업단지가 되든 농지가 되든 혹은 골프장이 되거나 심지어 다시 현재의 공사를 원상회복한다고 해도 토건자본은 이 사업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6일) 국민소득의 20%를 차지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실제 사업비 50%를 차지하고 실제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이 토목자본의 트럭과 불도저 앞에 이제는 노인이 된 한 철학자가 드러눕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박정희 시절부터 노무현 시대까지를 거치며 쌓여 올린 역사적 모순 앞에 한 철학자가 홀로 서겠다고 한다.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한다.

***법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오, 철학이여!**

경제학적으로는 새만금 사업이 전북 경제의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서는 좀 계산하기 어렵다. 토목공사의 지역별 효과와 실제 지역 여건상 농지 외에 어떠한 대안을 가질 것인가에 따라서 좀 다르기는 한데, 일단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물막이 공사가 끝나더라도 10여 년의 시간 동안 토목공사 외에 이 지역에서 벌어질 사업은 없다. 토목공사가 전북을 그 기간 동안에 뒷받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 대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이 사업의 경제성은 앞으로 추가적으로 투입돼야 할 현재 수준의 몇 배를 뛰어넘을 예산과 비교해 평가해야 마땅하다. 이미 투입된 비용은 국민경제 내에서 사실상 흡수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예산이 아깝다는 얘기는 본전만 찾고 떠나겠다고 계속 카지노에 매달려 있는 도박꾼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인 진단은 새만금 논의에서 서 있을 자리가 없다. 이미 새만금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을 지나면서 이미 법의 잣대도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믿으면 그것이 법적 진실이 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토목자본이 만든 지역발전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행정법과 계산의 범주를 지나서 그야말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휴경 농지에 대해서 직불제를 지불하면서 그래도 농지가 필요하다는 모순된 논리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이 마당에 진실은 오간 곳 없고 토건자본의 이데올로기와 무책임과 방관 그리고 학자들의 외면 밖에는 이제 남은 것이 없다. 이 상황에서 홀로 일어선 한 철학자를 보면서 철학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철학자, 오, 철학자!

나는 도올 김용옥이라는 한 철학자가 이 나라의 큰 스승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철학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고,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평생을 바친 철학적 사색의 결과가 새만금 간척공사장에서 1인 시위의 형식이라고 할 때 나는 철학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헤겔이 철학을 학(學), 즉 'Science'라고 불렀던가?

이데올로기와 가려진 진실, 그리고 은폐된 모순을 통찰하는 것이 도올의 사색의 힘이고 그 사색의 결과가 이제 사망을 한 달여 앞둔 새만금 앞에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힘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둠이 짙어야 빛이 생기나니…**

중후장대 산업을 이끌어낸 박정희의 대한민국은 이제 완전히 토목자본의 자기증식 논리에서 도시와 공간의 착취구조로 완성되었고 이 속에서 서해의 적조현상이나 서해의 불안한 생태계 균형은 TV 속의 동물의 왕국으로 완전히 대치됐다. 상징만이 남은 거대한 공화국은 아파트에서 골프장까지 이르는 온갖 토목공사와 건설공사로 그 본질을 전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건설 지출액이 국민소득의 13%를 넘는 나라는 이제 대한민국밖에 없다.

토목건설이 아닌 지역발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지배구조에서는 불가능해 보이고, 누구도 이런 지표와 이런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을 때, 도올이 새만금으로 몸을 이끈 것이다. 그의 눈에는 바닷가에서 애처롭게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갯벌이 보이겠지만, 나의 눈에는 이 시대의 모순, 점층된 모순과 시대의 어둠을 온통 지고 서 있을 한 늙은 철학자의 얄팍한 어깨가 보인다. 어둠이 짙어 사람들이 신음할 때 홀로 일어선 사람!

나는 살아서 소금행진을 끝내고 던디 해변에 당도한 간디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으나 시대를 짊어지고 새만금에 서 있는 도올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한 달, 이 땅의 철학과 생명의 소용돌이, 그 태초의 힘이 토건자본과 마지막 힘겨루기를 한다.

이제 새만금으로 떠나는 한 철학자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국운이 아직은 다하지는 않았다는 걸 느낀다. 정말, 정말로, 아직은 한반도의 땅의 기운이 토건자본에 밀려 마지막 명운을 떨어뜨릴 정도로 쇠하지는 않았나보다.

21세기, 진정한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이제 도올과 함께 열리는 셈이다. 학문과 법과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 투사의 세기가 모두 토건자본 앞에 어깨를 떨군 이 시기, 바로 이 어둠의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생명의 시대를 도올, 한 철학자인 그가 문을 열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길에 나의 작은 발걸음 하나를 보태고 싶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나뭇잎 위를 걸어도, 물길을 걸어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자여, 그대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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