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환율 급락 등 대외 경영여건 악화를 이유로 최근 협력업체들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한 데 이어 이번에는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임금 동결을 선언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22일 현대차그룹은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과장급 이상 임직원 1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상경영 결의대회'를 열고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고, 현대차 노동조합에 협조를 요청해 대리급 이하 직원들의 임금도 동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현대차는 다음달 17일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 김동진 부회장 등 이사 7명의 보수한도를 작년의 70억 원보다 42.8% 많은 100억 원으로 늘리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증시에 공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 경영진이 대외 경영여건 악화를 명분으로 협력업체들과 임직원들에게는 고통분담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보수는 늘리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한 진짜 이유는 대외 경영여건의 악화가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외 경영여건 악화'**
현대차는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임금 동결을 선언한 것은 최근의 원/달러 환율 하락, 유가 상승, 원자재가 인상 등 악재들이 일시적인 현상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으로 계속되리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현대·기아차는 전체 매출 중 전체 판매에서 해외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76%, 전체 부품 중 국산 부품의 비중이 97%에 달해 환차손으로 인한 매출 손실이 막대하다"며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미국시장에서 매출이 감소하고 영업이익률도 3년 연속 하락한 데다 엔화 약세로 일본차 업체들과의 경쟁력도 약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각각 0.3%, 30% 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현대차가 얼마나 장사를 잘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순이익은 사상 최초로 2조 원을 돌파했다. 또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도 재벌 총수들 중 가장 높은 배당소득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수출 비중이 큰 삼성전자의 경우 내부적으로 "환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유럽 기업, 일본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만 환율 타령을 해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임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시키며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유독 현대차만 연일 '비상'을 외쳐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납품단가 인하 조사하겠다는 공정위에도 메시지**
일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중 '현대차의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하 요구' 논란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현대차가 과장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 동결을 선언한 것은 공정위를 향해 '회사 사정이 정말로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현대차 본사의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도 임금을 동결할 만큼 대외 경영여건이 좋지 않은데 하도급업체들도 자진해서 납품단가를 인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협력업체들의 납품단가 인하를 관철하려는 속셈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과장급 이상 임금 동결' 카드는 임금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12대 현대차 노조 집행부에 '과장급 이상 직원들도 자진해서 임금을 동결했는데 노조도 양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가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과장급 이상의 임금 동결 선언은 올해의 임금협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에서는 현대차가 충청남도 당진에 건설할 예정인 일관제철소 건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허리띠 졸라매기' 전략을 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현대차의 계열사인 현대INI스틸은 일관제철소 건설에 소요되는 약 5조 원의 비용을 내부자금으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현대차는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임금 동결 선언을 통해 외부적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방침에 대응함과 동시에 협력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내부적으로는 노조와의 임금협상을 사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동시에 일관제철소의 건설 재원도 마련하는 '1석4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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