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12일 밤 9시 10분부터 1시간 20분간 전날 열린 남아공과 멕시코의 개막전을 녹화로 중계 방송했다. 또 13일 오후 3시11분과 오후 9시9분부터 각각 전날 치러진 우루과이-프랑스전,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전 경기를 편집해 방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중계권이 없는 북한으로서 개막전 녹화 중계는 해적방송인 셈이다. 따라서 <조선중앙TV>는 이를 의식한 듯 중계방송의 출처를 알아볼 수 없게 하는 전략을 택했다. 방송국 마크를 지우고 위아래 화면을 잘라내 16:9 이상의 비율로 방송한 것.
▲ 북한이 지난 11일(한국시간) 있었던 남아공대 멕시코 개막전을 다음 날인 12일 밤 녹화로 중계했다. ⓒ연합뉴스 |
<조선중앙TV>는 또 원래 방송의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거기에 북한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의 육성을 입혀 어느 나라의 방송을 녹화한 것인지 알 수 없게 했다.
"北 인민들도 월드컵 보고 싶어 하는데 SBS가 안 놓아주니…"
한반도 전역의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으로 갖고 있는 <SBS>는 북한의 이번 중계방송이 불법이라는 입장이지만 관련 대응에는 나서지 않을 방침이다.
<SBS> 홍보실 관계자는 "월드컵 중계 문제와 관련한 남북간 협의는 수개월 간 끊겨있었다"며 "(북한의 이번 무단 방송은)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와 <SBS> 사이에 전혀 논의된 바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어떤 위성을 잡아서 방송을 내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소스를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할 필요도 없다"며 "우리는 합법적인 콘텐츠에 한해서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번 건은 피파가 관여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SBS>가 760억 원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남아공 월드컵 단독중계권에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지역에 대한 권리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측은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SBS>측을 만나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맞자 협상은 전면 중단됐다. 또한 정부가 대북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방송 전파도 대북 반출 승인대상'이라는 원칙과 함께 '월드컵 무상 제공은 사실상 불가'라는 방침을 내세워 협상 가능성은 점점 옅어져 갔고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으로서는 중계가 절실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빚어졌던 '해적방송' 논란을 무릅쓰고 계속 같은 방법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현장에서 만난 북한 취재기자들은 "인민들은 월드컵을 보고 싶어한다"면서 "하지만 월드컵 중계권을 가진 SBS가 안 놓아주는데 어쩌겠느냐"고 남한 기자들에게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北, 12일 경기 중 한국전만 빼고 방송 예정
북한의 '해적 방송'은 이러한 아쉬움과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3일 녹화 중계 예정인 12일 경기에서 유독 한국이 승리한 그리스전만 방송 예정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 2002년, 2006년 월드컵 때에는 북한이 남측 경기를 일부 중계했기 때문에 북한이 추후 치러질 남한전도 아예 배제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SBS>와의 협상 결렬에 대한 실망감과 정부 당국간 경색 국면을 고려할 때 남은 경기도 방송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북한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이번처럼 무단으로 월드컵 경기를 방송했지만 남한 대표팀 경기를 여러 편 중계했고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때는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 가운데 준결승에 오른 것은 남조선이 처음"이라는 해설을 곁들이기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아시아방송연맹(ABU)으로부터 무상으로 중계권을 받아 경기를 주민들 안방에 전달했으며, 무상 중계에서 남한 정부의 협조를 얻은 만큼 관련 합의에 따라 한국-토고전을 내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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