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금산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한 적합한 제재 방법을 마련하자는 본래의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금융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금산법을 위반한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의 초과보유 지분에 대해 의결권만 제한하자는 내용의 금산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열린우리당 우제창 의원이 발의한 이 안이 앞으로 재경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 확정되면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 초과분인 20.64%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또 삼성카드는 5년 내에 자발적으로 이 초과지분을 해소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위원장의 처분명령을 받게 된다.
한편 삼성생명은 공정거래법 11조의 적용을 받아 2년 후인 2008년부터 삼성전자 지분 7.2% 중 5% 초과분인 2.2%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여당은 소급입법 논란을 피한다는 차원에서 금산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을 적용했으며, 어떤 법을 적용하든 그 효과는 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내용의 수정안은 삼성카드가 1997년 금산법 제정 이전에 취득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5% 초과분에 대해서는 강제로 매각하게 하고, 삼성생명이 법 제정 이후에 사들인 삼성전자 지분 5% 초과분에 대해서는 즉시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여당의 '권고적 당론'에서 한 발 후퇴한 것이다. 게다가 이 여당안도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초과지분을 강제 매각시켜 금산법 개정안의 본래 취지를 살리자는 박영선 의원의 초안에 비하면 후퇴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5% 초과분에 대해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적용해도 당장 강제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도 5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초과지분에 대해 금산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면 삼성그룹이 차후 계열사 지분의 조정이나 공정거래법의 개정 등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97년 도입된 금산법 24조는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 이런 금산법 규정을 어겨도 제재할 방법이 없자 2004년 말부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주축이 돼 시정명령권과 벌칙조항 등을 담은 금산법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해왔다. 한편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를 목적으로 하는 금산법과 별도로 재벌이 금융계열사의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의결권'만 제한하고 있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재경위 전체회의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되면 삼성은 그동안 시민사회 등의 비판대상이었던 소유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 등 다른 대기업들은 금산법에 따라 금융계열사에 대한 5% 초과 지분을 해소했는데 삼성그룹에만 특혜를 준다는 '삼성 봐주기'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개정안이 앞으로 재경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거치면서 추가적으로 후퇴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날 소위에 참석했던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5년 간 유예기간을 준다고 해도 결국 강제처분인 셈이며 이는 의결권 제한을 취지로 하는 금산법에 비춰볼 때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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