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여건 악화를 이유로 협력업체들에 납품단가의 인하를 요구한 현대차그룹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차그룹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1차 협력업체들에 부품 납품단가의 인하를 요구함에 따라 협력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환율의 하락, 고유가의 지속 등 경영여건의 악화로 고통받는 것은 중소기업도 마찬가진데 대기업이 자기 몫의 부담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1차 협력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현대차의 납품가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면 2·3차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현대모비스에는 높은 납품가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자 산업자원부의 정세균 장관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정 장관이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것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지 이틀 만에 현대차의 납품단가 인하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15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기업영업에 관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합법적 역량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권한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산자부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경영상 부담을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행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직권조사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차가 불공정 하도급 거래라는 판정을 받을 경우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도급업체와의 거래 금액의 2배 이내에서만 부과하도록 돼있는 과징금은 지난 한 해에만 2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낸 현대차에게 '껌값'에 불과하다.
민주노동당은 16일 논평을 발표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섬세한 개선과 처벌 규정의 실효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납품단가 인하의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한편, 정당한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공정위에서 사전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명문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3년 4월에도 불법 하도급 거래로 공정위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