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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없는 한국 축구, 수수께끼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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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없는 한국 축구, 수수께끼를 던졌다

[프레시안 스포츠] 월드컵에서 완벽한 전술은 없어

그리스는 유로 2004 우승으로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꾼 팀이다. 당시 그리스의 역습축구는 매우 실용적이었다. 공을 오래 소유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 모든 힘을 역습 시에 쏟을 수 있어서다.

그리스의 세찬 역습은 탄탄한 수비에서 시작됐다. 그리스의 수비는 3명이 지켰다. 4명의 수비가 만드는 지역방어인 '포백 시스템'에 익숙해 있던 대부분의 유럽 축구 강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스 수비가 너무 생소해서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삼촌이 고등학생 조카가 물어본 수학문제를 푸는 격이었다.

다른 팀들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그리스의 개인방어 전술인 '스리백'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잊어버렸다.

그리스의 상대 팀들은 답답했다. 가까스로 돌파구를 찾았을 때는 늘 시간이 없었다. 당시 8강에서 만났던 프랑스의 앙리는 중앙 공간이 막히자 측면을 돌아다니며 허송세월했다. 그리스가 사용한 복고풍의 '스리백' 전술은 이렇게 혁신적 전술로 탈바꿈했다.

축구 전술의 변천과 시대적 상황과의 연관관계를 추적한 <인버팅 피라미드>로 호평을 받았던 영국 기자 조너선 윌슨의 그리스 축구에 대한 촌평이다.

▲ 12일(한국시간)오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경기에서 박지성(대한민국)이 빈트라와 토로시디스(그리스)의 수비를 피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뉴시스

12일 그리스는 6년 전 유로 2004에서 상대 팀들이 겪었던 그런 생소함과 답답함을 한국에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경기가 풀리지 않았으면 레하겔 감독이 "우리 선수들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고 했을까. 그는 패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선수들은 빠르고 공이 있는 곳이라면 계속 달려갔다. 우리는 그걸 막지 못했다."

71세로 남아공 월드컵 최고령 감독인 그의 분석은 단순하지만 정확했다. 레하겔과 그리스 선수들의 눈에 한국 축구는 '쉼표'가 없는 축구였다. 가뜩이나 주력이 떨어져 한국을 상대하기 힘든데, 상대가 좀처럼 저속기어를 쓰지 않으니 문자 그대로 이중고를 겪었을 것이다.

한국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축구를 그리스 선수들이 평소에 얼마나 경험해 보았겠나. 후반 7분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는 기민한 움직임으로 돌진하는 박지성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때늦은 태클뿐이었다.

장신 선수가 즐비한 그리스는 예상대로 느렸다. 꺽다리를 내세워 그들이 장기로 삼던 '세트피스'상황에서 되레 한국에 실점까지 했다. 여기에다 그들은 공에 대한 투쟁심도 없었다.

월드컵은 32명의 개성파 배우들이 만드는 드라마다. 그래서 월드컵에서는 완벽한 전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 팀 스타일이 잘 안 통하는 팀을 만나면 일단 경기가 꼬이게 마련이다. 최강팀도 대회 중 적어도 한두 번 이런 위기를 맞이한다. 이를 극복하는 열쇠는 오직 기술, 체력, 감독의 임기응변 그리고 행운이다. 하지만 이 열쇠도 '열정'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스의 비극은 생소한 한국 축구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다. '미라클 맨' 레하겔도 집중력을 잃고 겅중겅중 뛰는 그리스의 무기력증을 치유하지 못했다.

12일 그리스 여신은 게으른 그리스 축구를 버렸다. 대신 부지런한 한국 축구에 윙크를 날렸다.

하지만 여기서 쉼표를 찍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겨우 한 경기를 했을 뿐이다. 그리스 여신은 아직 한국에 미소를 보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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