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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과실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고?

〈기자의 눈〉 대통령이 '강추'한 보고서의 위험성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들에게 강력히 추천했다는 한 보고서가 화제다. 지난 1월 24일 노 대통령에게 보고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8개 국책연구원장들과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연구·집필한 것으로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기조, 주요 정책과제, 중점 추진과제 등 미래 한국경제의 비전과 전략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제기하고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등의 내용에서는 일견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당연한' 내용에 감탄을 거듭했다는 노 대통령에 대해, 그리고 노 대통령이 지난 3년 간 우리 경제를 운용해 온 실적에 대해 다시금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보고서는 성장잠재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비전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이런 비전과 모순되는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 우리 경제의 취약점인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 양극화'가 발생한 원인을 세계화라는 대외 경제여건에 잘 적응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화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이른바 '용(用)세계화' 전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비전이 '세계화'와 '성장'이라니**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노 대통령에게 제시한 한국경제의 새로운 비전은 '사회안전망을 갖춘 글로벌 지식·혁신 강국의 지향'과 'G10(10대 주요국)급 선진국 진입: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 두 가지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보고서에서 "세계화에 저항하기보다 그 흐름을 잘 이용하는 '用세계화'의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런 전략을 추진하면) 작년 말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대로 향후 우리 경제는 10년 내에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用세계화'는 세계화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을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보호해 나가는 '사회안전망을 갖춘 글로벌 강국'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즉 경제 세계화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거기서 얻는 과실을 이용해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논리에는 세계화가 국민경제에 반드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위험한 가정이 숨어 있다. 또 보고서에도 나와 있듯이 소수의 사람들만 독차지하게 돼 있는 세계화의 과실을 어떻게 다수의 피해자들에게로 이전시킬 것인지, 그것이 '탈규제'를 기치로 내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결국 '用세계화'론에는 세계화를 통해 일단 파이부터 키워보자는 기존의 발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뿐 아니라 분배도 중시하겠다면서 '10년 내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다'는 장밋빛 환상을 비전으로 함께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면 이해가 된다.

***"자본시장 완전개방, 한미 FTA 체결, 쌀시장은 포기"**

이런 비전을 반영한 듯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과제 중 '대외개방을 통한 경쟁력의 제고'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외환 부문 등의 국내 제도와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해 선진 통상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자는 것인데, 이는 '금융허브의 구축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치'로 구체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금융 부문의 경쟁력 강화는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절박한 과제인데, 세계화된 경제환경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금융허브 전략"이라며 "금융허브 전략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외국 자본의 국내 진입에 대한 불합리한 시각을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보고서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4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보고서는 "FTA의 추진으로 우리의 개방 수준이 높아질 것이므로 일부 민감한 부문을 제외하고는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보고서는 시장개방을 통해 농업·제조업·서비스 부문의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쌀 시장과 같은 민감한 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함께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시장도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곁들이고 있다.

***세계화로 생긴 문제를 세계화로 푼다는 '모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겉으로 내세운 정책기조는 성장에만 치중했던 기존의 정책 패러다임을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동반성장'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과제는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 등을 통해 일단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성장 우선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 양극화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의 결과임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보다 더 높은 수위의 세계화를 통해 푼다고 하니, 이보다 더 기가 막힌 모순이 있을까. '세계화를 통해 성장을 이룬 후 그 과실의 일부를 떼어 세계화의 피해자들에게 나눠준다'는 겉보기엔 새로운 이 발상은 사실은 '병 주고 약 주기' 또는 '약으로 병만 더 키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用세계화'론을 담은 보고서에 감탄했다는 노 대통령이 추진 중인 경제정책들에는 이미 세계화로 생긴 문제점들을 세계화로 풀려는 모순적인 시도들이 가득하다. 연초부터 달러 가치의 하락과 외국계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외환시장이 요동치자 정부는 2010년으로 예정된 자본자유화 일정을 1시간의 긴급회의 후에 갑자기 올해로 앞당겼다.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대미 무역흑자폭이 줄자 이를 미국과의 FTA를 체결해 해결해보겠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 속에는 '국민에게 의견을 구하는' 기본적인 절차가 단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대통령이 감탄했다는 보고서도 몇몇 소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작성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한 구석에는 '대외 개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노 대통령이 감탄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문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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