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실제론 포유류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지. 이 행성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주위 환경에 자연적인 평형을 이루면서 산다. 그러나 너희 인간들은 그렇지 않아. 너희는 땅을 찾아 이동하지, 자연자원을 소비하면서 증식하고 또 증식하지. 너희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방법뿐이다. 이 행성에서 너희와 동일한 형태로 살아가는 다른 유기체가 있다면 그건 바이러스다. 인간은 이 행성의 질병이며 암세포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스미스 요원의 대사)
인간의 상상력은 끝없이 진화한다. 그런데 진화하는 상상력은 한 곳을 향해서만 질주한다.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환자의 체세포 핵을 밀어 넣어 만든 억지 수정란을 배아로 키운 다음 이 배아를 죽이면 줄기세포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젖소의 유전자를 조작해 보통 젖소보다 1.5배 더 많은 우유를 얻거나, 장미의 유전자를 조작해 파란색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갯벌을 개척해 더 넓은 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모두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꿔보려는 상상력들이며, 이것들 중 자본의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삶에서 현실로 구체화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 "인간은 지구의 암세포"라고 말한 것은 뼈아프도록 옳은 지적이다.
'증식' 일변도의 상상력과 반대되는 상상력은 국익에 반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돼 세간의 몰매를 맞거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철없는 생각으로 무시당한다. 이런 현실에서 그동안 꾸준히 과학기술과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태적 삶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제시해 온 박병상 인천도시행태환경연구소장(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이 그동안 써 온 글들을 모아 〈녹색의 상상력〉(달팽이, 2006)이란 책을 냈다.
〈녹색의 상상력〉에는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복제줄기세포 연구,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 유전자조작(GMO) 농산품과 식품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과학적·환경적·사회적·경제적으로 논란이 돼 온 사안들을 '녹색 렌즈'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고 이를 창의적이고도 합리적인 '녹색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가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이공계와 인문계의 벽을 허물자**
박병상은 시민들이 과학에서 소외받는 현상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대응과제 중 하나로 지적한다. 그는 〈녹색의 상상력〉에서 "복잡한 수식과 용어로 소통되는 과학기술의 내용을 실제 소비자인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 과학기술 뒤에 이윤을 찾는 기업과 패권을 노리는 국가가 자리하면서 언어가 암호화되고 연구결과는 특허로 보호돼 일반인의 접근은 봉쇄된다. (…) 기업은 현란한 광고를 통해 개발한 상품의 소비를 유인하려 들고, 국가는 연구 결과를 기밀에 붙이지만, 혜택이 자본과 국가에 최우선으로 돌아가는 대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다가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공계와 인문계를 분리해 이 둘 간의 벽을 쌓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에 박병상은 '과학기술사회(STS)'를 제안하는 자칭 '과학기술사회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의 말을 빌면 과학기술사회란 '과학기술'에 '사회'를 덧붙인 것으로,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 오늘이 아니라 내일, 사회적 약자와 생태계의 안위들을 두루 살피는 과학기술 정책을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민주적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황우석은 불치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자는 건가?**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난치병과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동시에 배아줄기세포가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이라고 외쳤다.
이런 그의 말 속에는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의 치료비를 거액으로 설정해 국가 차원에서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박병상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엄밀하게 과학적 측면에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윤리는 과학기술의 발목이나 잡는 훼방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기반이며 정언 명령이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일수록 더욱 단단한 윤리기반 위에서 엄격히 다루어져야 옳다. 생명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황우석의 광풍이 아직도 이 땅을 할퀴고 있는 현실에서 '근본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각오로' 정직한 녹색 상상력을 시민들과 나누고자 하는 박병상. 그의 〈녹색의 상상력〉에 기대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번짓수 쯤 가고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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